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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스푼 5]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한 한국인의 간식, 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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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원’은 역사책 속에 등장하는 궁중떡을 전통 레시피 그대로 재현한다. 두텁턱, 단자, 쌍개피떡, 찹쌀떡, 약식, 갖은편(시계 방향으로)이 대표적이다. [사진 김경록 기자]

강남통신 ‘레드스푼 5’를 선정합니다. 레드스푼은 강남통신이 뽑은 맛집을 뜻하는 새 이름입니다. 전문가 추천을 받아 해당 품목의 맛집 10곳을 선정한 후 독자 투표와 전문가 투표 점수를 합산해 1~5위를 매겼습니다. 이번 회는 떡집입니다.

옛말에 “밥 먹는 배 따로, 떡 먹는 배 따로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 끼 배부르게 먹어도 디저트는 꼭 챙겨 먹는 요즘 사람들처럼, 옛 선조들도 떡은 식후에 즐기는 별미였던 거지요. 지금도 서울 시내에는 좋은 재료와 비법 레시피로 옛날 맛을 재현하는 떡집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전문가와 독자가 함께 추천한 떡집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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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비원
한상궁에게 전수받은 궁중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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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만들어준 옛날 그대로의 맛.” (독자 이상명)

 경복궁 사거리에서 안국동 사거리를 지나다 보면 얼핏 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가게가 하나 눈에 띈다. 기왓장 처마 아래 커다란 통 유리창 하나를 낸 이 가게에는 간판이 없다. 지나가는 외국인과 인근 직장인이 쉴 새 없이 들락날락해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곳이 60년 넘는 유서 깊은 떡집 ‘비원’이다.

 비원은 1949년 창업주 홍간난 할머니가 낙원동에 문을 열었다. 수송동 매장으로 이전한 건 2012년이다. 홍씨 할머니는 조선왕조 마지막 상궁이자 궁중 음식 기능 보유자인 한희순 상궁에게 비법을 전수받았다. 홍씨가 궁에서 일할 때 떡 만드는 솜씨를 눈여겨본 한 상궁이 자신의 레시피를 아낌없이 전수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홍씨 할머니는 조카 안인철씨를 수제자로 두고 떡집을 꾸려 나갔고, 재료와 맛이 좋다고 소문이 나면서 가게는 점점 더 바빠졌다. 지금은 안인철씨의 아들 안상민(33) 씨가 세 번째 주인이 됐다.

 가게에 들어서니 카운터 너머에 서 있던 안상민씨가 활짝 웃으며 기자를 반겨줬다. 수십 년 된 비원 단골들에게 안씨는 아들이나 손주 같은 존재다. 안씨는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자연스럽게 비원을 위해서 해야 할 일에 대해 고민했다. “맛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하지만 고객이 비원 떡집을 좀 더 특별하게 느끼려면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안씨의 설명이다.

 젊은 사장은 떡을 낱개 포장하고 떡집 로고나 서체를 하나씩 바꿔나가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수송동 매장을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바꾼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가게 내부는 여느 떡집과 달리 떡을 예술작품처럼 전시한 쇼케이스를 둬서 미니 박물관처럼 꾸몄다. 매출은 올라갔고, 비원을 찾는 사람은 더 많아졌다. 안씨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방금 만들어서 집어 먹는 떡”이라며 웃었다. 쌀가루를 빻고, 고물을 만들고, 찌고, 포장하는 일까지 한순간도 쉴 수 없는 ‘노동’이지만 안씨에게는 보람이자 행복이다.

 비원을 대표하는 떡은 ‘쌍개피떡’이다. 절구로 수십 번 치댄 반죽을 얇게 밀어 껍질을 만드는데 찹쌀로 만든 것처럼 쫄깃한 멥쌀떡이다. 껍질을 벗긴 흰 팥소를 넣어 여러 개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갖은편’은 비원에서 수십 년간 써 왔던 나무 시루에 찐다. 밤·잣·대추를 섞어 만든 고명을 올려 완성한다.

○ 대표 메뉴: 두텁떡 3500원, 쌍개피떡 1500원
○ 운영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 전화번호: 02-765-4928
○ 주소: 수송동 25-2
○ 주차: 불가

2위 떡의미학
기계 대신 손반죽·절구질 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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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서 더 포근하게 느껴지는 집. 미리 주문해야 맛있는 떡을 먹을 수 있다.” (독자 이인재)

 연희동에 위치한 ‘떡의미학’은 전통 궁중떡을 만드는 김명순씨가 1989년 문을 열었다. 양평 쌀, 가평 잣, 오대산 석이버섯, 공주 밤 등 최고의 재배지에서 엄선한 재료로 떡을 만든다. 떡의미학은 시골 외할머니댁에 놀러 온 것 같은 소박하고 정겨운 인테리어가 매력이다. 손님들이 기다리는 공간을 떡 만드는 도구로 멋스럽게 꾸몄다. 떡의미학은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손반죽과 절구질로 떡을 만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수작업 방식이라 미리 주문받은 떡만 만들기 때문에 불쑥 매장을 방문하면 맛있는 떡을 맛보기 어렵다. 멥쌀에 녹두 고물을 얹어 제주 유채꿀로 당도를 맞춘 녹두편, 멥쌀에 잣고물을 얹은 백편, 단호박편 등 네모반듯한 떡으로 유명하다. 크기가 작고 식감이 부드러워 아이들 간식으로도 좋은 대추·유자단자도 많이 찾는다.

○ 대표 메뉴: 편류 한 판에 1만5000원, 단자류 개당 2500원(최소 30개 이상 주문 가능)
○ 운영 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일요일 휴무
○ 전화번호: 02-324-3638
○ 주소: 연희동 89-50
○ 주차: 불가

공동 3위 호원당
며느리가 대를 이은 전통병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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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에 충실한 고명과 깊이가 있는 맛.” (독자 김종국)

 호원당은 1953년 시작한 우리나라 최초의 전통병과점이다. 순종황후 윤대비와 이종사촌지간이었던 조자호 할머니가 어린 시절부터 궁을 드나들며 배웠던 레시피로 종로에 병과점을 열었다. 이대 근처 대현동에 위치한 지금 매장은 1965년 이전했다. 아들과 며느리가 대를 이어 운영하는 호원당은 60년대 분위기가 느껴지는 고전적인 외관과 달리 안은 완전히 현대식으로 꾸몄다. 조명과 가구를 활용해 세련된 분위기로 바꾼 호원당은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다른 곳에 없는 궁중 떡이 많다는 게 호원당의 특징이다. 갖은 소를 넣어 찹쌀 반죽에 넣고 시루에 찐 ‘두텁떡’은 고종 황제가 즐겨 먹었던 떡으로도 유명하다. 떡에 대추채나 쑥갓, 잣가루를 뿌려 화려하게 장식한 ‘웃기떡’, 서리태·밤·대추를 넣은 찹쌀떡 ‘쇠머리편’ 등 역사책에서만 보던 전통 떡이 즐비하다.

○ 대표 메뉴: 두텁떡 세트 1만원대, 웃기떡 세트 1만원대, 쇠머리편 세트 8000원~1만원대 ○ 운영 시간: 오전 8시~오후 8시
○ 전화번호: 02-363-0855
○ 주소: 대현동 101-17
○ 주차: 불가

공동 3위 동병상련
떡은 물론 한식 과일 디저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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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에게 선물하기 좋은 예쁘고 맛있는 정과 세트가 매력적.” (독자 이효승)

 궁중음식연구원, 전통병과원에서 떡 만드는 법을 배운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박경미 대표가 운영한다. 떡을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가게 이름 ‘동병상련’답게 수년 째 찾아오는 단골이 많다. 바닥, 천장, 창틀 모두 고재로 완성한 실내는 여느 떡집과 달리 차분하고 우아한 분위기다. 유리로 만든 대형 쇼케이스에는 그날 아침 만든 떡이 진열돼있다. 떡은 이천이나 강화도 찹쌀, 섬유질 풍부한 현미, 일본에서 가져온 고시히카리 등 여러 지역의 곡물을 섞어 만든다. 고명으로 쓰는 재료도 계절 과일과 제철 채소를 다양하게 활용한다. 동병상련은 시루떡이나 인절미 같은 기본 떡 메뉴 말고도 정과가 유명하다. 정과는 과일에 설탕을 뿌려 반건조한 한식 디저트다. 수삼·더덕·매실·사과·유자 등 계절에 따라 재료의 종류가 달라진다.

○ 대표 메뉴: 정과류 3000~5000원대
○ 운영 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 전화번호: 02-391-0380
○ 주소: 정릉동 892-7
○ 주차: 불가

5위 훼밀리떡집
가정식 떡 다양 …‘떡순이’의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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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는 떡집.” (독자 이정오)

 문정동 훼밀리아파트 A상가에서 2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키는 ‘훼밀리떡집’은 ‘떡순이’들의 ‘성지’로 유명하다. 수십 년째 한결같은 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인근에 사는 동네 단골은 물론 지방에서 찾아오는 사람도 생겼다. 추석이나 설날이 되면 송편·가래떡 사러 온 손님들이 줄 서서 기다릴 정도다. 오후 서너 시가 되면 떡이 다 팔려 문을 닫는다. 매일 아침 떡을 만드는 훼밀리떡집은 노인·학생·아이 등 다양한 연령층을 고려해서 메뉴를 구성했다. 특이하고 개성 있는 메뉴보다는 꿀떡·인절미·백설기·팥시루떡 등 친근한 가정식 떡이 다양하다. 추석 전에 미리 주문받는 송편은 훼밀리떡집의 대표 상품이다. 녹두와 깨로 속을 채운 흰 송편과 쑥 송편을 판매하는데 고소하고 담백한 소와 쫄깃한 떡의 식감이 훌륭한 궁합을 이룬다.

○ 대표 메뉴: 꿀떡 3000원, 인절미 3000원, 백설기 3500원
○ 운영 시간: 오전 10시~ 품절될 때까지
○ 전화번호: 02-443-4005
○ 주소: 문정동 150 훼밀리아파트 상가 133호
○ 주차: 상가 내 주차장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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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월병, 일본 화과자, 한국은 떡
고려 귀족의 간식이 조선 서민으로

어린 시절 읽던 전래동화책에 유독 자주 등장한 음식이 떡이다. 동화 『해님, 달님』에 나오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는 말이나 달나라 토끼가 절구에 떡방아를 찧는 장면을 통해 어린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떡이라는 음식을 기억했을 것이다. 떡에 찍힌 치아 개수가 더 많아 왕이 되었다는 신라 왕의 이야기, 아들에게는 글을 쓰게 하고 자신은 떡을 썰었던 한석봉 어머니의 사연에도 떡은 등장했다.

 근대화가 시작되고 서양식 과자나 케이크가 한국의 디저트 시장을 점령하면서 떡의 시대는 잠시 주춤했지만, 요즘은 오히려 떡이 서양 과자보다 더 주목받는 분위기다. 음식연구가 강지영 씨는 “떡을 연구하고 배우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젊은 사람들이 데이트하기 좋은 모던한 떡 카페도 많아지는 추세”라고 했다.

청동기시대 떡시루 발견되기도
지지고, 치고, 찌고 삶는 4가지 방식
서양 디저트에 밀리다 최근 다시 주목

 우리나라 음식 문화에서 떡의 역할은 크다. 옛 선조들은 기쁜 날에도 떡을 먹었고, 슬픈 날에도 떡을 먹었다. 관혼상제에도 떡이 빠지지 않았다. 아이 백일상에도, 제사상에도 오르던 게 떡이다. 계절이 바뀌면 재료를 달리해 진달래떡이나 호박떡을 해먹었다. 한국은 벼농사를 짓는 농경 사회였고, 떡의 주재료인 쌀이 비교적 넉넉했던 것도 떡이 널리 퍼진 배경이다. 지역에 따라 쌀가루 말고 찰수수나 옥수수·도토리·녹말가루로도 떡을 만드는 곳도 있다.

 떡의 역사는 청동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떡을 찌는 시루 유물이 그때부터 발견됐다.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국가 행사나 제례용 음식에 가까웠지만, 고려시대는 상류층이 즐겨 먹기 시작했고, 조선시대부터는 서민들이 시장에서도 간편히 사 먹을 수 있는 간식으로 발전했다.

 떡은 중국의 월병이나 일본식 화과자와는 완전히 다른 우리 고유의 식문화다. 조리하는 법과 지역에 따라 레시피는 수백 가지에 이른다. 떡은 크게 찌는 떡, 치는 떡, 삶는 떡, 지진 떡으로 나뉜다. 종류로만 따지면 찌는 떡이 가장 많지만, 옛날엔 지진 떡을 더 많이 먹었다.

 찌는 떡은 쌀가루에 갖은 고물을 얹고 시루에서 안쳐 증기로 찐다. 부재료를 넣지 않고 쌀가루로만 찌는 ‘설기’도 있고 팥이나 녹두, 콩가루를 켜켜이 깔아 함께 찌는 ‘시루떡’도 있다. 이때 고물을 얇게 깔면 시루떡이 아니라 ‘편’이라고 부른다. 치는 떡은 한번 쪄서 따뜻한 쌀을 절구에 넣어 떡메로 치대 가며 만드는 떡이다. 가래떡·인절미·절편이 대표적이다. 삶는 떡으로는 경단이 대표적이다. 익반죽한 후 끓는 물에 삶아 콩이나 팥고물을 묻혀 낸다. 지진 떡은 전병이라고도 부른다. 익반죽한 찹쌀가루를 빚어 기름에 지지는데 꽃을 얹은 화전, 꿀이나 조청을 바른 주악으로 나뉜다. 팥소를 넣은 부꾸미도 지진 떡이다.

 레드스푼 맛집 1위를 차지한 ‘비원’의 안상민(33) 대표는 “떡 만드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재료와 도구 두 가지”라고 했다. 떡을 만들 때 필요한 가장 중요한 도구는 시루와 가루를 내리는 체, 절구, 떡을 눌러 모양을 만드는 떡살 등이다. 떡살은 예로부터 태극·국화·격자 문의 등 고전적으로 쓰는 무늬가 있지만 유서 깊은 떡집에서는 집안을 상징하는 무늬를 파서 고유의 떡살을 만들어 쓰기도 한다.

 연희동 ‘떡의미학’ 김명순 대표는 “떡을 맛있게 먹으려면 꼭 녹차 한 잔을 곁들이라”고 조언했다. 고소하고 담백한 설기류는 은은하고 쌉싸래한 녹차와 특히 잘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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