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 떠날까, 스포츠는 시간 다이어트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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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 21일 유러피언투어 아부다비 HSBC챔피언십. 남자골프 세계랭킹 1위 조던 스피스(23·미국)는 경기 중 시간을 과도하게 끈다는 지적을 받았다.

경기시간 늘어지면 TV중계 힘들어
야구, 이유없이 타석 벗어나면 벌금
태권도는 10초내 공격 안하면 경고
‘인위적 룰 변경, 본질 흐려’ 지적도

1라운드 8번 홀 그린에서 볼마커를 집어든 뒤 퍼트할 때까지 67초를 썼다. 규정시간인 40초를 27초 초과해 ‘슬로 플레이(slow play)’ 판정을 받은 것이다. 유러피언투어는 라운드당 15분 단축을 목표로 이번 대회부터 새 규정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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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선수들은 손목에 초시계를 차고 시간을 체크해야 할지 모른다. 속도가 생명인 디지털 시대에 시간을 질질 끄는 스포츠는 살아남기 어렵다. 여러 스포츠 종목이 규정을 뜯어 고쳐가면서 경기시간 단축에 나섰다.

 서브로 플레이를 시작하는 탁구·배구·배드민턴 등이 먼저 변화를 주도했다. 탁구는 아예 세트당 점수(1세트 21점→11점)를 확 줄였다. 여기에 촉진룰까지 만들어 13회 연속 랠리가 이어질 경우 상대에게 1점을 얹어주는 파격적인 방식도 도입했다.

배구도 빠른 경기 진행을 위해 서브권을 없애고 세트당 25점제를 도입했다. 배드민턴도 2006년 배구처럼 서브포인트제도를 없앴다.

 격투기 역시 시간을 끄는 플레이에 제재를 가했다. 2008년 레슬링은 경기시간을 3분에서 2분으로 줄였고, 2012년 태권도는 10초 동안 공격을 하지 않으면 경고를 주는 룰을 만들었다.

 스포츠가 자본의 전쟁터가 되면서 스피드업(speed up·시간 단축)이라는 화두가 생겼다.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방송 중계의 영향력이 커진 것도 또다른 이유다. 방송에 적합지 않은 지루한 스포츠는 살아남기 위해 규칙을 변경하기에 이르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끝으로 정식 종목에서 제외된 야구가 대표적이다. 3시간이 넘는 경기시간이 ‘너무 길다’는 지적이 나오자 ‘승부치기(연장전에 돌입하면 9회 무사 1·2루 상황을 만들어 공격하는 방식)’를 도입하는 등 노력을 펼쳤지만 끝내 정식종목에서 제외됐다.

 중계권료가 주 수입원인 프로 스포츠 역시 ‘스피드업’에 팔걷고 나섰다. 지난해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은 경기시간 단축을 위한 새로운 규칙을 발표했다.

초시계를 구장마다 설치해 투수의 투구 시간 등을 감시했다. 1959년 2시간23분이었던 평균 경기시간이 2000년대 이후 3시간을 훌쩍 넘어섰기 때문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도 MLB와 비슷한 규정을 만들어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2분 내에 공수교대를 하지 않거나 투수가 마운드 위에서 시간(12초)을 끄는 경우, 타자가 이유없이 타석을 벗어나면 벌금을 물린다.

덕분에 지난해 프로야구의 평균 경기시간은 3시간 21분으로 2014년 3시간27분보다 6분 정도 빨라졌다. MLB도 6분 절감(3시간2분→2시간56분)의 효과를 봤다. 아예 룰을 바꿔 7이닝 경기로 하자는 급진적인 주장도 나오고 있다.

 MLB는 지난해 매출 95억 달러(11조3500억원)를 기록하는 등 최대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젊은 팬들이 줄어들면서 야구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4월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MLB 팬의 평균 연령이 53세이며 중계 시청자 중 55세 이상의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50%에 이른다’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인위적인 룰 변경은 스포츠의 본질을 흐리고 오히려 팬들의 관심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경기 시간이 가장 긴 스포츠는 인도 등 영국 연방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크리켓이다. 크리켓 한 경기를 치르는데 길게는 일주일이 걸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지난해 호주에서 열린 크리켓 월드컵은 전세계 1억5000만명이 시청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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