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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증권거래소 매매시간 연장, 수수료 챙기기 꼼수 아닌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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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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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 경제부문 기자

“증권거래소 매매시간을 30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

 지난 21일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올해 업무계획을 통해 발표한 내용이다. 일본이 2011년 30분 연장한 것을 비롯해 인도(2010년·55분), 홍콩(2011년·60분, 2012년·30분), 싱가포르(2011년·90분)가 거래시간을 연장한 만큼 우리도 국제 추세를 따라가자는 얘기였다.

거래시간이 짧아 투자기회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투자자도 감안했다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였다. 한데 최근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주식 카페인 ‘주식차트연구소’가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거래시간 연장을 바라보는 일반 투자자의 시선은 최 이사장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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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래시간 30분 연장에 대한 찬반을 물었더니 300명의 참여자 중 57%가 ‘현재 유지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오히려 점심 휴장 제도를 도입해 거래시간을 줄이자는 답변이 30.2%로 2위였다. 거래시간 30분 연장에 찬성한 비율은 고작 6.5%였다.

‘거래시간을 대폭 연장하자’는 의견(5.8%)을 더해도 찬성 의견은 12%를 조금 넘었다. 해당 카페는 주식투자자로 이뤄진 곳이다. 거래시간이 짧아 매매기회를 놓친 사람이 많다면 찬성 비율이 높게 나와야 정상이다. 그런데 답변은 정반대였다.

 지난해 국내 증시에선 단타매매가 극성을 이뤘다. 상장주식 회전율이 코스피 시장 319.13%, 코스닥 시장 637.23%로 치솟았다. 상장주식 한 주당 코스피 3.2회, 코스닥 6.4회의 ‘손 바뀜’이 일어났다는 얘기다. 2012년 이후 최고치다.

자주 사고파는 게 최종 승률을 낮추는 역효과를 불러온다는 건 증시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거래시간을 늘린다면 ‘개미 투자자’들의 단타매매만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빈 말이 아니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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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거래시간 연장으로 득을 보는 건 누굴까. 당장 수혜자는 거래소다. 거래소는 주식 매매거래액의 0.0027%를 매매수수료로 받는다. 게다가 현재 한국거래소는 독점 체제다. 거래시간이 늘어나는데 따른 수익도 거래소가 독차지한다.

공교롭게도 거래소는 지금 지주회사 전환과 상장(IPO)이라는 큰 이벤트를 앞두고 있다. 재무구조가 탄탄하고 수익성이 높은 회사라야 상장 흥행에도 성공하고 주가도 좋은 가격에 형성될 수 있다.

거래소가 2년전 한 차례 무산됐던 거래시간 연장 카드를 이제 와 다시 끄집어낸 까닭도 여기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다 거래시간 연장은 대체 거래소 설립에 대비한 장기 포석이란 해석도 나온다. 정부는 최근 관련 요건을 완화해 제 2거래소가 쉽게 설립될 수 있도록 했다. 제2 거래소가 설립되면 상당수 증권사가 그 쪽으로 옮겨갈 수 있어 한국거래소는 수익 구조에 타격을 입게 된다.

이에 대비해 미리 거래시간을 늘려 ‘파이’를 키워놓자는 계산 아니냐는 얘기다. 거래소 뒤에서 또 짭짤한 수익을 챙길 곳은 정부다. 거래대금이 늘어나는 만큼 정부는 가만히 앉아서 증권거래세를 더 거둘 수 있다. ‘땅 짚고 헤엄치기’ 세수 확대 묘수다.

 고객들의 거래 주문을 대행해주고 위탁매매수수료를 받는 증권사도 수혜자다. 최 이사장의 발표 후 위탁매매수수료 수입 비중이 높은 증권사 주가가 뛰기도 했다. 그러나 위탁매매는 천수답 영업이다.

한국 증권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 거래시간 연장이 결국 거래소와 정부, 위탁매매 비중이 높은 증권사의 짬짜미가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더욱이 거래시간을 연장한다고 거래량이 반드시 증가할 거란 보장도 없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거래시간 연장 1년 후에 거래량이 오히려 줄었다. 거래시간을 늘리고도 거래량이 늘지 않으면 사회적·경제적 비용만 추가 지출되는 꼴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거래시간 연장인지, 숙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박진석 경제부문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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