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가 만난 사람] “엔지니어들 대기업 우산서 뛰쳐나와라”

중앙일보

입력 2016.01.26 00:01

업데이트 2016.01.2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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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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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플랫폼 ‘스켈터랩스’를 운영하는 조원규 대표는 “스켈터는 ‘혼란스럽고 정리되지 않은 상황’을 의미한다”며 “아이디어가 여기저기서 막 날아다니는 팀이라는 뜻을 담았다”고 말했다. [사진 스켈터랩스]

‘벤처 올드보이’가 돌아왔다. “창업하겠다”며 2년 전 구글코리아 연구개발(R&D) 총괄 사장 자리를 박차고 나갔던 조원규(50)씨다.

돌아온 ‘벤처 올드보이’ 조원규 스켈터랩스 대표
2년 전 구글코리아 사장 그만두고
스타트업 창업하는 회사 만들어
“벤처 아닌 ‘사업’하는 스타트업 실망
실패해도 기술 좋으면 자체로 의미”

세계 최초의 무료 인터넷전화(VoIP) 서비스 ‘다이얼패드’를 개발한 스타 엔지니어이자 한국과 미국에서 이미 3번이나 창업한 조씨가 나이 쉰을 바라보며 택한 길은 다시, 창업이었다.

그 정도 이력이면 요즘 스타트업계에서 유행하는 ‘멘토’나 벤처투자자로 일해도 어울릴 법 한데…. 왜 다시 창업에 나선 걸까.

 지난 15일 오후 서울 이태원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명함에 적힌 회사 이름은 스켈터랩스(SkelterLabs), 직함은 최고 창업가(Chief Entrepreneur)다. 구글코리아를 나와 만든 회사의 스토리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첫공개했다.

조 대표는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고 불편을 해소하는 팀을 만들고 싶었다”며 “스켈터랩스는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서 이런 큰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을 끊임없이 창업하는 회사”라고 소개했다.

 스켈터랩스는 2014년 6월 조 대표가 ‘스타트업을 하겠다’며 구글을 나온 직후 만들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 박철준·홍용완씨 등이 설립한 창업기획사 앤드비욘드 내부의 기술창업팀으로 시작했다.

조 대표 등 구글 출신 엔지니어 4명이 앤드비욘드 사무실 한 켠에 터를 잡고 출발했다. 현재 열다섯 명 팀원 중 60% 이상이 엔지니어, 즉 개발자다.

 조 대표는 스타트업이 성공하기 위해선 창업가·엔지니어·기획자·디자이너로 이뤄진 팀이 업계 최고의 실력을 갖춘 인재들이어야 한다고 봤다. 스켈터랩스는 그런 A급 인재들이 개인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창업 프로젝트 2~3개씩에 동시에 발을 담그며 일하는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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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터랩스의 첫 창업 아이템은 디지털 일기장 ‘썸데이’. 글씨를 쓰지 않고 손가락으로 버튼을 체크하기만 하면 일상의 모든 경험을 디지털 일기로 남기고 분석할 수 있다. 위 사진은 기록 내용을 토대로 지출 경향, 감정의 흐름 등을 분석해준 리포트 화면.

지난해 말엔 엄지 손가락 하나로 일상 생활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는 애플 iOS용 앱 ‘썸데이(Thumbday)를 개발해 내놨다.

동시에 새로운 프로젝트도 끊임없이 구상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O2O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관련 창업도 준비 중이다. 스타트업을 보육하는 엑셀러레이터도, 벤처캐피탈도 아닌 새로운 시도다.

 이런 특이한 조직을 만든 이유에 대해 조 대표는 “벤처는 세상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아직도 많은 스타트업들이 ‘벤처’가 아닌 ‘사업’을 하려는 것 같아 솔직히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최근 정부 창업지원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며 안타까움과 한계를 동시에 느꼈다고 한다. 조 대표는 “누군가는 제2의 구글·페이스북을 만들어서 하키스틱(J모양) 같은 성장 곡선을 그려야 한다”며 “그게 벤처가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임팩트(영향력)”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선 왜 글로벌 벤처가 잘 안나올까’를 고민했고 결론은 A급 인재가 모이는 창업 플랫폼을 만들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특히 엔지니어들이 많이 필요했다. 조 대표는 “창업가의 기발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서비스·제품으로 만들 수 있는 엔지니어들이 한국에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그나마 있는 엔지니어들도 여전히 대기업 우산 속에 숨어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엔지니어가 지금보다 10배 이상 벤처로 쏟아져 나와야 현재 꿈틀대는 기회를 충분히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잘 다니고 있는 직장을 때려 치우고 무조건 밖으로 나오라고 몰아 세우기엔 실패의 대가가 크다. 조 대표는 “현재는 삼성전자 다니다가 나와서 창업했는데 실패해버리면 퇴로가 없는 상황”이라며 “엔지니어들이 ‘의미있는 창업’을 할 기회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의미있는 창업이 뭘까. 그는 “창업한 회사는 실패해도 개발한 기술이 뛰어나다면 엔지니어는 의미있는 창업에 참여한 것이고, 다시 어디든 취업할 수 있다”며 “그런 창업 기회가 풍부한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우수한 엔지니어를 대기업 밖으로 끌어오려면 높은 연봉보다도 ‘같이 일하는 팀이 업계 최고 수준의 실력자들’이라는 조건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가 엔지니어와 기술기반 창업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그는 1993년 KAIST 박사 시절 동기들과 새롬기술을 공동창업했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새롬데이터맨프로·팩스맨 등 PC통신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주역이 조 대표였다.

이후 90년대 후반 실리콘밸리로 건너가서는 세계 최초의 무료인터넷전화 다이얼패드를 개발했다. 광고를 보면 무료로 국제전화를 할 수 있는 이 서비스는 1999년 10월 출시 직후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다이얼패드에 투자했던 새롬기술 주가는 코스닥에서 액면가의 600배 이상 폭등하기도 했다. 그러다 2001년 닷컴버블이 꺼지면서 실패로 끝났다.

이에 대해 조 대표는 “기술벤처에게 매출·영업이익·주가 같은 숫자는 오히려 판단을 흐리게 한다”며 “미국에서 다이얼패드를 개발하며 ‘스타트업 생태계’에 눈을 떴고 그 이후에도 미국에서 계속 기술 창업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이얼패드는 기업으로선 실패했지만, 기술과 경험의 가치는 죽지 않고 이어졌다. 다이얼패드 회사는 야후에 매각됐고, 다이얼패드의 일부 엔지니어와 경영진을 데려간 구글은 몇 년 후 무료 인터넷전화 ‘구글보이스’를 내놨다. 조 대표 역시 구글코리아 첫 R&D 총괄로 영입됐다.

 다시 허허벌판에 선 조 대표는 줄곧 기술을 강조했다. 그는 “공상과학 만화에나 나오는 얘기들이 현실이 되고 있는 지금,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며 “잊지 말아야할 것은 혁신의 바탕엔 기술이 있고, 이를 개발할 인재들이 벤처에 더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수련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조원규 대표=서울대(컴퓨터공학)·KAIST(전산학) 석박사를 마친 정통 엔지니어 출신 창업가다. 전산학 박사를 밟고 있던 1993년 새롬기술을 공동창업해 벤처에 뛰어들었다. 당시 새롬데이터맨프로는 윈도 운영체제에 맞는 PC통신 소프트웨어로 큰 인기를 끌었다.

90년대 후반 미국 실리콘밸리로 건너간 조씨는 세계 최초의 무료 인터넷전화(VoIP) 서비스인 다이얼패드를 미국서 개발했다. 이후 미국서 창업을 계속하다가 2007년 구글코리아 첫 R&D 개발 총괄사장으로 영입돼 7년간 일했다. 구글에서 나온 후엔 창업기획사 앤드비욘드의 기술팀 파트너로 합류해 스켈터랩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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