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화개장터, 화합의 꽃을 피워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위성욱 기자 중앙일보 부산총국장
기사 이미지

위성욱 사회부문 기자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마을 하동 사람 윗마을 구례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중략)/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가수 조영남(71)의 대표곡 ‘화개장터’의 노랫말이다. 그런데 앞으로 가사 중 일부를 수정해야 할지 모르겠다. ‘있어야 할 건 다 있던 화개장터’에 가장 중요한 영호남 상인 중 호남 상인이 빠질 위기이기 때문이다.

 사연은 이렇다. 2014년 11월 화개장터 상점 40여 개가 불탔다. 이후 경남 하동군은 25억원을 들여 군유지 4300㎡에 한옥 형태 점포 82개를 만들었다. 입점 상인 추첨을 하면서 하동군은 2008년에 만든 ‘화개장터 운영규정(3년 이상 실거주자만 입점)’을 이번에 처음 적용했다. 이 때문에 2007년부터 화개장터에서 약재·농산물을 팔아왔고 2013년부터는 하동군에 연간 30만원의 임대료까지 내온 호남 상인 6명(광양시 5명, 구례군 1명)은 지난 22일 있었던 추첨에 참여조차 못했다. 주소지는 하동에 두고 광양·구례에서 출퇴근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지난 3년간 호남 상인의 영업을 용인해온 하동군이 갑자기 입장을 바꾸는 바람에 민감한 지역감정을 자극한 셈이다.

기사 이미지

지난해 4월 재개장한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에서 영호남 주민들이 물건을 사고 있다. [사진 하동군]

 이에 대해 김병수 하동군 시설운영관리 담당은 “군 예산이 투입된 공공시설물에 지역주민을 우선할 수밖에 없고 점포 수가 적어서 그랬다”고 설명했다. 이달 말까지 점포 6개를 비워야 하는 호남 상인들은 최근 하동군청을 찾아가 재입점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뒤늦게 하동군은 화개장터의 상징성을 감안해 광양시와 구례군에 점포 1~2개씩을 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래도 여전히 일부 호남 상인은 장사를 못할 처지다.

 화개장터는 영호남 화합의 상징적 공간이다. 남해·여수·거제 등 남해안에서 잡은 해산물이 화개장터에서 하동·구례·남원·함양 등지에서 실려온 농산물과 거래돼 왔다. 화개장터에 불이 났을 때 조영남씨는 “화개장터는 영호남을 묶는 화합의 장터를 넘어 대한민국을 하나로 엮는 긍정적 에너지가 가득한 장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말에 공감해 전국에서 온정의 손길이 이어져 시장이 재건됐다.

 그러나 지금 하동군은 일부 하동군민의 이익을 위해 온 국민이 화개장터에 기대하는 통합 정신을 놓치고 있다. 곽주완 계명마케팅연구소장은 “화개장터에서 호남 상인이 빠지면 영호남 화합의 공간이 오히려 갈등 장소로 전락해 장기적으로 잃는 것이 많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름처럼 화개(花開) 장터에 ‘화합의 꽃’이 피도록 하려면 하동군의 통 큰 결단과 모두의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위성욱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