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X선·초음파기기 쓰게 해달라”…의사 “오진으로 건강 위협 우려돼 불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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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선 흔치 않은 광경이 펼쳐졌다.

[뉴스 속으로] 경계 허물어지는 의료계 영역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필건 대한한의사협회장이 직접 초음파 골밀도 측정기 앞에 앉아 29세 남성의 발목을 검사했다. 마치 일반 의사가 진료하듯 남성의 인적 사항을 묻고 젤을 발라 골밀도를 측정한 뒤 모니터에 뜨는 수치를 설명하는 시연 방식이었다.

하지만 한의사의 골밀도 측정기 사용은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다. 2011년 대법원이 측정기를 사용한 한의사에 대해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바 있다.

이날 일부러 ‘불법’ 행위를 한 김 회장은 “이런 기본적인 기계를 사용하는 것조차 보건복지부는 막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의사 단체인 의료혁신투쟁위원회는 “의료법 위반”이라며 이날 김 회장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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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의료계의 뜨거운 감자는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여부다. 한의사 측은 X선·초음파 등을 활용한 진단 검사장비를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주장한다. 보다 정확한 진단이 가능해져 한의학 치료 효과가 증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의사들은 “절대 불가”를 외친다. 한의대에서 의료기기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한의사들은 오진할 가능성이 커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정부가 2014년 말 규제 완화 과제 중 하나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선정하면서 촉발된 논란은 해를 두 번이나 넘겨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상대를 비난하는 보도자료를 주고받 는 등 감정의 골만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복지부가 언제쯤 최종 결론을 낼지 기약이 없는 상태다.

의사의 업권(業權)에 도전하는 분야는 비단 한의사뿐만이 아니다. 약사와 물리치료사부터 안경사·카이로프랙틱사(척추교정치료사)까지 전방위적으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약사계는 ‘대체조제’를 두고 의사들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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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상 의사가 처방한 약과 효능·성분이 같다고 입증된 약품(복제약 등)을 대체조제할 수 있지만 ‘처방권 침해’를 내세운 의사들 때문에 활성화되지 않는다고 본다.

지난해 6월 대체조제 내역을 의사가 아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사후 통보할 수 있도록 하는 약사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개업의들이 반대 압력을 넣고 있다는 불만도 크다.

물리치료사들은 의사의 ‘지도’ 규정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며 개정을 요청하고 있다. 의사의 관리 감독 없이 치료하고 단독 개원도 가능하게 하는 물리치료사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반면 의사들은 환자 안전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추나 요법(한의사)이나 도수 치료(의사)와 비슷한 카이로프랙틱을 놓고는 환자의 선택권을 이유로 합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의사와 거리가 멀 것 같은 안경사와 피부미용사도 자체적인 영역 찾기가 활발하다. 안경사들은 눈을 정밀하게 검사하는 ‘타각적 굴절 검사기’와 ‘안압 측정기’를 안과 의사 외에 자신들도 쓸 수 있게 허용해 달라고 주장한다.

피부미용사는 미용산업 활성화 차원에서 의료기기 중 일부를 미용기기로 분류해 피부관리실에서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의료계는 부정확한 진단과 무분별한 불법 의료행위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1만여 명의 문신사도 ‘예술문신’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흔해진 예술문신을 양성화하면 위생 관리도 개선할 수 있고 미용실 등에서 이뤄지는 ‘눈썹 문신’ 등과도 별개라는 논리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혈액 감염 등 부작용이 크고 미용 문신과 경계도 모호하다”며 허용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치과의사는 환자 얼굴에 피부 레이저나 보톡스 등 미용 시술을 할 수 있는지를 놓고 의사와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해당 시술을 한 치과 의사들에 대한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는 가운데 대법원의 최종 판단만 남겨놓고 있다.

치과의사협회와 의사협회는 각각 대형 로펌을 내세워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치협 관계자는 “보톡스 등 시술은 치의대 교과목으로 배우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의료계와 다른 직종 간 갈등이 광범위해지면서 ‘컨트롤타워’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2012년 11월 복지부가 발족한 보건의료직능발전위원회(직능위)가 대안 중 하나로 거론된다.

15명으로 구성된 직능위는 주로 의사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직능 간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2014년 이후 한 번도 열리지 않아 유명무실해졌다.

직능위원이었던 사공진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직능단체 갈등을 이대로 방치하면 법정 다툼이 필연적이다. 그러면 해결까지 오래 걸리고 양측 다 상처만 입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 치열하게 논쟁하며 협상도 할 수 있는 직능위를 재가동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권덕철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직능위 같은 중재 기구를 다시 만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S Box] 의사·한의사, 의료기관 카드 수수료 인상 철회엔 한목소리

의료계가 항상 갈등만 겪는 것은 아니다. 공동의 이익이 걸린 상황에서는 ‘의기투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치과의사협회·간호협회·약사회 등 5개 단체는 2014년 12월 의료영리화 정책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때는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놓고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 사이에 전운이 짙게 감돌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보건의료 분야가 서비스업에 포함될 수도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상정되자 “국민 건강을 위협하며 보건의료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킨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12월에도 같은 내용의 성명서를 재차 발표하며 뜻을 모았다.

  5개 단체는 지난 11일에도 뭉쳤다. 신용카드 수수료 인상 철회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최근 신용카드사들이 의료기관과 약국을 비롯한 일반 가맹점의 수수료율을 이달 말부터 2.5%로 올리겠다고 통보한 게 계기였다.

이들은 “카드사들이 보건의료 영역이 공공재라는 인식 없이 손실만 전가하는 데 급급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카드 결제 거부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해 대응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와 함께 의료인의 복수기관 개설 금지 조항(1인 1개소 원칙) 유지 등에도 보조를 맞추고 있다.

정종훈 기자, 김준승(동국대)·서혜미(세명대) 인턴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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