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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는 왜 밥 딜런에 열광했나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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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패스벤더(가운데)가 스티브 잡스의 역을 맡았다. 옆에 선 사람들은 애플 동료 조안나 호프먼 (케이트 윈슬렛 분)과 앤디 허츠펠트 (마이클 스털버그 분).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포크 가수 밥 딜런을 숭배했다.

그에게 창의력의 원천이었던 노래 가사들을 통해 영화의 주요 장면을 유추해본다

여러모로 볼 때 잡스는 기업계의 어느 누구보다 밥 딜런에게서 많은 영감을 얻은 듯하다. 영화 ‘스티브 잡스’(국내 개봉 1월 21일)의 대니 보일 감독은 “그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반골로 부르며 우상화했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그 모든 사람 중에서 딜런이 잡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잡스-딜런 커넥션의 기원은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애플 초창기 잡스는 100시간 분량이 넘는 1960년대 딜런 음악 해적판을 수집했다. 월터 아이잭슨이 저술한 잡스 전기에 따르면 그와 애플 초기의 천재 스티브 워즈니액은 딜런 팬으로서 마음이 맞았다. “딜런의 노래책을 구입해 가사를 해석하느라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고 워즈니액은 말했다. “딜런의 가사들은 창조적 사고를 불러내는 주문이었다.”

그 뒤 잡스는 1984년 매킨토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밥 딜런의 곡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4년 마침내 딜런과 상봉했다. 잡스의 전기에 따르면 두 사람은 “딜런의 방 앞쪽 테라스에 앉아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잡스는 긴장했지만 그의 우상은 “내가 바라던 그대로였다. 정말로 허심탄회하고 솔직했다.”

스티브 잡스 전기영화는 이 같은 광적인 숭배의 힌트가 차고 넘친다. 영화에는 밥 딜런의 음악이 자주 등장하고 언급된다. 때로는 명확하게 때로는 미묘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보일 감독에게 영화와 관련된 딜런의 곡목 리스트와 함께 선택한 배경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이 글에는 영화 줄거리를 알려주는 스포일러가 아주 조금 담겨 있다).

◇THE TIMES THEY ARE A-CHANGIN’ (‘The Times They Are a-Changin’’ 앨범 중)

1984년 매킨토시를 공식 발표할 때 스티브 잡스는 연설 첫머리에 딜런의 ‘세상이 변하고 있네(The Times They Are a-Changin’)’ 중 둘째 행을 인용했다. ‘저술가와 비평가들은 오라 / 펜으로 예언하는 사람들 / 눈을 크게 뜨고 보라 /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 바퀴는 여전히 돌아간다 / 그리고 예측할 수 없다 / 누구의 이름을 부를지 / 오늘의 패자가 내일의 승자가 될 것 / 세상이 변하기 때문에.’

잡스의 논리는 명확했다. 자신이 개발한 매킨토시 컴퓨터의 혁신적인 잠재력을 믿었다. 뉴욕타임스 리뷰에서 지적하듯 스티브 잡스는 이 같은 특질에 초점을 맞춰 “로큰롤의 발전을 이끈 에너지와 창의성이 기술로 향했음”을 시사했다.

보일 감독은 ‘세상이 변하고 있네’를 영화에 삽입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영화 대본에서 그 곡이 공개적으로 언급된다. 하지만 보일 감독은 장면이 바뀔 때 그 곡을 깔려다가 “그들이 그 노래에 관해 논한 뒤 다시 들려주는 건 너무 뻔하다고 생각했다.” 대신 ‘Rainy Day Women #12 and 35(아래)’를 넣기로 결정했다.

◇RAINY DAY WOMEN #12 & 35 (‘Blonde on Blonde’ 앨범 중)
영화의 주요 반전 장면에서 ‘Blonde on Blonde’ 앨범의 이 첫 곡이 깔린다. 영화 줄거리가 1984년에서 1988년으로 넘어갈 때다. 앞부분의 어처구니없는 코러스(‘모두가 취해야 한다’)가 이 노래를 클래식으로 만든다. 잡스의 세련된 기업 문화에는 맞지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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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II 설계자 스티브 워즈니액은 “잡스와 나는 딜런(사진)의 노래책을 구입해 가사를 해석하느라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래의 떠들썩하고 래그타임풍(당김음이 많은 피아노 연주 스타일)에 활력 넘치는 느낌은 잘 통한다. 그런 점에 이끌렸다고 보일 감독은 말한다(아울러 1966년의 ‘Blonde on Blonde’가 “내 머리 속에서 들려오는 사운드에 가장 가까운” 앨범이라고 묘사한 딜런의 발언을 접한 뒤에는 그 곡이 더욱 어울리게 느껴졌다).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 깜짝 놀랄 것으로 생각한다”고 보일 감독은 말한다. “‘세상이 변하고 있네’를 삽입했다면 누구나 예상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깜짝 카드를 쓰는 게 아닌가?”

영화 제작자들은 이 장면 용으로 많은 곡을 테스트했지만 어느 것도 어울리지 않았다. “‘Rainy Day Women’으로 바꿨더니 딱 들어맞았다”고 보일 감독은 말했다. “그만큼 어울리는 노래는 없다. 노래에 담긴 흥겨움이 비결이라고 본다. 약간 경계심을 무너뜨리는 효과도 있다. 잡스는 실제로 교활함이 넘친다. 마음 속에 감춰둔 꿍꿍이가 있다.

하지만 이 긴장을 풀어주는 노래가 이들 약간 기괴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메두사 호의 뗏목(The Raft of the Medusa) 같은 이미지 속으로 관객을 이끈다. 사람을 무장해제하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또 다른 반전 장면에는 록 그룹 리버틴스의 ‘태양을 돌아보지 말라(Don’t Look Back into the Sun)’가 삽입된다. “머리 속에서 그 노래가 들렸다는 것 말고 다른 이유는 전혀 없다”고 보일 감독은 말한다. “리버틴스가 디지털 혁명과 관계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주장할 실마리가 없다.”]

SUBTERRANEAN HOMESICK BLUES (‘Bringing It All Back Home’ 앨범 중)

영화에 삽입하지는 않았지만 보일 감독은 딜런의 또 다른 작품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1965년에 제작된 ‘Subterranean Homesick Blues’의 뮤직 비디오다.

“사상 최초의 팝 비디오였다”고 보일 감독은 말했다. “정말로 딜런이 잡스와 우리들에게 상징했던 혁신의 정신을 담으려 애썼다.” 영화 제작진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알토스에 있는 잡스의 소시적 자택 차고를 재현할 때 마침맞게 그 유명한 비디오의 소재를 이용했다. 거기 등장하는 ‘태어나다(Get Born)’는 푯말을 딜런이 들고 있는 모습의 옛날 포스터를 포함시켰다.

잡스가 이 노래를 정말로 좋아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 유명한 비디오를 본뜬 2010년 구글 광고가 잡스를 자극하려는 장난스런 의도로 제작됐다는 추측도 나돌았다.

MEET ME IN THE MORNING (‘Blood on the Tracks’ 앨범 중)

딜런이 라이브로 연주한 적이 거의 없는 1975년 작 블루스 풍의 곡이다. 영화 속 한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라디오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온다. “이 노래가 사운드트랙 같은 데 실리지 않은 것 같다”고 보일 감독은 말한다(하지만 딜런은 다른 두 곡의 사운드트랙 수록을 허용해 보일 감독을 놀라게 했다). “어쨌든 아름다운 노래 아닌가?”

SHELTER FROM THE STORM (‘Blood on the Tracks’ 앨범 중)

이 장엄한 ‘Blood on the Tracks’ 앨범의 노래가 영화 시작부분에서 언급된다. 애플 II 설계자 스티브 워즈니액과 오전 회의 중 잡스가 자신을 딜런에 비유할 때다. 엔드 크레딧(영화 마지막의 출연자 이름 자막) 중에도 이 노래가 흐른다.

잡스가 이 특정한 곡에 정서적 유대감을 가졌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아이잭슨의 전기에서 이 노래가 한 번 언급된다. 저자가 아이튠스(디지털 미디어 플레이어)에 대한 잡스의 초창기 비전을 묘사할 때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에 정서적인 유대감을 갖는다고 그는 믿었다. 그들은 ‘Sympathy for the Devil’과 ‘Shelter from the Storm’을 단순히 빌리기보다는 소유하기를 원했다.”

보일 감독은 애수에 젖은 곡조 때문에 이 노래에 이끌렸다고 말한다. “‘Shelter from the Storm’에서 일종의 상실감이 느껴진다. 마지막에는 아름답기까지 했다.” 보일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정말 잘 어울린다는 점에서 이 노래를 좋아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잡스와 멀어졌던 딸 리사 간의 감동적인 만남이 전개된다. “영화관을 나설 때는 1998년이 아니다”고 보일 감독은 말한다. “다시 2016년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이 세상에 없다. 따라서 일종의 상실감이 존재한다. 그녀의 인생 중 한 부분에서 아버지는 사라졌다. 노래는 그런 느낌을 수반한다. 내 곁에서 떠난 뒤에야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식이다.”

아 참, 그리고 더 간단한 이유도 있다. “그것이 훌륭한 곡이라는 사실이다. 정말로 대단한 노래다.”

- ZACH SCHONFELD NEWSWEEK 기자 / 번역 차진우

[박스기사] 병에 걸린 경영자의 선택

건강문제는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 vs 주주는 회사와 관련된 주요 정보 알아야

많은 기대를 모은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스티브 잡스’가 곧 개봉된다. 고인이 된 그 IT 천재(2011년 췌장암으로 사망)에 관한 영화들을 가리켜 팀 쿡 애플 CEO가 “기회주의적”이라고 평한 지 약 3개월 만이다. 영화는 3종의 상징적인 제품 발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1998년 아이맥의 공개로 끝을 맺는다. 아이맥의 발표로 애플의 수익이 급증하고 잡스는 역사상 손꼽히는 위대한 이상주의자로서 위상을 굳힌다.

보일 감독은 잡스의 사망과 뒤를 이은 팀 쿡 현 CEO로의 경영권 이양 과정은 영화에서 다루지 않기로 했다. 2011년 8월 잡스가 사임 의사를 담아 이사진에 전달한 편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암 진단을 받은 지 8년 만이었다. ‘애플 CEO로서 더는 내 책임과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는 날이 올 경우 가장 먼저 여러분에게 알리겠다고 항상 말해 왔다. 안타깝게도 그 날이 왔다’고 그는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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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 투병 사실을 발표한 뒤 애플 주가는 2.4% 하락했다

2004년 잡스가 암에 걸렸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뒤라서 그의 건강 문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상황이었다. 그래도 애플 주가는 2.4% 하락했다. 지난해 초 또 다른 월스트리트 대기업 골드만삭스의 장수 CEO 로이드 블랭크페인이 치유 가능한 림프종(임파선암)에 걸렸다고 발표했을 때 그 회사 주가는 2% 가까이 내려앉았다.

경영자의 건강 악화는 회사에 중대한 문제다

하지만 고위 경영자는 자신의 건강 악화에 관해 언제 주주들에게 알려야 할까? 영국 법률회사 애시포드의 파트너이자 고용 책임자인 스티븐 무어는 건강 문제와 관련된 투명성은 줄타기 곡예와 같다고 설명했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도 하는 어려운 줄타기 묘기다.” 한편으로 경영자는 프라이버시를 보호 받을 권리가 있다. 이는 법으로 보호받는 기본 인권이다. 한 개인의 건강은 일반적으로 사적인 문제로 간주되며 대중의 감시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측면은 기업 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성에 초점이 맞춰진다. 경영자의 건강 문제는 회사에는 중대한 문제다. 특히 외부 투자자와 이해관계자가 관련된 상장기업의 경우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주주들은 회사와 관련된 핵심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

합병과 매출이 주가에 영향을 미치듯이 경영자의 건강도 회사 실적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대외 이미지가 회사 성패를 좌우하며 경영자의 건강악화 소식은 거의 확실히 주가에 영향을 미친다. 그만큼 주주들은 당연히 자신의 투자에 결정적인 정보를 알아야 한다.

주주들도 물론 정보공시 원칙에 따라 보호 받는다. 그러나 이는 현재로선 경영자의 건강에까지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 고위 경영자의 건강 문제를 공개하도록 강제할 만한 법 제도는 없다.

경영자는 회사에 대해 신의성실 의무를 지닌다

자본시장법 등에 따라 경영자는 회사 이익을 최우선시하고 성실하게 행동해야 하는 신의성실 의무를 갖는다. “회사를 위해 봉사하는 능력에 문제가 생길 경우 물러나야 할 책임이 있다”고 무어 파트너는 말했다.

고위 경영자의 건강악화가 어떤 수준에 이르렀을 때 주주들에게 알려야 하는지를 결정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공개를 의무화하는 선이 어디에 그어질지도 모르겠다고 무어 파트너는 말한다.

“경영자에게 사고의 소지가 있는 레저활동 취미가 있다면 그것도 공개해야 하는가? 이 같은 민감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법은 현재 없으며 이는 여전히 논란이 된다. 실제로 기업들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대처방식이 달랐다. 무엇이 적절하고 모든 관계자에게 가장 이로운지에 관한 합리적이고 정확한 판단은 궁극적으로 이사회와 개인의 몫이다.”

- LEWIS D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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