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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벤처 매출 11% 늘어 215조” 대통령에게 부풀려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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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기준 국내 벤처기업은 3만 개를 돌파했고 매출액은 215조원으로 삼성그룹에 이어 재계 매출 순위 2위에 해당한다.”

100억 이상 벤처 10%인데
중기청 표본선 27%로 늘려
창조경제 실적 과장한 셈

 지난해 12월 28일 중소기업청의 발표였다. 벤처기업 매출액이 기업당 72억원으로 1년 전보다 11.2% 늘었다고 했다. 0.4% 감소한 대기업이나 4.4% 증가한 중소기업보다 월등한 성적을 냈다고 평가했다.

중소기업청과 벤처기업협회가 공개한 ‘2015년 벤처기업 정밀 실태조사’ 결과였다. 이 보고서는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거쳐 박근혜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다.

박 대통령은 지난 13일 대국민담화에서 “여러 노력으로 작년에 우리나라 벤처기업이 3만 개를 돌파했고 신규 벤처 투자도 2조원 넘어서 다시 제2의 창업붐이 일고 있다”고 창조경제의 성과를 치켜세웠다.

 그러나 중소기업청이 발표한 벤처기업 실적이 실제보다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규모가 큰 벤처기업은 조사 대상에 많이 포함하고 영세업체는 빼는 방식으로 통계를 ‘마사지’했다는 얘기다.

2014년 말 국내 벤처기업 수는 2만9844개에 달했다. 이를 전수조사하기는 어렵다. 실태조사도 2227개 표본 업체를 대상으로 했다. 통계를 왜곡시키지 않으려면 표본을 고르게 뽑아야 한다. 특히 양극화가 심한 벤처업계에선 매출액 비중을 왜곡해선 안 된다.

쉽게 말해 100점 맞은 기업이 70곳이고 20점인 곳이 30곳이라면 표본도 7대 3으로 뽑아야 통계가 왜곡되지 않는다.

 벤처 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실제 국내 벤처 중 매출 10억원 이하는 48.4%(1만5164개), 100억원 초과는 10.4%(3262개)다. 그런데 중소기업청이 뽑은 표본에선 10억원 이하 20.1%, 100억원 초과는 26.9%를 차지했다.

매출 10억원 이하 업체는 표본에서 절반 이하로 확 줄이고 100억원을 넘긴 회사는 두 배 이상 더 많이 포함시켰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벤처기업 전체 매출액이 실제보다 훨씬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익명을 요구한 A대 통계학 교수는 “표본의 매출 비중 분포와 벤처기업 전체 비중이 통계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으로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중기청 관계자는 “표본을 뽑을 때 고용·업종·지역 비중을 전체와 비슷하게 맞추다 보니 매출액 비중이 치우친 것 같다”며 “사전에 이를 알거나 의도적으로 부풀린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벤처기업협회도 “의도적인 조작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허영구 정책연구실장은 “벤처 경영성과가 좋아져 그런 수치가 나온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표본에서 매출 100억원이 넘는 업체의 비중이 2013년 11.9%, 2014년에도 12.5%였다가 지난해에만 26.9%로 높아진 건 설명하기 어렵다.

게다가 국내 벤처업계는 영세업체와 상위 업체 간 격차가 매우 크다. 중기청에 따르면 국내 벤처 중 매출 자료가 미비한 소규모 벤처는 7300곳(23.4%)에 이른다.

이들 기업들도 벤처 실태조사에서 누락됐을 가능성이 크다. 또 벤처 10곳 중 4곳은 매출 5억원 미만, 고용 10명 미만이다. 이에 비해 매출 1000억원이 넘는 벤처는 460곳으로 전체의 1.5%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들 업체의 매출 합계는 약 100조원으로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이를 단순 평균해 벤처기업 매출이 기업당 평균 72억원에 달했다고 포장하는 건 착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위에서 숫자를 너무 강조하면 밑에선 상부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다”며 “건전한 창조경제 생태계를 만드는 건 장기 프로젝트인데 이 정권 내에 결과물을 내려고 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태윤·장원석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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