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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처리 급해도 절차 지켜야…무산돼도 할 수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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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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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화 국회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2년 전 내가 출마한 국회의장 경선에 친박계 후보가 나왔음에도 일절 관여하지 않은 걸로 안다. 그런 점에서 존경받을 분”이라고 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정의화(68) 국회의장이 화제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심판론’까지 내세우며 압박하고, 새누리당이 국회법 개정안을 들이밀며 요구해도 직권상정으로 쟁점 법안을 처리할 순 없다고 요지부동이다.

[강찬호의 직격 인터뷰] ‘직권상정 불가’ 고수하는 정의화 국회의장

국민 사이에선 “오랜만에 존재감 있는 국회의장을 본다”는 반응이 나온다. ‘차기 대권 주자감’이란 말도 돈다.

정 의장을 여의도 국회 청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정 의장은 “대통령과 내가 갈등하는 것처럼 (언론이) 몰고 가는데 그런 일은 없다. 그런 구도로 인터뷰하지 말아 달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쟁점 법안 가운데 기간제법은 양보키로 했다. 여당이 국회법 일부를 개정해 법적으로 직권상정이 가능한 길을 트려고도 하고 있다. 그래도 직권상정은 불가능한가.
“나도 나라 걱정하는 마음은 대통령과 같다. 그러나 법적으로 직권상정이 불가능한데 무리수를 둘 순 없다. 쟁점 법안들을 한꺼번에 처리하기도 어렵다. 다들 성격이 다르다. 해당 상임위부터 노동법은 환노위, 북한인권법은 외통위, 테러방지법은 정보위, 기활법은 산자위다. 이런 법들을 한데 묶어 단번에 처리하겠다니 힘들 수밖에 없다.”
대통령으로선 한시가 급하니 일괄처리를 원하는 것 아닌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법안이 나온 지 1300일이나 됐다. 그 긴 시간 동안 여야는 뭘 했나? 정부도 야당 상임위원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하는데 시늉 한번 하고 접었다. 지난해 7월 제출된 기활법도 그렇게 중요한 법이라면 9월 정기국회에서 논의가 시작되도록 정부가 힘을 썼어야 했는데 안 했다. 총선을 앞둔 해엔 국회는 12월 31일에 사실상 끝난다. 중요 법안은 그전에 처리돼야 한다. 이제는 때가 늦었다. 의원들 마음은 지역구에만 가 있다. 국회를 열어봤자 정족수 채우기조차 어렵다.”
법 절차만 강조하다 법안 처리가 안 되면 그것도 문제 아닌가.
“그렇게 돼도 할 수 없다. 절차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직권상정이나 연계처리를 하면 법의 완성도가 떨어지게 된다.”
보수 단체들은 ‘정 의장이 자기 정치를 한다’고 비난한다.
“사실과 다르다. 그들은 법적으로 불가능한 걸 잘 알면서도 직권상정을 막무가내로 요구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여론을 호도한 탓이 크다. 정부가 만든 TV 공익광고를 보면 ‘노동 5법이 합의됐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론 합의된 바가 없다. 이렇게 정부가 왜곡된 정보로 여론을 호도하니 국민은 국회의장이 발목을 잡는다고 착각하게 된다. 정부·여당 일각에선 또 ‘국회선진화법이 위헌이니 의장이 직권상정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한다. 역시 말이 안 된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이라 결정하기 전에 의장이 실정법을 위헌이라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현행법상 직권상정은 전시·사변이나 그에 준하는 비상사태에서나 가능하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정부는 ‘법안 처리가 안 되면 국가 비상사태가 올 것’이라고 하는데.
“의장이 할 수 있는 건 여야가 법안을 합의 처리토록 설득하는 것뿐이다. 법안 처리가 2월이나 4월, 혹은 그 뒤로도 안 된다고 해도 도리가 없다.”
만약 내일 IMF 외환위기 같은 국가적 대란이 발생한다고 해도 오늘 밤까지는 직권상정을 하지 않을 것인가.
“국회의 자문 로펌이 두 곳 있다. 질문한 대로 ‘외환위기 같은 대재앙이 발생할 게 확실시될 경우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할 수 있는 시점이 언제냐’고 물어봤다. 한 로펌에선 2~3일 전에 비상사태를 선언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로펌에선 당일 0시가 돼야 비상사태가 개시될 수 있다고 했다. 국회의장은 이런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직권상정은 사회 전체가 옳다고 동의할 때 가능한 것이다.”
경제 상황을 보는 청와대와 국회의장의 인식이 다른 것 같다.
“대통령은 뒤로는 경제 살리기에 노력해도 TV에 나와선 경제가 어렵다는 티를 내지 말아야 한다. ‘경제가 위기다, 비상사태가 온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경제를 얼어붙게 한다. 박 대통령도 경제가 ‘위기 상황’이라고까지 말하진 않았다. 경제는 심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여당 일각에서 이런 소리를 자꾸 하니 문제다. 지금 우리나라는 신용등급이 세계 7위급까지 올라갔다. 공항도 그 어느 때보다 붐빈다. 여당의 협상 주역인 원유철 원내대표는 대통령 특사로 과테말라를 찾아 일주일 가까이 국회를 비웠다. 국민은 ‘이런 상황이 무슨 비상사태냐’고 물을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예측한 올해 경제성장률은 3%다. 우리 급의 경제 규모 국가 중 이보다 높은 성장률을 내는 나라는 거의 없다. 미국·일본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을 때도 비상사태를 선포하지 않았다.”
그래도 청와대로선 마음이 급하니 지난 연말 현기환 정무수석을 보낸 것 아닌가.
“바쁠수록 돌아가라 했다. 누구(현 수석)를 내게 보내 ‘경제법안부터 먼저 통과시켜 달라’고 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현 수석에게 ‘나도 대통령을 돕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도울 수 있는 근거를 찾아 달라’고 했다. 그 뒤로는 청와대에서 연락이 없다. 언론을 통해서만 그쪽 입장을 듣고 있다. 다만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 인사회에서 이병기 비서실장을 만나긴 했다.”
당시 신년회가 끝난 뒤 기자들에게 ‘이 실장에게 경제법안과 선거구 획정은 별개인 만큼 연계처리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실장은 알았다고 하더라’고 밝혔다. 그러자 청와대는 ‘경제법안을 먼저 처리하자고만 했지 연계는 거론도 안 했는데 정 의장이 언론 플레이를 한다’며 비난해 파문이 일었다.
“청와대 입장은 ‘선 법안, 후 선거구’다. 이 역시 엄연한 연계다. 더구나 여당 원내대표도 회의석상에서 ‘패키지’라면서 사실상 연계 방침을 선언했다. 그러니 청와대에서 이 실장을 본 김에 박 대통령에 전하라는 뜻에서 연계 불가 방침을 밝혔는데 이 실장이 알았다고 했다. 사실 그대로를 기자들에게 전한 게 언론 플레이인가.”
하지만 청와대와 의장 간에 설전이 오가는 것 자체가 걱정스럽다.
“대통령 보좌진은 말을 아끼는 게 좋다. 내 마음을 모르는 이상 나라를 위한 충정에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라 생각해야지 내가 ‘이미지 정치’를 한다는 식으로 비난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들도 나라를 위한 충정에서 그런 말을 했으리란 생각은 있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국회를 강하게 비판하고 ‘국민이 심판해 달라’고까지 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국회의장으로서 예산을 두 번 다 헌법에 정해진 시한에 통과시켰다. 또 이완구 총리 후보가 병역·재산 등에 얽힌 의혹으로 곤경에 처했음에도 총리로 인준될 수 있도록 열심히 도왔다. 대통령이 선거가 없는 유일한 해(2015년)에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정에 가장 중요한 예산과 총리 인준을 도운 것이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에 박 대통령과 함께 참석했을 때 이 얘기를 들려줬다. 그랬더니 박 대통령도 감사의 뜻을 표하더라.”
본인이 수장을 맡은 19대 국회는 어떻게 평가하나.
“국회가 대통령의 마음에 들지 않는 측면이 있다는 데는 공감한다. 의원들은 입법이 주업이고 지역구 활동은 부업인데 요즘은 부업이 주업이 됐다. 본회의장에 앉아 있는 의원 수가 나날이 줄고 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국회 심판론에 동의하는 것 아닌가.
“아니다. 대통령이 한 번쯤 그런 얘기(국회 비판)를 하는 건 괜찮지만 너무 자주 그런 얘기를 하는 건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19대 국회를 과거 국회와 비교한다면.
“‘X판’이란 욕까지 먹었던 17대 국회와 비슷하다고 본다. 부덕의 소치다.”
박 대통령과 소통은 되나.
“잘된다. 다만 이번 주까지 쟁점 법안이 해결될 기미가 없으면 대통령을 직접 만나서라도 돌파구를 찾고 싶다.”
정 의장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다. 4·13 총선에 나갈 것인가.
“부산엔 출마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총선에 나갈지 안 나갈지 여부는 상황이 유동적이라 확답을 줄 수 없다.”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호남에 출마하라는 얘기도 나온다
“광주에 출마해 달라는 현지 주민이 적지 않다. 지역 통합에 여생을 바치라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매력적인 얘기지만 색안경 끼고 보는 이들도 있겠으니, 그럴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고려는 해볼 것이다.”
차기 대권 주자로도 거론된다.
“대권은 하늘이 정하는 것이다. 시대정신에 맞는 사람을 국민이 찾아낼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나 안철수 의원일 수도 있다. 정의화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국민이 호출하면 대선에 나서야 하는 게 정치인의 의무 아닌가.
“그럴 가능성은 배제하지 못한다. 그러나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대통령 개인이 나라를 끌고 가는 시대는 지났다. 유능하면서도 수평적인 리더십을 가진 인재가 대선에 나온다면 선대위원장을 맡아줄 생각이 있다.”
여권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외에 아직 눈에 띄는 대선 주자가 보이지 않는다.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하나는 ‘구룡’ 식으로 후보가 여럿 나오는 것이다. 일단 흥행이 되니 좋은 카드다. 또 하나는 오세훈·원희룡·남경필 등 젊은 정치인들이 후보로 나와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다.”
반 총장은 대권 주자감인가.
“충분히 대통령이 될 자질이 있는 사람이다. 하나 대통령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사람과 더불어 나라를 끌고 갈 리더십이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2년 전 국회의장 경선에서 친박계 황우여 후보를 꺾고 당선돼 화제를 불렀다.
“박 대통령이 당시 경선에 일절 관여하지 않은 걸로 안다. 그래서인지 친박계에서 황 후보를 미는 흐름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그런 점에서 존경받을 만한 분이다.”

글=강찬호 논설위원
사진=신인섭 기자

정의화는…

▶1948년 부산 출생 ▶부산고·부산대 의대 ▶신경외과 전문의 ▶15∼19대 국회의원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18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 ▶세계스카우트의원연맹 총재 ▶한·미의원외교협의회장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