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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국회와 법무부의 로펌 개방 엇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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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복현
서복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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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복현
사회부문 기자

지난 18일은 ‘마틴 루서 킹 데이’로 미국의 휴무일이었다. 이날 마크 리퍼트 미국대사는 법무부가 마련한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서한을 들고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을 찾았다. 그 서한에는 “법안에 외국 로펌의 입장을 고려해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미국 외에 영국·호주·유럽연합(EU) 대사가 공동 서명했다. 리퍼트 대사는 외국 로펌들 이익단체인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협회의 항의 서한까지 함께 건넸다. 지난 7일 이 위원장을 항의 방문해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 연기라는 성과를 일궈낸 데 이은 2차 공세였다.

 자국 로펌의 이익을 위한 4개국 외교관들의 움직임은 집요하다. 리퍼트 대사는 지난해 11월 김현웅 법무장관을 직접 만나 반대 입장을 전달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대통령 직속기관인 미국무역대표부(USTR) 관계자들이 법무부를 항의 방문했다. 지난 14일 만난 주한 미국대사관 핵심 관계자는 개정안과 한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을 연계할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이들이 주재국 국회를 상대로 일종의 ‘입법 저지 활동’을 벌이는 것은 그들 나름의 역할에 충실한 것일 수 있다. 문제는 우리 국회와 정부의 엇박자 대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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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이상민 법사위원장을 찾아간 마크 리퍼트 대사. [뉴시스]

 해당 개정안은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법률시장 3단계 개방을 위한 것이다. 한국과 외국 로펌의 합작법인 설립 시 외국 로펌의 의결권과 지분율을 49%로 제한했다. 또 참여 로펌의 자격 기준을 업무 경력 3년 이상으로 못 박았다. 법무부는 한꺼번에 전면 개방하면 국내 로펌에 미치는 충격이 클 것이라고 판단해 싱가포르 모델을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소위를 통과한 개정안의 전체회의-본회의 상정을 미뤘다. 또 18일엔 “법무부가 정부 부처끼리 다 의논됐다고 해 믿었는데 왜 대사들이 나를 찾아오나. 그동안 법무부만 너무 믿었다”고 했다. 법무부는 다른 말을 하고 있다. “FTA 협정문에 근거해 개정안을 만들었고 정부 부처 논의가 다 돼 국무회의를 통과한 사안”이라고 한다.

 법무부가 개정안을 국회에 낸 건 지난해 8월이다. 벌써 5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국회와 법무부는 삐걱거리고 있다. 변호사 단체까지 나서 “내정간섭”이라며 공개 반발하면서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법무부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세부 시행 규칙 등을 만드는 데 3~4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개정안은 오는 7월부터 시행돼야 한다. 지금이라도 국회와 법무부는 소통해야 한다.

 한 정부 관계자는 “4개국 외교사절들의 움직임을 보니 글로벌 로펌, 정부 부처, 외교라인이 한 몸 같다. 한편으론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서복현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