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만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가 목표가 아니라 야당이 수권할 토양을 만들어 주기 위해 더민주에 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김성룡 기자]
‘박근혜의 남자’에서 ‘문재인의 남자’로 변신한 김종인(76)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의 앞길은 녹록지 않다. 위기에 몰린 더민주당이 김 위원장을 구원투수로 긴급 호출했지만 그에게 전권을 줄지는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강찬호의 직격 인터뷰]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
선대위와 공천심사위 구성, 현역 의원 20% 물갈이와 전략공천 등 주요 길목마다 당 주류인 친노 세력의 간섭과 저항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화문에 위치한 개인 사무실에서 만난 김 위원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선대위원장은 시작일 뿐 문 대표가 물러나는 대로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을 행사하겠다. 나의 이런 뜻을 당이 거스른다면 위원장직을 즉각 떠날 것이다."
- 왜 문재인 대표를 택했나.
- "야당이 이대로 가선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민이 아무리 정권교체를 바라도 수권능력 있는 야당이 없다면 일본처럼 한 정당이 수십 년 동안 집권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일본은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를 독점하다 보니 20년 넘는 불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4·13 총선에서 200석을 확보해 장기집권 개헌을 꿈꾸는 마당이다. 야당이 분열되면 일본처럼 보수정당이 60년 가까이 집권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럴 경우 국민의 특성상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 그런 논리라면 본인의 정체성으로 볼 때 국민의당을 돕는 게 맞지 않나.
- “신당의 주장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야권이 쪼개져도 문제가 없다는데 당장 야당이 분열하면 개헌 저지선을 확보할 수 있겠는가. 건전한 야당이 안정적으로 존재하고 수권능력을 갖춰야 나라가 발전한다.”
- 문 대표가 어떻게 설득했나?
- “야권의 위기를 보고 정치를 떠나 편하게 지내려던 생각을 접고 (정계에) 복귀하려던 차에 문 대표가 찾아왔다. ‘대표직을 내려놓을 테니 당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더라. 나는 정치인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을 뽑아 놓고 무책임하게 가는 꼴은 못 본다. 나를 감내할 자신이 있느냐’고 했더니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하더라. 말하는 걸 보니 정직하고 진정성 있어 보였다. 그래서 선대위원장직을 수락한 것이다.”
- 문 대표 사퇴 뒤 당을 맡는 자리라면 선대위원장보다 비상대책위원장이 적절하지 않나.
- “나도 처음엔 비대위원장이 적절해 보인다고 했다. 한데 (문 대표가) 당내 사정과 절차가 있다면서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래서 일단 선대위원장으로 시작해 비대위원장으로 가기로 한 거다.”
- 전병헌 최고위원 등 당 중진들이 ‘선대위원장은 투톱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 "문 대표가 (그런 주장은 안 된다고) 확실히 얘기한 것으로 안다. 당이 낭떠러지에 몰려 있다. 전 위원이나 다른 최고위원들이 내 위치에 대해 뭐라 얘기할 상황이 아니다. 나는 선대위원장으로 시작한 뒤 비대위원장을 맡아 문 대표의 모든 권한을 넘겨받을 것이다. 최고위원들이 물러나면 다 끝나는 문제다.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 선대위원회의 구성과 의결 방식은.
- “8~9명쯤이 될 터인데 현역 의원은 3~4명 될 것이다. 영입 인사들 가운데 좋은 이미지를 가진 이가 많더라. 의결 방식은 순수한 다수결로만 할 수는 없다. 내 직권으로 결정을 내리기도 할 것이다. 의석이 10석도 안 된 ‘꼬마 민주당’ 시절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았다. 나는 당시 조순형씨를 밀었는데 당 대표를 따르던 공심위원들은 반대하더라. 대표도 이를 믿고 ‘다수결로 결정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식의 다수결은 받아들일 수 없다. 조씨를 공천하지 않는다면 위원장직을 물러나겠다’고 맞받아 결국 조씨의 공천을 관철했다.”
- 선대위원은 전원 선대위원장이 뽑나.
- “그렇다. 문 대표나 최고위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 호남 현역 의원들 중 이탈자가 많을 것으로 보이는데.
- “그 사람들이 잔머리를 굴리는 것이다. 총선 때까지 국민의당 지지율이 높게 유지될 것이란 보장은 없다. 안철수 의원과 탈당 의원들이 벌써 서로 딴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안철수 의원의 목표는 대선이고, 이탈자들의 목표는 당선이다. 단기적인 목표(총선)는 일치하더라도, 여론이 그런 식으로 모이지는 않을 것이다. 벌써 더민주 지지율이 국민의당을 추월했지 않나. 안철수가 ‘새로움’으로 눈길을 모았지만 결국은 기성 정치인을 영입하는 등 기성 정당과 다른 면모를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뭐가 ‘새 정치’인가?”
- 안 의원의 멘토였지 않나.
- “나는 그의 멘토를 자처한 적 없다. 2011년에 법륜 스님이 ‘인재’라며 안철수를 내게 소개했다. 그 뒤 안철수가 돌연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하더라. 이에 나는 ‘무소속으로 나가면 승산이 없다. 그보다는 2012년 총선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안 의원은 ‘국회의원은 아무 하는 일이 없는 자리인데 왜 하느냐’고 반문하더라. 시장은 행정직이니 잘할 수 있지만, 의원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자리를 떴고 이후 안 의원을 만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두 번 만났는데 안 의원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겠느냐’고 묻기에 ‘당(새정치연합)을 진정시키고 총선까지 가면 문재인의 위치도 바뀔 터이니 기회가 있을 것’이라 답해 줬다. 하지만 별 대답을 하지 않더라. 지금 안 의원은 자신이 만든 신당 상황이 신통치 않아 초조할 것이다. 2012년 대선 출마 당시 지지율 40%가 넘었던 그 시절 환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 안 의원의 ‘공정 성장’과 경제민주화는 비슷한 것 아닌가.
- “아니다. 공정 성장은 시장 원리에 따른 성장을 뜻한다. 따라서 안 의원은 신자유주의자·시장 지상주의자나 다를 바 없다. 반면 경제민주화는 시장 논리만 따라가면 강자 독식이 불가피한 만큼 사회와 시장을 조화시켜야 한다는 논리다.”
- 경제민주화를 달성하는 구체적인 정책은.
- “예를 들면 상법을 개정해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혁하는 거다. 기업의 의사결정을 민주화하면 오너가 아무리 힘을 쓰려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 기업들 반발이 클 텐데 문 대표가 집권해도 상법을 개정할 수 있을까.
- “내가 더민주에 들어간 건 야당이 제 역할을 하게 해 주려는 것이지 문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생각에서가 아니다. 지금 의원들을 갖고서는 경제민주화 실현이 어렵다. 무엇보다 대통령 될 사람이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나는 문 대표에게 ‘당신에게 의지가 있어야만 경제민주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 문재인을 꼭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더민주에 들어간 게 아니라고?
- “그렇다. 집권이 아니라, 당이 집권 가능한 토양을 만들어 주는 게 내 목표다. 나는 사람을 100% 믿지 않는다. 내가 대통령 선거를 도운 경험이 몇 번 되는데 도와준 후보마다 당선되면 입장을 바꾸더라. 노무현이 대표적이다. 그는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펼 것처럼 보였지만 집권 뒤엔 다른 대통령들처럼 신자유주의 노선을 걸었다. ‘좌파 신자유주의’니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느니 하며 말이다. 그러니 지지층이 전부 돌아선 것이다.”
- 그런데 왜 친노인 문재인 세력과 손을 잡았나.
- “손을 잡은 게 아니라 이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라는 것이다. 이번에는 과거처럼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목표하는 대로 당이 흘러가지 않으면 남아 있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 공천 기준은 어떻게 할 것인가.
- “공천 룰부터 들여다볼 것이다. 공천 룰이 특정 계파에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으면 정상화할 것이다. 공천은 무엇보다 공정해야 한다. 다만 그런 원칙 속에서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골라야 한다.”
- ‘현역 20% 물갈이’는 어떻게 보나.
- “그 규정 때문에 불안해하다 당을 나간 사람들도 있을 거다. 하지만 일단 만들어진 규정이니 그대로 갈 수밖에 없다.”
- 19대 총선에선 민주당이 ‘친노 공천’을 한 탓에 비례대표 다수가 친노로 꾸려졌다.
- “그래서 국민 신뢰를 잃은 거다. 그래도 이번에 영입한 인사들을 보니 희망이 있다.”
- 영입 인사들을 단순한 포장지로 쓸지 알맹이로 쓸 것인지도 관심사다.
- “과거엔 전문가들이 당에 들어와 지도부 눈치만 보다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사람들이 위축되지 않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 전문가들에게 실질적인 힘을 주려 하면 당 주류인 친노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텐데.
- “나는 문 대표나 친노들 의중에 개의치 않는다. 또 이는 집권 뒤의 일이므로 지금은 거기까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
- 야권 의원 중 문 대표 외에 대권주자 감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총선을 계기로 여야를 막론하고 대권주자 감들이 등장할 것이다. 특히 3선 이상 인사가 당선될 경우 대권 도전의 뜻을 밝힐 가능성이 높다.”
- 더민주 탈당을 고민 중인 박영선 의원과 가까운 사이인데.
- “최근 박 의원을 만나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얘기했다. 정치인이 한 정당에서 의원을 몇 번 했다면 탈당의 명분이 분명해야 한다. 명분 없이 감정에 따라 행동하면 안 된다. 박 의원은 내 말에 확답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될 것(탈당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 4·13 총선 결과는 어떻게 될까.
- “더민주가 크게 좌절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1992년 정주영 회장이 만든 국민당이 총선에서 30석가량 획득했다. 안철수 신당도 그 비슷한 수준이 될 것 같다.”
- 다소 낙관적인 견해인 것 같다.
- “유권자들이 현명하다. 헌정 사상 특정 정당이 의석의 과반은 몰라도 3분의 2를 차지한 적은 없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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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핵심 인사였다가 적수인 문 대표와 손잡아 논란이 일었다.
- “2012년 총선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맡았지만 공천 결과를 보고 당을 떠났다. 공천된 면면을 보니 개혁이 실행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총선 뒤 박근혜 후보(당시)가 깨달은 바가 있는지 내게 ‘대선을 도와 달라’고 부탁하더라. 그래서 캠프에 들어간 것이다. 그 결과 박 후보의 대통령 출마 선언과 후보 수락 연설 첫머리에 ‘경제민주화’가 적시됐다. 나의 또 다른 걱정은 야당 후보 단일화였다. 그럴 경우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여전히 이길 카드가 있다고 박 후보에게 건의했다. 그 카드가 바로 경제민주화와 기초연금이었다. 당내에서 ‘기초연금은 나라 곳간이 부족해지니 안 된다’고 반대했지만 끝내 관철했다. 이것이 노인층의 표를 결집시켜 박 후보 당선이 가능했다.”
- 그러나 박 대통령은 집권 후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 “임기 초엔 경제민주화 실현을 바라는 마음에서 (박 대통령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이젠 포기했다.”
- 그렇다면 잘못된 사람을 선택했던 것이 아닌가.
- “내가 과한 욕심을 부린 끝에 착각한 것 같아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말한 바 있다.”
- 문 대표도 집권 뒤 박 대통령처럼 말을 바꿀 가능성에 대해 걱정은 없나.
- “그때는 후회해 봐야 소용없는 것 아니겠는가.”
☞김종인은…
▶1940년 서울 ▶중앙고·한국외대 ▶독일 뮌스터대 석·박사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11·12·14·17대 국회의원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헌법연구자문위원회 위원장 ▶한국외대 석좌교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박근혜 대선경선캠프 공동선대위원장
글=강찬호 논설위원
사진=김성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