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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동남아 진출 기업, 마트보다 재래시장 상인 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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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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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희
닐슨코리아 대표

동남아시아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이 많아지고 있지만 현지 상권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많은 곤란을 겪고 있다. 최근 베트남에 진출한 한 소비재 기업 역시 현지 법인을 통해 자체적으로 상권 분석을 해봤지만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동남아 지역에서는 복잡하고 경쟁이 치열한 재래 상권이 유통 채널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호치민이나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 같은 대도시에서조차 재래 상권 매출이 전체 소비재 시장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재래 상권의 경우 대략적인 규모나 위치 만을 파악해서는 제대로 된 성장 전략을 수립할 수 없다. 주요 점포와 점포 주인, 구매 고객에 대한 질적인 이해가 뒷받침돼야 한다. 동남아 시장과 같이 상권이 세분화된 시장에서는 가장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가진 큰 기업이라도 모든 유통 채널에 제품을 공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선 이 재래 상권을 위치와 판매량 등에 기반해 큼직하게 분류하고, 꼭 진출해야 하는 상권과 꼭 팔아야 하는 제품을 결정한다. 우선 순위가 낮은 상권과 제품을 제외하는 것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선택과 집중’에 대한 의사 결정이 중요한 시장인 것이다.

 또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보다 먼저 점주를 공략해야 한다. 동남아 지역의 재래 소매점은 대부분 크기가 매우 작다. 소비자들은 매장 안에 들어오지 않고 매장 입구나 심지어 오토바이에 탄 채로 점주에게 필요한 물건을 달라고 한다. 점주가 고객 대신 브랜드를 고르는 것이다.

 한 글로벌 식품회사는 태국·베트남 등 동남아 시장에서는 제품을 구매하는 최종 소비자뿐 아니라 중간 단계에서 제품을 유통하는 재래 상권 상인들에 대해 지속적인 조사와 분석을 하고 있다. 태국의 경우 이 회사가 대형마트나 백화점 같은 현대적 유통 채널에서 소비재 제품을 판매하는 비중은 20%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는 모두 지역 단위 재래 상권을 통해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래상권 상인들을 대상으로 제품 구입 경로, 제품 가격 정책과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 등을 정기적으로 조사해 재래 상권 권역별로 제품 공급과 가격 정책을 달리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소비재 기업들은 동남아 시장에 진출할 때도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 대도시의 현대적 유통 채널에만 집중하고 있다. 성과를 못 낼 때 ‘현지화의 실패’로 그 원인을 돌리지만, ‘현지 재래 상권 공략에 대한 무지 및 공략 부족’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동남아 지역 재래 상권은 수많은 개별 점포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까다롭지만, 국내 소비재 기업에는 커다란 성장 기회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시장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치밀한 조사를 통해 효과적인 전략을 펴야 한다.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잘 활용한다면, 충분히 재래 상권을 공략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은희 닐슨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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