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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다큐 '거미의 땅'…기지촌, 그 고통의 기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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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거미의 땅` 스틸. [사진 시네마달]

경기도 북부 휴전선 가까운 지역에 죽은 듯한 공간이 있다. 한국전쟁 전후로 30여 년 이상 미군이 주둔했던 기지촌이다.

1971년 미군기지가 이전하며 유령 도시가 된 기지촌들은 2011년 철거를 앞두고 있었다. 국가의 필요에 따라 부흥하고 스러지는 이곳은 이제 역사의 치부로 남았다.

그리고 그 주변에 살고 있는 세 여인이 있다.

30년간 기지촌에서 분식집을 운영해온 박묘연(79), 폐지를 주워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박인순(71),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흑인계 혼혈인 안성자(62).

‘거미의 땅’(1월 14일 개봉, 김동령·박경태 감독)은 이들이 살았던 기지촌의 기억을 재구성한 다큐멘터리다.

2013년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국제 경쟁부분에서 특별상을 수상하고, 2014년 핫닥스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등 국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부부인 두 감독은 10여 년 넘게 기지촌에 머물며 다큐를 완성했다.

박경태 감독과 나눈 대화로 ‘거미의 땅’을 만든 긴 과정을 돌아본다.

더불어 이 다큐가 이뤄낸 미학적 성취를 짚어본다.

§2000년 기지촌과의 첫 인연
기지촌과 먼저 인연을 맺은 이는 박경태 감독이었다. 2000년 동국대 사회학과 학부생이던 박 감독은 대학 선배를 따라 기지촌 여성 인권보호 단체 두레방에서 자원 활동을 시작했다.

두레방은 미군에 폭행, 결혼 사기 등의 피해를 받은 여성에게 상담과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체였다.

기지촌 여성들을 “누나”라고 부르며 친해진 박 감독은 이들의 삶을 다큐로 찍겠다고 마음먹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한 부분을 차지했던 기지촌이 역사 속에서 숨은 곳으로만 남길 바라지 않아서였다.

그 시기 ‘거미의 땅’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박인순을 만났다.

오전 7시부터 술을 마시고 툭하면 죽겠다며 칼 들고 동네를 돌아다니던 분이었다. ‘양색시’로 살다 미국에 건너가 결혼했지만, 남편에게 버림받고 다시 한국 기지촌으로 돌아온 분이었다. 울분과 상처로 가득 찬 그녀는 미술 치료를 받으며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이 과정을 담은 다큐가 2002년에 만든 ‘나와 부엉이’였다. 김동령 감독을 만난 건 그 후였다. 둘은 2004년 김 감독이 외국인 여성 인권 조사의 무료 통역 자원 활동을 하다 두레방을 찾은 것을 계기로 처음 만났다.

§ 2005~2008년, 그곳의 삶을 포착하다
2003년 박 감독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혼혈인 인권 상황 조사를 하다 서울 북아현동에 사는 백인계 혼혈인 박명수를 만났다. 공사장 막일을 하며 매일 술에 절어 난동을 부리던 사람이었다. 속된 말로 ‘튀기’라고 손가락질 받으며 자랐고 어머니가 성매매 여성이었다는 사실에 평생 괴로워하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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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거미의 땅 옛 미국 기지촌. [사진 시네마달]

그를 물심양면 보살피던 박 감독은 2005년 박명수가 어릴 적 살던 기지촌을 찾아가는 내용의 장편 다큐 ‘있다’를 만들었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하지만, 다큐 제작이 그의 삶까지 구원하진 못했다. 그는 여전히 술을 마셨고, 매일 박 감독에게 전화해 돈을 빌려달라고 애걸하다 화를 냈다. 박 감독은 전화 받기가 괴로워 휴대전화를 하나 더 개통했을 정도였다.

강한 트라우마를 가진 그가 내뿜는 고통의 에너지는 온몸을 지치게 만들었다.

그즈음 김 감독은 기지촌에 흘러든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이주여성을 다룬 장편 다큐 ‘아메리칸 앨리’(2008)를 만들었다. 이 다큐 제작을 계기로 두 감독은 연인으로 발전했고, 2008년 함께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길에 오르던 박 감독은 돌봐주는 이 없을 박명수가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 2009년, 두 남자의 죽음과 '거미의 땅'의 시작
처음 ‘거미의 땅’을 기획할 때 주인공은 박명수였다. 프랑스에 온 지 몇 달 뒤 그와 연락이 끊겼다.

1년 뒤 ‘거미의 땅’ 제작을 위해 서울에 돌아오니 그는 밥 대신 술을 마시다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의 죽음은 두 감독에게 깊은 충격을 안겼다.

동네 사람들은 ‘잘 죽었다’라는 듯 말했고 슈퍼 주인은 박 감독에게 박명수의 소주 외상값 7만 원을 갚을 거냐고 눈치를 줬다.

두 감독은 이것이 한국이 기지촌을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생각했다.

부끄럽고 그냥 흔적없이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역사의 치부.

비슷한 시기, 파주 선유리의 흑인계 혼혈인 김종철이 사망했다. 재개발을 위한 철거 현장에 용역 깡패가 들어와 지체장애인인 그를 구타해 생긴 일이었다.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한 과실치사로 처리했다. 두 사건을 지켜본 박 감독과 김 감독은 치욕과 상흔이 뒤엉킨 기지촌을 기록하되 왜곡 없이 담을 방법을 고심했다. 둘은 공간의 역사는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기억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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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거미의 땅`에 나오는 옛 미국 기지촌. [사진 시네마달]

혼혈인 실태조사를 하며 만난 파주 선유리의 큰어머니 역할을 했던 박묘연, 의정부 뺏뻘에 사는 박인순, 김포에 사는 흑인 혼혈인 안성자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 2010년, 그들만의 언어로 기지촌을 말하다
가장 고민한 부분은 기지촌 여성을 어떻게 담아내는가였다.

박 감독은 ‘나와 부엉이’를 만들 때 박인순이 미술 치료로 안정을 찾은 모습, 즉 해피엔딩의 결말을 낸 것을 반성했다.  그 결말은 단지 감독과 관객이 보고 싶어했던 것에 불과했다는 생각에서다.

비참하게 살아가는 그를 단순히 연민하고 응원하도록 나와 관객의 시선으로 대상화했다. 보고 싶은 걸 보여주니 호응도 좋았다. 하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었다.”

그의 말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아메리칸 앨리’를 만든 김 감독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전작의 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둘은 세 주인공과 함께 연출하기로 했다.

기지촌 문제에 사회적으로 발언하고 싶은 박묘연은 인터뷰로, 자신의 고통에 침잠해 왔던 박인순은 그림으로, 춤과 노래에 능한 안성자는 퍼포먼스로 자신을 표현하도록 했다.

그들 고유의 언어로 자신들의 기억을 재구성하게 하는 것, 그게 두 감독이 새롭게 찾은 재현 방식이었다.

두 감독은 이들이 한 말을 토대로 우화 같은 내레이션을 썼다.

제목의 모티프가 된 “여자들은 (중략) 개미처럼 일하고 거미처럼 사라져갔다”는 내레이션은 실제 박묘연이 자주 하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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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거미의 땅`에 나오는 옛 미국 기지촌. [사진 시네마달]


트라우마로 빚어낸 역설적 아름다움

'거미의 땅'이 이룬 미학적 성취

선정적 전략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도 숨을 멎게 한다.”

캐나다 몬트리올 영화제에선 '거미의 땅'을 이렇게 평했다.

대상을 자극적으로 그리지 않고도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찬사였다.

보는 이를 눈물 짓게 할 만한 요소가 있었지만 ‘거미의 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세 주인공은 자신들이 직접 선택한 방식으로 자기 과거를 말할 뿐이다.

박묘연은 임신 중절을 스물 여섯 번이나 했던 일을 고백하고, 박인순은 그림을 그리고, 자신을 괴롭힌 미군 남편과 포주를 생각하며 비명 같은 욕설을 내지른다. 안성자는 세라와 애니라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불러내 대화를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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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거미의 땅`. [사진 시네마달]

박 감독은 “주인공 각자의 방식대로 트라우마와 대면하는 게 힘든 현실을 이겨내는 법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각 주인공의 특성을 살려 협동 연출한 ‘거미의 땅’의 독특한 방식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째, 카메라와 대상 사이에 필연적으로 생기는 위계를 파괴한 점이다.
변성찬 영화평론가는 “이 다큐의 감독과 대상은 친밀함을 바탕으로 그 경계를 가뿐히 뛰어넘었다”며 “다큐의 중요한 사조인 시네마베리떼를 정직하게 실현해냈다”고 평했다.

감독의 개입을 가능한 한 배제하고 인터뷰 대상자들이 자발적으로 꾸밈없이 이끌어갔다는 뜻이다.

그것은 박 감독의 오랜 고민과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박 감독은 “현실의 고통을 설파하는 신파, 스펙터클을 위한 재연만큼 불편한 것이 없다”며 “다큐를 만들며 가장 피하려고 한 건 주인공을 구경거리로 전락시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둘째,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서사를 거부하고 기지촌의 역사를 풀어냈다는 점이다.
변성찬 평론가를 이를 전복적 시도, 대안적 접근으로 평가한다. 주인공들의 말보다는, 그림과 소리, 춤을 추는 몸짓에 집중한다는 점에서다.

변성찬 평론가는 “여성들의 몸짓, 즉 신체로 기지촌의 역사를 담겠다는 시도는 문자 언어로 체계화된 기존 역사에 대항하는 대안 역사로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는 말과 글처럼 공적인 언어를 배우지 못한 채 감각적인 표현만 할 가능성이 높고, 그 때문에 역사에 기록되지 못할 확률도 크다.

‘거미의 땅’은 소외된 이들의 방식으로 기지촌 역사를 담으려 했다.

다큐는 종종 국가가 기지촌에 붙여놓은 팻말 문구를 포착한다. “재개발 군사 지역이므로 외부인의 출입을 금한다.” ‘거미의 땅’을 관통하는 주인공들의 비언어적 행위는 이러한 위압적인 문자 언어와 대치하고 있는 듯 보인다.

신은실 영화평론가는 “사실의 기록이라는 다큐의 본래 개념을 뒤흔드는 시도도 엿보인다”고 평했다.

주인공의 말과 행동, 내레이션은 허구적으로 재구성됐기 때문에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즉 출연자가 자신이 드러내고 싶은 면모만 선보였거나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거미의 땅’은 그런 진위 여부에 관심이 없다. 그들의 중얼거림, 꾸며낸 환상 같은 거짓말 모두 역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거미의 땅’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황량한 기지촌의 풍경이다.

정적으로 보이지만 긴장감이 감도는 이미지와 정교하게 매만진 사운드가 보는 이의 신경을 자극한다.

다큐의 첫 장면, 무성한 수풀을 배경으로 새소리와 군가가 겹쳐 들릴 때 기지촌의 서늘한 기운에 몸이 쭈뼛해진다.

김성욱 영화평론가는 “고통스럽게 들리는 비명 같은 사운드와 기묘한 이미지는 끔찍한 기억의 부산물임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기지촌이 걸어온 역사적 내용보다는 기지촌 사람들이 겪는 트라우마가 어떤 감각인지 느끼게 하고 싶었다. 사실 사연은 비슷하다. 가난에 떠밀려 기지촌에 왔고 가족과 남편에게 버림받았다는 이야기들 등등. 중요한 건 이러한 집단적 기억을 영화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였다.”

'거미의 땅’은 바로 그 고통의 감각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고통이 세월에 얼마나 무심하게 잊혀졌는지를 드러낸다.

다큐는 이들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고통도 역사라고 말한다.

'거미의 땅'은 감각적 영상으로 관객을 압도하고, 전복적 역사 인식으로 한번 더 놀라게 하는 다큐다.

시네마베리테란?
본래 뜻은 ‘진실 영화’다.

1960년대 프랑스의 장 루슈 감독이 주장했던 다큐멘터리 제작 방법론. 감독과 등장 인물 간의 상호작용. 쉽게 말해 대상 참여형 다큐 제작 방식을 말한다.

루슈 감독은 1922년 영화 ‘북극의 나누크’(로버트 J 플래허티)를 예로 들면서 감독이 이누이트들과 친하게 지내며 이 영화를 찍은 점을 강조했다.

다큐는 현실을 기록할 뿐 아니라 사람과 관계를 쌓는 경험을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네마베리떼의 대표작은 루슈 감독의 ‘어느 여름의 연대기’다.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파리 시민에게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고 묻고,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물론 감독 본인까지 행복에 관해 골똘히 생각한다.

반대되는 이론은 다이렉트 시네마다.

‘거미의 땅’의 두 감독은 “실제 시네마베리떼 이론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요즘 두 감독이 가장 눈여겨 본 이는 포르투갈 시네아스트 페드로 코스타다.  출연자를 연출에 적극 개입시켜 만든 ‘반다의 방’(2000) 등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고.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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