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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스페셜 칼럼D

아카데미 후보…액션영화 매드맥스에 열광하는 또 한 가지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3일(현지시각) 발표된 아카데미상 후보 중 작품상, 감독상 등 10개 부문에 오른 영화. 국제평론가협회(FIPRESCI)와 미국비평가협회(NBR) 선정 2015년 ‘올해의 영화.' 유서 깊은 프랑스 영화지 까이에 드 시네마(Cahiers du Cinéma)가 선정한 2015년 10대 영화 중에서 예술영화들 사이에 낀 유일한 액션 블록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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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맥스 포스터.

이것이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Mad Max: the Fury Road)’가 거둔 성과다. 국내에서는 관객들의 요청으로 이 영화가 지난 금요일 17개 IMAX관에서 재개봉한 상태다. 대중과 평론가가 모두 이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개봉한 이 영화에 대해서 이미 좋은 리뷰가 많이 나왔다. 그러니 그 리뷰들에 이미 언급된 이 영화의 뛰어난 점들에 대해서는 굳이 여기서 자세히 쓸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얄팍한 CG 액션이 아닌 아날로그 액션이 주는 거친 질감과 무게감, 모래폭풍이나 퓨리오사의 절규 같은 몇몇 장면들의 탁월한 시적 아름다움, 마초 액션과 페미니즘 코드의 절묘한 결합 같은 것들 말이다. 한마디로 ‘매드맥스’는 군더더기 없이 질주하는 액션과 기묘한 풍경의 장관을 통해 주제를 임팩트 있게 전달하는 한 편의 영상시다.

여기에 내가 덧붙이고 싶은 것은 ‘매드맥스’가 제목이 무색하지 않게 ‘미침’을 자연스럽게 구현한 몇 안 되는 영화라는 것이다. 사실 광기를 컨셉트로 내세우는 영화는 수없이 봐왔으나 안타깝게도 대부분 ‘중2병’ 수준 광기였다. ‘나 미쳤으니까 말리지 마,’ ‘아, 나 좀 특이해,’ ‘이렇게 미쳐서 세상의 진부한 규범을 초월한 나, 짱 멋지지 않냐?’라고 외치는 것만 같은, 자아도취 물씬 풍기는 인위적 광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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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첫 장면에 등장한 맥스.

‘매드맥스’ 첫 장면에서 맥스가 폼잡고 서서 도마뱀을 씹으며 “내가 미친 건지, 다른 인간들이 미친 건지”라고 터프한 목소리로 말할 때만 해도, 또 하나의 중2병 광기를 보나 했다. 그러나 이건 영리하기 짝이 없는 조지 밀러 감독의 낚시였으니. 맥스는 곧이어 진짜 '미친놈'들인 워보이(War Boys) 에게 쫓기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맥스가 하는 모든 행동은 "매드" 맥스인데도 불구하고 매우 정상적이다. 그가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환영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쓸데없는 기행 따윈 하지 않고 모든 상황에서 생존이라는 목표를 위해 지극히 합리적으로 반응하고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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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보이 군대의 전투 자동차 앞에 매달린 주인공 맥스.

그나마 맥스가 좀 비정상으로 보일 때는 이동식 피주머니 신세가 되어 워보이 군대의 전투 자동차 앞에 매달려가는 장면. 웬만한 사람 같으면 눈앞만 보며 정신이 오락가락할 상황인데, 그는 사방을 살피다 옆의 차를 보며 “야, 그거 내 차잖아!”라고 부르짖는다. 그리고 또다른 장면에서는 정신 없는 상황에서도 워보이가 약탈했던 자기 재킷을 열심히 되찾아 입는다. 웃음이 나오는 뭔가 기괴한 장면이지만, 생각해 보면 이것 역시 물자가 절대 부족한 핵전쟁 이후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생존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맥스는 인간을 광기로 몰아넣는 시대에 딱 맞게 그만큼만 자연스럽게 미쳤다. (물론 맥스의 차와 재킷은 오리지널 매드맥스 시리즈를 상기시키는 장치기도 하다.)

이 영화의 주된 ‘미침’ 담당인 워보이들은 또 어떤가? 난 워보이들 나오는 장면에서 내내 웃었다. 그리고 웃으면서 한편으로 섬뜩했다. 미학에서 ‘그로테스크’는 웃음과 공포를 동시에 주는 뭔가 비틀린 것을 가리키는데, 워보이들은 이런 그로테스크의 정의에 딱 들어맞는다. 게다가 그들은 기괴하려고 맘먹고 기괴한 게 아니라서 더 기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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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기통"을 외치며 의식을 치르는 워보이들.

황폐화된 세상에서 비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전사로 키워진 워보이들은, 속도와 폭력을 숭배한다. 이들이 엄숙하게 “8기통, 8기통”을 외치며 자동차 핸들을 들고 의식을 치르고 두 손을 모아 8기통(V8)을 상징하는 손동작을 경례처럼 하는 걸 보면, 속된 말로 그 '병맛'스러움에 웃음이 터지다가도 나치 소년대원들이 떠오르며 흠칫하게 된다. "Shiny and chrome"한 상태가 되기 위해 입에 은색 스프레이를 뿌리고 적의 차로 뛰어들어 자폭하면서 “Witness me!(내 (용맹한) 행위를 지켜보고 증언하라!)”라고 외치는 워보이. 그리고 그걸 태연히 바라보며 응원하는 워보이들. 이 ‘미친놈들’을 보고 어이없어 웃다가도, 가미카제 소년병들, 알카에다 자살폭탄 테러리스트, 지금 이 시각에도 IS에 홀려 들어가고 있는 소년들이 생각나며 소름이 끼치고 또 한편으로 애잔하게 되는 것이다.

워보이들이 계속 외치는 말 “발할라에서 영생하리라!”는 실제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소년들을 전투로 몰아넣는 종교적 세뇌 시스템을 단적으로 요약한다. 지난해 극장용 자막에서는 ‘천국’으로 번역했던데, 그냥 ‘발할라’라고 하는 게 더 좋았을 것이다. ‘천국’이 아주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감독이 굳이 ‘발할라’를 사용한 데는 의도가 있으니까 말이다. 발할라는 고대 북유럽신화에서 최고신 오딘이 거처하는 전당이다. 중요한 건 그 전당에는 오직 전투 중에 죽은 전사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질병으로 죽거나 늙어서 자연사한 자들은 들어가지 못한다. 싸우다 죽어야 최고신의 전당에 들 수 있다니, 젊은이를 전투로 내모는 세뇌도구로 얼마나 강력한가.

발할라에 가리라고 믿으며 고대 바이킹 전사들은 끝없이 죽이고 죽이다 죽임을 당함으로써 생을 끝냈고, 천국에서 72명 처녀에게 시중을 받으리라고 믿으며 오늘날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은 자폭 테러로 자신과 수많은 무고한 이들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인류에게 처참한 비극이다. 그러나 저 멀리 안드로메다 외계인이 본다면 우리가 '매드맥스'의 워보이들을 볼 때처럼, 살짝 섬뜩한 황당 코미디라고 생각할 것이다. 원래 세상사는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니까, 그것도 미친 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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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치는 빨간 내복(?)의 워보이.

조지 밀러 감독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은 건, 이 비극이자 희극인 상황을 정교하게 균형을 잡아 묘사했다는 것이다. 워보이들(물론 우리의 스타, 기타 치는 빨간 내복 포함)들의 묘사에는 비장미와 공포와 어이없는 웃음이 놀라운 균형을 이루며 공존하고, 그들이 맥스와 퓨리오사와 벌이는 전투 액션에는 폭력의 처참함과 폭력의 쾌감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룬다. 그리고 이 모순된 것들의 공존으로부터 정말 자연스러운 광기가 흘러나온다. 짐짓 멋있어 보이려는 광기, 광기를 위한 억지 광기와는 차원이 다른, 미친 세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연스러운 미침이다. 인위적으로 미친 척하는 영화들과 그 주인공들은 모두 '매드맥스'에게서 진정한 광기의 한 수를 배워야할 것이다.

▼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예고 영상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사진·영상=Warner Bros. Pictu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