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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북핵 논의하다 남중국해 언급…한국 선택 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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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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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블링컨(左), 왕이(右)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정부가 대북 압박을 위한 국제공조에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지만 미·중 간 대립으로 한국 외교가 고민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 “남중국해에 국제 규범 중요”
중국 “각 측, 감정적 발언 말아야”
전문가 “한·중 외교자산 손실 우려
한반도 안보-미국 이익 분리 접근을”

고민은 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차관급 협의에서도 드러났다. 대북제재 외에도 남중국해 문제가 부각됐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가 그동안 직접 개입을 꺼리며 “국제규범을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론만을 내세웠던 문제다.

 16일 밤 일본 외무성 이쿠라(飯倉) 공관의 기자회견장엔 임성남 외교부 1차관,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부장관, 사이키 아키타카(齊木昭隆) 일 외무성 사무차관이 나란히 섰다. 한·미·일 외교차관급 협의를 마친 이들은 “‘철저하고 포괄적인 대응’을 통해 실질적 대북제재 조치를 시급히 취해야 한다”며 한목소리로 중국의 동참을 촉구했다.

 그러다 갑자기 주제가 남중국해 문제로 바뀌었다. 질문도 없었는데 블링컨 부장관이 “오늘 주된 논의는 국제규범 준수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문제를 포함, 이런 규범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에 관심을 공유했다”고 했다. 블링컨 부장관이 3국 외교차관급 협의를 계기로 중국에 ‘견제구’를 날린 것이다.

이어 사이키 차관도 이날 남중국해 문제가 논의됐다고 소개했다. 임 차관만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고려대 김성한(국제대학원) 교수는 “대북 압박에 초점을 맞추려는 한국과 3각 공조의 개념을 확장하려는 미·일의 인식 차이를 보여 준 장면”이라며 “북한 문제에 중국이 필요한 한국은 당연히 언급을 피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중국 외교부는 16일 홈페이지에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디디에 부르칼테르 스위스 외교장관의 회담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왕 부장이 공동기자회견 중 북핵 관련 질문에 답한 내용만 따로 떼어 소개했다.

왕 부장은 “유엔 안보리가 필요한 대응을 하는 걸 지지한다”면서도 “안보리의 새 결의에 대한 각 측의 생각과 관점이 완전히 일치하진 않는다”고 했다. 또 “중국은 한반도 핵 문제 모순의 (책임 있는) 당사자가 아니다. 각 측이 더 이상 감정적인 발언을 하지 않길 희망한다”고 했다.

외교가 소식통은 “미국과 한국 여론 등이 북한 핵실험을 중국의 정책 실패 탓으로 돌리는 것에 대한 불만을 간접 표출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한국의 고민스러운 선택을 요구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문제도 불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화여대 박인휘(국제관계학) 교수는 “미국은 이참에 한국의 중국 경사론 등 그간의 불만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라며 “한반도 안보라는 우리의 관심과 동아시아에서의 입지 강화란 미국의 이익을 잘 분리해 접근하지 않으면 그간 쌓은 ‘한·중 관계’ 자산이 손실을 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미·일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선제적으로 협력구도를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립외교원 김한권 교수는 “한·미·일 공조에 적당히 속도를 내 지금처럼 중국에 간접 압박 메시지를 보내면서 중국엔 한·중 간 전략채널 강화를 제안해 볼 만하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북핵에 특화한 한·미·중 전략대화를 주도, 한국에 유리한 외교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산정책연구원 봉영식 선임연구위원도 “사드나 남중국해 문제에선 결정을 미루면서 한·미·일 대북 군사정보 교류를 격상하는 방안이 있다. 이렇게 하면 중국을 너무 서운하지 않게 하면서도 미·일엔 실질적 조치를 취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미 국무부의 서열 1·2위가 잇따라 중국을 찾아 중국의 대북제재 동참을 압박할 계획이다. 블링컨 부장관(20~21일)에 이어 27일엔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베이징(北京)을 방문한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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