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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소조’ 한마디에 위안화 값 급등 … 막후 수퍼파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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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주재 중국 총영사관. 중앙재경(財經)영도소조 판공실 부주임인 한쥔(韓俊)이 마이크 앞에 섰다. 최근의 위안화 약세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는 그의 어조는 단호했다. “위안화 값이 달러당 7.6위안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터무니없다.”

[똑똑한 금요일] 중국경제 컨트롤타워

 강경 발언이 이어졌다. “중국 당국이 위안화를 고삐 풀린 말처럼 내버려둘 것이라고 보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위안화 투기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시장 상황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선전포고였다.

 몇 시간 뒤인 12일 홍콩 자금 시장.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위안화가 순식간에 증발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역외시장인 홍콩 외환시장에 달러를 풀고 위안화를 대거 사들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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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후버연구소·신화사]

시장에서 위안화가 마르자 홍콩 은행 간 초단기 위안화 거래 금리는 연 13.4%에서 순식간에 66.8%로 솟구쳤다. 올 들어 역외시장에서 계속 떨어지던 위안화 값이 급반전했다. 본토시장(역내시장)인 상하이 외환시장의 위안화 값과 거의 비슷해졌다.

 이전만 해도 홍콩 역외시장의 위안화 값이 본토시장 위안화 값보다 쌌다. 이 차이를 노리고 환투기 세력이 달려들었다. 이런 투기 세력에 인민은행이 달러 폭탄을 투척한 것이다.

홍콩 일간지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는 “인민은행이 투기꾼이 큰 손해를 보도록 한 방 먹였다”고 보도했다. 이후 중국 본토와 역외 외환시장에서 위안화 값은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다. 투기 세력은 물러섰다. 중국 정부의 판정승이었다.

 미리 짠 각본처럼 한쥔의 선전포고와 인민은행의 무력행사가 바로 이어졌다. 둘 사이의 연결 고리는 무엇일까.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 중 하나가 중앙재경영도소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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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재경영도소조는 중국 공산당 산하의 조직으로 실질적인 최고 경제정책 결정기구다.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의 경제를 주무르는 장막 뒤의 컨트롤타워로 불린다. 중국의 금융·통화·환율정책, 농촌 문제, 산업구조 조정 등 경제정책을 총괄한다. 최근에는 시장과 일전을 치르는 전투사령부의 역할도 맡고 있다.

 영도소조(領導小組·Leading Small Group)는 중국 공산당 내에서도 특이한 조직이다. 당정(黨政)일치 체제인 중국에서 공산당은 ‘전국대표대회-중앙위원회-정치국-정치국 상무위원회’라는 피라미드 구조로 이뤄져 있다.

SCMP는 “베이징의 권력 구조는 큰 인형 안에 작은 인형 2~3개가 들어 있는 러시아 전통 공예품 마트료시카를 닮았다”며 “안쪽으로 갈수록 더 힘센 의사결정기구가 있다”고 분석했다.

 영도소조는 이런 공산당 조직표에는 없는 비공식 의사결정기구다. 영도소조는 대부분 상설이지만 일상적인 업무는 다루지 않는다. 부처의 업무 칸막이를 넘어 여러 부문을 포괄하는 초월적 권력을 갖고 특별한 임무를 수행한다. 중국 공산당 내 최고위급 ‘태스크포스(TF)’팀이다.

 스티브 창 영국 노팅엄대 교수는 “중요한 정책 문제와 관련해 영도소조는 각 부처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중요한 정책일수록 영도소조 최고위 지도자가 결정한다”고 말했다.

 저우왕(周望) 중국 난카이(南開)대 교수는 성격에 따라 영도소조를 세 가지로 구분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준비 영도소조처럼 특별 업무 수행을 위해 꾸려지는 소조다. 2008년 원촨(汶川) 대지진과 같은 자연재해 등 비상 상황에 꾸려지는 영도소조도 있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중요 정책을 이끄는 영도소조다. 외교안보정책 결정 기구인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와 대만 관련 정책을 다루는 중앙대만공작영도소조, 중앙재경영도소조가 여기에 속한다.

 1980년 설립된 재경영도소조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와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 등이 조장을 맡았다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이다. 재경영도소조의 실체는 2014년 6월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관련 보도를 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조장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고 부조장은 리커창(李克强) 총리다. 류윈산(劉雲山)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과 장가오리(張高麗) 국무원 상무부총리, 류옌둥(劉延東) 국무원 부총리, 왕양(汪洋) 국무원 부총리,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 총재 등 주요 경제부서 장관과 금융기구 수장이 조원이다.

 이 소조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이유는 중국 경제정책의 청사진을 그리기 때문이다. 중국의 환율과 금리 정책은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결정하지만 결정의 근거가 되는 보고서는 재경영도소조 판공실이 만든다.

7월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열리는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제출할 경제정책 리뷰와 12월 열리는 경제공작회의 준비도 재경영도소조의 몫이다. 이뿐만 아니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와 발맞춰 5개년 계획을 비롯한 각종 경제정책도 재경영도소조가 수립한다.

 미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의 중국정치전문가인 앨리스 밀러 연구원은 “정책 집행과 관련한 영도소도의 역할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재경영도소조”라고 설명했다.

 재경영도소조에 포진한 경제 브레인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대표적 인물이 시진핑의 경제 책사로 알려진 류허(劉鶴)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이다. 시 주석의 중학교 동창인 류허는 ‘신창타이(新常態·뉴노멀)’ 개념을 설계했다. 신창타이는 중국 경제가 9~10%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던 고속 성장기를 지나 6%대의 중속(中速) 성장 시대를 맞았다는 것이다.

 13차 5개년 계획(2016~2020년)을 관통하는 핵심 정책 의제인 ‘공급측(供給側) 개혁’도 지난해 10월 류허가 처음 언급한 뒤 ‘시진핑 경제학’의 화두가 됐다. 과잉 공급 혁파, 좀비 기업 구조조정, 감세 등을 통해 수출 중심에서 내수 중심으로 경제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21세기판 육상·해상 실크로드를 구축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을 고안한 ‘은둔의 책사’ 왕후닝 중앙정책연구실 주임도 재경영도소조 멤버다. 중국 증시가 급락하던 지난해 7월 리커창 총리와 함께 증시부양책을 진두지휘했던 마카이(馬凱) 국무원 부총리도 재경영도소조 조원이다.

 이들은 그동안 장막 뒤에 은둔했지만 최근 들어 서서히 전면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중국 주식시장 급락 사태가 빚어졌을 때 류허 주임은 중국 경제 매체 재경망(財經網)과 인터뷰를 하고 “아무런 문제 없다. 안심하라”며 시장의 혼란을 잠재웠다.

 위안화 가치가 계속 하락해 투기 세력이 끼어들자 한쥔 부주임이 뉴욕까지 날아가 기자회견을 한 것도 이례적인 행보였다. 인민화보사의 잡지 ‘중국’은 “재경소조가 무대 앞으로 나온 건 당이 경제 업무지도를 강화하고 개혁의 고삐를 죄기 위해서”라고 보도했다.

 중국은 세계 경제의 물살을 뒤흔드는 거함이 됐다. 세상의 눈은 거함의 키를 잡은 재경영도소조의 위기관리 능력을 주시하고 있다.

가장 두려운 시나리오는 재경영도소조 내 컨센서스 붕괴다. 실제로 이전까지 주룽지(朱鎔基)와 원자바오(溫家寶) 등 총리가 맡았던 조장 자리를 시 주석이 넘겨받자 리커창 총리와 균열이 생긴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스티브 로치 예일대 교수는 “정책 사령탑의 판단 착오는 시장 상황에 따라 언제나 수정 가능하지만 컨센서스가 이뤄지지 못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위기는 심화한다”고 말했다.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 의회의 의견이 엇갈렸던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이 컨센서스 부재로 인한 대표적인 비극으로 꼽힌다. 시장의 역습에 직면한 중국이 위기를 현명하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베일 뒤 컨트롤타워가 시험대에 올랐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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