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비서실장 출신 권노갑 고문이 이끄는 동교동계 주력부대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DJ와 노무현이 사실상 결별한 것이다. 이보다 앞서 12년 전 노무현 대통령을 거부했던 동교동계 핵심이 있다. 열린우리당 합류를 거부하고 민주당을 지켰던 한화갑 전 대표다. 그는 2012년 대선 때는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한광옥 전 대표와 함께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14일 오후2시에 생방송된 중앙일보 인터넷 방송 ‘직격인터뷰’ 36회에는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한반도평화재단 총재가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한 전 대표는 김진 논설위원과 함께 노무현과 문재인을 거부하는 동교동 세력의 속마음을 파헤치고, 다가오는 총선 판도를 전망했다.
다음은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와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일문일답 전문.
- 권노갑 고문을 필두로 한 동교동계의 탈당을 어떻게 보는가.
- “큰 사건이다. 나는 이미 오래 전 탈당해 권노갑 고문과 행동을 함께할 수 없었지만, 당적을 유지하고 있었더라면 권 고문과 함께 행동했을 것이다. 권노갑 고문의 탈당은 더불어민주당의 수명이 다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본다. 이차대전 당시 끝까지 항복을 거부하던 일본이 원자탄 두 방을 맞고 무조건 항복한 것과 같이, 한국 야당사에서 이번 동교동계의 탈당은 노무현의 후계자들이 세운 더불어민주당의 패망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이제 더불어민주당은 재기하기 힘들 것이다.”
- 동교동계가 갖고 있는 친노 강경파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무엇인가.
- “긴 이야기다. 노무현 정부와 김대중 정부의 차이점부터 시작해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변에는 60~80년대라는 어려운 시대를 거쳐 오면서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하는 그룹이 있었다. 이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후 청와대나 내각에 들어가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어도 선출직 외에 내각이나 청와대 자리를 차지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내가 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김대중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을 도운 ”개국공신“의 역할은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으로 끝난 것이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선출직 외에 다른 관록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자마자 초대 내각과 청와대를 공신 위주로 꾸렸고, 이들이 그 경력을 바탕으로 총선에 나갔다. 노무현 세력이 형성된 것이다. 반면 김대중 정부의 경우, 5년간 내각과 청와대에 기용된 인사들은 동교동계 외부의 새로운 인사였고, 이에 따라 김대중 대통령 이후에는 김대중 세력이 남지 못했다.”
- 동교동계와 호남을 등에 업고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 이후 호남을 차별했다는 말이 많은데.
- “그렇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 덕분이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차별화 전략을 썼다. 첫째, 새천년민주당을 버리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둘째, 남북문제에 있어서 대북송금 특검을 강행했다. 이는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지 김대중의 후계자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렇듯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차이를 강조했다.”
- 동교동에서 공신인 한화갑을 제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밀어준 이유는 무엇인가. 그 때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았나.
-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밀어준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차기 정권 창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배신감은 느끼지 않았다. 전라도 사람이 또 대통령이 되겠느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는데도 수십 년이 걸렸는데 어떻게 연이어 전라도 출신 대통령이 나오겠느냔 말이다. 그러니 경상도 후보를 내세우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라도 표를 몰아주어 당선시킨다는 전략을 세웠고, 이 전략에 따라 동교동계 전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밀어주게 되었다.”
- 18대 대선에서 동교동계가 문재인 후보를 지원한 이유도 경상도 사람이어야 집권이 가능하다는 논리 때문이 아닌가.
- “그것은 아니다. 그때는 우리 당의 후보기 때문에 밀어준다는 마음이었다.”
-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권노갑 고문이 정몽준 의원을 민주당 대통령 단일후보로 만들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선호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 “구체적인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당시 ‘후단협(후보단일화협의회)’ 국회의원들이 탈당해서 정몽준 세력에 합류한 것은 그러한 분위기의 영향이 있었다.”
- 그렇다면 정몽준 의원이 만약 1~2년 일찍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더라면 동교동계의 지원을 받아 대통령 후보가 될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나.
- “그렇다. 그 당시에는 동교동이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었으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도 당시 정몽준 의원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2000년경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내게 넌지시 "정몽준 의원이 입당하면 어떻겠는가" 하고 묻기도 했다.”
-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4월 총선에서 안철수 세력이 호남에서 득세할 것으로 보는가.
- “그렇다. 지금 호남에 박주선 의원, 박준영 전 전남지사와 천정배 의원 등이 신당 창당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결국은 안철수 의원과 합세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안철수 의원이 신당을 창당하면 지지하는 것이 대세로 보인다.”
- 내년 대선에서 호남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경상도 후보를 내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호남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인사로 안철수 의원이 유력한 것으로 볼 수 있나.
- “그건 아직 모른다. 문재인 대표에 대한 지지가 원망으로 돌아서는 상황에서, 야당에서는 그나마 안철수가 낫지 않느냐 하는 것이지 안철수를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하는 열망이 큰 것은 아니다.”
- 18대 대선에서 한광옥 전 대표, 김경제 의원과 함께 동교동계를 이탈하여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면서 많은 갈등을 겪었다. 박근혜 정권에서 현재까지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는 이유는.
- “내가 요청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에 들어가지 않은 것도 내가 감투를 얻고자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동교동을 이탈한 것이 아니다. 한 부분에서 생각이 다른 것뿐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파월 전 국무장관은 공화당이지만 오바마를 지지했다. 이를 가지고 파월 전 장관을 배신자라고 부르지 않듯이, 한 가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배신자로 볼 수는 없다. 나는 전라도 사람을 차별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할 수는 없다는 신념에 따라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것이다.”
정리 이지운 인턴기자 lee.jeeun@joongang.co.kr
촬영 김세희·이진우·임건·장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