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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인사이드] 형법상 모욕죄, 'X발' 은 무죄 '개XX'는 유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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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311조의 모욕죄 조항입니다.

그런데 어떤 말이나 표현이 ‘모욕’에 해당할까요?

대법원 판단은 상황마다 달랐습니다.

승객에게 “개XX”라고 말한 택시기사는 유죄, 경찰관에게 “X발”이라고 말한 남성에게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유를 한번 보시죠.

지난 2014년 6월 새벽 2시. 택시기사와 요금문제로 시비가 벌어진 이모(45)씨가 112신고를 했습니다.

경찰관은 신고를 받은지 20분이 지나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화가 난 이씨는 “이 정도는 알아서 찾아와야 되는 것 아니냐”고 늦게 출동한 것에 화를 내면서 “아이 X발!”이라고 욕설을 했죠.

경찰관은 이씨를 모욕죄로 현행범 체포했습니다.

1ㆍ2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은 이씨의 행동을 모두 모욕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벌금 5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이런 이유였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욕설을 한 사안으로 그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

그런데 이씨의 불복으로 진행된 상고심 심리에서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원심이 모욕죄 판단을 잘못했다”며 이씨에 대해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했습니다.

재판부는 모욕죄에 대해 “사람의 가치에 대한 외부적인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아이 X발’이라는 발언은 구체적으로 상대방을 지칭하지 않은 채 단순히 발언자 자신의 불만이나 분노감을 표출하기 위해 흔히 쓰는 말이고, 피해자를 특정해 인격적인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경멸적 감정을 표현한 모욕적인 언사는 아니다”고 한 겁니다.

사람마다 언어 습관이 다른데 표현이 무례하고 저속하다는 이유로 법으로 처벌해선 안 된다는 것이죠.

반면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상대방에게 “개XX”라고 말한 택시기사 김모(57)씨는 모욕죄가 유죄로 인정됐습니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지난해 12월 모욕죄로 기소된 택시운전기사 김모(57)씨에게 벌금 3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김씨는 2014년 4월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역 부근에서 택시 요금을 늦게 준다는 이유로 문 밖에 서 있는 손님에게 욕설을 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재판부는 “모욕죄의 ‘공연히’라는 요건상 불특정 또는 다수가 통행하는 구로디지털단지역에 피해자를 내려주면서 주변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욕설을 한 것은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여러 사람이 있는 앞에서 인격을 깎아내리는 행위일수록 모욕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내뱉은 말의 성격’을 놓고 모욕죄의 해석을 담은 대법원 판례도 소개합니다.

A대학 박모(54) 교수는 소속 대학총장을 비판하기 위해 동료교수들에게 “총장은 독단적이다” “음흉하다” “비민주적” 등의 표현을 써서 e메일을 보냈다가 모욕죄로 기소됐는데, 대법원은 무죄라고 판단했거든요.

“독단적ㆍ비민주적ㆍ음흉한 등의 단어는 남을 비판할 때 통상적으로 쓸 수 있는 표현이고,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담은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고 해석했습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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