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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FTA 共商·共建·共享] 백색가전·기계→IT제품·자동차→주방용품·화장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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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수교 24년째, 양국은 말 그대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관계 발전을 이뤘다. 그 기반은 역시 경제였다. 경제적 윈-윈 구조의 토대 위에 정치·사회·문화 등 전방위 협력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얘기다. 많은 기업이 중국으로 갔고, 우리 상품과 서비스가 만리장성을 넘었다.

중국 시장서 성공한 한국 대표 브랜드 변천사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의 박천일 통상연구실장은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 시장 공략에 성공한 기업들이 지난 25년여 동안 우리 경제를 이끌어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중국 시장에서 히트한 한국의 대표 브랜드를 살펴보는 이유다.

1992년 수교와 함께 가장 먼저 중국으로 건너간 분야가 바로 신발·완구·보석·의류 등 임가공 산업이다.

많은 기업이 중국의 저임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공장을 중국으로 옮겼다. 광둥(廣東)성 둥관(東莞)·선전(深?),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옌타이(烟台), 장쑤(江蘇)성 쿤산(昆山)·쑤저우(蘇州), 톈진(天津) 등이 대표적인 진출 지역이다.

당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은 해외 판매망이었다. 장병송 KOTRA 중국사업단 단장은 “당시 중국 기업들은 해외 마케팅 경험이 전무했기에 우리 기업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며 “적지 않은 기업이 중국에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회고했다.

수교 초기엔 임가공 산업이 주류

1990년대 중반 들어 백색가전이 히트한다. 삼성·LG·대우 등이 현지 공장을 세웠고, 제품 대부분을 현지에서 판매했다. TV·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이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중국 고가 시장을 파고들었다. 멀리 신장(新疆)성 우루무치 아파트 벽에서도 ‘LG 에어컨’을 쉽게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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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 스마트폰.

가전제품에서 자신이 붙은 업체들은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모니터(브라운관)·컴퓨터·휴대전화 등 IT시장 공략에 나섰다. KOTRA 장 단장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전반에 이르는 약 10여 년 동안 국내 대기업들은 중국에서 초호황을 누렸다”며 “이는 우리나라가 IMF위기에서 탈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기계 분야에서는 대우중공업(현 두산인프라코어)과 현대중공업이 생산한 굴착기가 시장을 넓혀갔다. 두 회사는 90년대 말 산둥성 옌타이와 장쑤성 창저우(常州)에 진출해 제품을 쏟아냈다.

특히 대우중공업은 한때 시장점유율을 25%까지 끌어올리는 등 굴착기 시장의 메이저로 등장하기도 했다. 중국 전역의 건설 현장에서 ‘DAEWOO’ 브랜드를 단 굴착기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채규전 전 대우중공업 옌타이법인 법인장은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및 부동산 개발 붐으로 수요가 급증하면서 제품은 만들기가 무섭게 팔려나갔다”며 “중국 전역을 커버하는 유통망으로 시장을 파고들었다”고 되돌아봤다.

2002년 현대자동차가 베이징에 현지 공장을 세우면서 양국 경협은 한 단계 더 격상된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을 놓고 세계 메이저 자동차 메이커와 경쟁할 수 있게 됐다.

현대는 베이징에 연간 130만 대 생산 규모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충칭(重慶)과 허베이(河北)성 창저우(滄州)에 제4, 5 공장을 짓고 있다.

설립 이후 중국 사업에 관여하고 있는 노재만(전 베이징법인 법인장) 현대자동차 고문은 “베이징 공장 설립과 함께 국내 부품업체들도 대거 동반 진출하게 됐다”며 “이는 현대자동차의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이 중국에 형성되고 있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2010년에 들어서면서 소비자에게 직접 다가가는 생활형 주방제품이 인기를 끌었다. 중국이 성장 전략을 기존의 투자·수출 중심에서 내수·소비로 바꾸려는 흐름과 무관치 않다.

가장 먼저 대륙 주부들을 사로잡은 게 바로 밀폐용기 ‘락앤락’이다. 이 제품은 2005년 CJ홈쇼핑의 상하이 홈쇼핑 채널인 동방CJ 방송을 타면서 빠르게 시장을 넓혀갔다.

이어 한경희청소기, 휴롬녹즙기 등이 히트상품 대열에 오르게 된다. 한국 제품이 갖고 있는 편리성, 디자인, 적절한 가격 등이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주방 생활용품 분야 최대 히트상품은 역시 쿠쿠전자·쿠첸 등이 활약하고 있는 압력밥솥이다. 쿠쿠전자는 중국에서의 판매 호조에 힘입어 2014년 기업공개에 나서기도 했다.

한류·유커 산업 폭발

요즘 대세는 화장품이다.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 등 대기업뿐 아니라 미샤·네이처리퍼블릭·페이스샵·메디힐 등 중견 화장품 메이커의 브랜드들도 중국 시장에서 대박을 치고 있다. 중국인들의 한국 화장품 사랑은 지난해 광군제(光棍節·11월 11일) 특수 때 여실히 드러났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광군제 기간(11월 11~20일) 동안 알리바바의 티몰에서 판매돼 중국으로 수출된 한국 상품은 약 737만 달러에 달했다. 이 중 80% 이상이 화장품이었다.

마스크팩 브랜드인 메디힐의 차대익 사장은 “동양인의 피부에는 서방 명품보다 오히려 우리나라 제품이 어울린다”며 “이미지를 잘 관리해 나간다면 중국에서의 K-뷰티 붐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은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제2위 대중국 화장품 수출국(1위는 프랑스)으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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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두 주인공인 전지현과 김수현.

한류(韓流)는 중국 시장 공략의 끝없는 힘이다. 드라마의 파괴력이 가장 컸다. 1997년에는 ‘사랑이 뭐길래’가, 2004년에는 ‘대장금’이, 2014년에는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인들을 웃기고 울렸다. 한류가 있었기에 공연 ‘난타’, 컴퓨터 게임인 ‘크로스 파이어’, 한·중 합작 영화 ‘이별계약’ 등 소프트산업이 2010년 이후 중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장수 브랜드 원동력은 기술

중국 시장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기술에 달렸다. 90년대 중국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백색가전, 굴착기 등은 지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임가공 공장은 2000년대 중반 철수하거나 도산했다. 중국 로컬 기업의 기술 추격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뒷받침된 품목은 10년, 20년 되도록 굳건히 시장을 지키고 있다. 휴대전화 분야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1990년대 말 ‘애니콜 신화’로 시작된 삼성전자의 중국 휴대전화 사업은 2000년대 말 한계에 달했다. 중국 로컬 기업들이 치고 올라온 탓이다. 그게 끝은 아니었다.

삼성은 2010년 들어 스마트폰 ‘갤럭시’를 출시하면서 다시 휴대전화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디스플레이의 경우 2000년대 중반 브라운관에서 LCD로의 전환에 성공하면서 시장 우위를 지켰다.

오랫동안 중국 사업을 주관해 온 함정오 KOTRA 부사장(전 중국본부장)은 “한·중 경협을 가능케 한 요인은 단 하나 한발 앞선 기술이었다”며 “굴착기나 백색가전 시장이 그렇듯 기술이 없다면 중국 시장은 그냥 ‘그림의 떡’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10년 후 중국 시장에서 먹고살 수 있는 기술을 지금 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20년 히트상품 ‘초코파이’

지난해 7억 개, 중국인 2명 중 1명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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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랜 기간 중국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은 한국 브랜드를 꼽으라면 단연 ‘초코파이’다.

1997년 현지 생산 체제 구축과 함께 본격 시장 공략에 나선 후 지금까지도 히트상품으로 팔리고 있다. 지난 한 해 중국에서 팔린 초코파이는 약 7억 개, 전체 초코파이 시장의 약 83%를 차지했다. 중국 내 초코파이 매출은 2010년 이후 한국을 추월했다. 이 회사는 ‘초코파이 신화’를 바탕으로 제품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스낵류 과자인 ‘오!감자’는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2000억원 넘게 팔렸다. 이 밖에도 ‘예감’ ‘고래밥’ ‘자일리톨껌’ 등이 1000억원 이상 팔린 메가 브랜드에 합류했다. 2014년 이 회사의 중국 매출은 약 1조1600억원, 국내 매출보다 많았다.

오리온 성공의 첫 번째 요소는 현지화다. 정서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제품 이미지를 한국에서의 ‘정(情)’ 대신 중국 전통적 의미가 강한 ‘인(仁)’으로 바꿨다.

베이징 법인의 김상윤 마케팅부문장(상무)은 “현지에 파견된 직원들은 대부분 10년 이상 근무한 중국 비즈니스의 베테랑들”이라며 “초코파이가 한국 브랜드임을 아는 중국인이 드물 정도로 현지화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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