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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샤오미폰 해프닝과 소비자의 역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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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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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논설위원

분명 합리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지난주 가장 핫한 유통가 논란거리였던 샤오미폰 해프닝 얘기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랬다. 온라인 쇼핑몰 인터파크가 KT와 손잡고 중국의 샤오미 신형 휴대전화인 ‘홍미노트3’를 판매한다며 홍보해놓고 행사 이틀 만에 취소한 거다. 이에 언론과 소비자들이 갑론을박하며 들썩거렸다. 논란과 해설은 흉흉했다. 일각에선 KT가 국내 제조 대기업들의 눈치를 봤거나 홍미노트의 인기에 놀란 제조사의 압력에 굴복했으리라고 관측했다. 다른 일각에선 국내법 위반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데 이런 논란들은 상당 부분 근거가 없었다.

 먼저 국내법 위반 가능성은 ‘참’이 아니다. 이번 행사가 관심을 끌었던 건 KT라는 기간망 사업자가 주체가 되어 중국폰을 개통해준다는 일종의 ‘착각’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한데 실은 이번 행사는 우리나라에서 중국폰이 유통되는 전형적 방식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었다. 이런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전파법상 기업이 휴대전화 등 정보기술(IT) 기기를 수입할 경우 정부에서 전파인증을 받아야만 한다. 하지만 개인이 쓰려고 외국에서 사오는 휴대전화는 전파인증을 받지 않아도 된다. 이에 오픈마켓들이 구매대행을 하고, 소비자들이 해외직구로 단말기를 사는 형태로 중국폰이 유통된다. 이번 행사도 바로 이 방식이었다. 6만원대의 싼 가격도 단통법 위반이 아니다. KT가 보조금을 지급한 게 아니라 판매자 가격이다. KT는 개인 휴대전화에 망을 깔아주는 망사업자로 참여하는 형태였다. 이렇게 법을 위반하지 않고 중국산 휴대전화를 거래하는 ‘창의적 유통기법’은 이미 시장에서 통용되고 있다.

 이 와중에 이야기의 주인공은 인터파크·KT·홍미노트3였는데, 행사와 아무 관련도 없었던 국내 제조사들이 실컷 욕을 먹고 의심을 받는 상황이 전개됐다. 제조사 관계자들은 “그런 행사가 열리는지도 몰랐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실제로 이번 행사만 보면 제조업체가 위기감을 느낄 만큼 성공적이지도 않았다. 행사 이틀 동안 팔린 휴대전화는 10여 대에 불과했다. 하루 5만 대의 휴대전화가 팔리는 우리 시장에선 거의 무의미한 숫자다. 제조업체 관계자는 하소연했다. “우리 5800만 가입자 시장에 풀린 중국폰은 아무리 많이 쳐도 10만 대를 넘지 않는다. 아직은 우리 소비자들이 중국폰 사기를 꺼린다. 이 와중에 우리가 무슨 압력까지 넣겠는가.”

 그럼에도 중국폰을 선뜻 살 것 같지 않은 꽤 많은 소비자들과 일부 언론들은 ‘중국폰 메기론’을 주장하고, 일부는 국내 제조사를 욕하기 위해 중국폰 찬가를 부른다. 왜 이런 냉소가 번지고 있는 것일까?

 가장 유력한 설은 원죄론이다. 과거 애플의 아이폰이 우리나라에만 2년 늦게 상륙한 것이 국내 제조사들의 압력 때문이었다는 건 공개된 비밀이다. 게다가 전파법은 외국의 IT 기기가 한국시장에 상륙하는 걸 어렵게 하고 지연시킨다. 소비자들은 신종 기기를 접하려면 편법을 동원해 그나마 한글화가 안 돼 남의 나라 말만 되는 기기를 사야 한다. 대기업·통신업체·정부가 함께 높은 진입장벽을 만들어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고 대기업 잇속만 챙긴다는 불만은 이미 넘치고 있다.

 이번 해프닝에서 제조업체들이 공격당하는 비합리적 상황을 통해 봐야 할 건 ‘중국폰의 역습’이 아니라 오히려 ‘소비자의 역습 혹은 변심’의 조짐이었다. 국산품에 대한 충성도가 높기로 세계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게 우리 소비자들이다. 한국 상품이 외국에서 인기를 끈다면 그 회사 오너만큼이나 기뻐해줬다. 상품과 시장을 함께 키워줬다. 한데 이젠 중국폰이 들어와서 우리 제조업체들을 혼내줘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소비자들은 애국심이 아니라 소비자 선택권과 이익의 확대를 주장한다. 더 이상 호갱으로 보지 말라는 선언이다. 우리 소비자들은 왜 변했을까? 이제 대기업과 정부가 함께 대답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아울러 어떻게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지도 말이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