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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인사이드]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비전향 장기수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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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에서 재심 결정이 된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하지만 요즘 잊혀진 줄 알았던 당시의 고통이 되살아나 오히려 힘이 들어요. 재심을 포기하고 죽어간 사람들의 심정을 알 것 같습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비전향 장기수' 장의균(66)씨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습니다.

지난 달 18일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 허부열)가 장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린데 대한 짤막한 소회였습니다.

장씨는 전두환 정부 때인 1987년 7월 간첩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현 국가정보원)와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는 그 해 9월 "장씨가 유학을 가장해 일본으로 건너간 뒤 친북 성향 조총련 인사들로부터 간첩 교육을 받고 귀국해 재야와 야당 정치인 등 반정부 운동권의 동향을 보고해왔다"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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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27일 안기부가 남산 청사를 서울시로 넘기고 서초구 내곡동으로 이전함에 따라 일반에 공개된 안기부 남산 구청사.[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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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혐의로 구속 기소된 장씨는 "영장 없이 불법 체포·감금됐다"고 주장했다.[자료 사진]

간첩 혐의로 구속 기소된 장씨는 재판 과정에서 "수사 때 영장 없이 불법적으로 체포·감금돼 고문을 받고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1심에서 징역 15년, 2심에서 징역 8년 을 선고받고 복역했습니다. 장씨는 "공소 사실이 조작됐다"며 전향 각서 작성을 거부했습니다. 95년 8월 만기 출소한 이후로 현재까지 비전향 장기수로 분류 돼있습니다.

장씨가 서울고법에 "다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소송을 낸 건 2014년 10월입니다.

7개월뒤인 지난해 5월 26년 만에 다시 법정에 선 그는 "재심 여부를 가리게 된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연신 눈물을 흘렸습니다.

장씨는 재판부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당시 상황과 심정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처음 연행될 때부터 눈을 가린 채 끌려갔습니다. ‘소문나기 전에 풀어 줄 테니 반성한다는 각서만 써놓고 얼른 나가라’고 했습니다. ‘북한에 갔다 오지 않았느냐’‘노동당에 가입했지’ 하면서 고문 조사를 받았습니다 재판에서는 제가 간첩이라는 증거가 무엇이냐고 했더니, 재판장이 “그러면 간첩이 아니라는 증거는 있느냐”라고 했습니다…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모든 국민이 그렇겠지만 저는 간첩이라는 말소리도 싫습니다. 그런데 간첩으로 만들어져서 지금껏 고통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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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1년여 간의 심리 끝에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이 법원의 심문 결과에 따르면 안기부 또는 보안사 소속 수사관들이 장씨를 연행해 보안사 수사분실로 데려가 그곳에서 외부 출입을 통제하고 외부 연락도 차단한 채 조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장씨가 영장 없이 불법 체포·감금 돼 수사를 받은 사실도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불법체포·감금죄는 공소시효(5년)가 만료 돼 당시 수사관들에 대한 유죄 판결은 얻을 수 없다"면서도 "법원의 사실조사를 통해 그러한 사실이 증명됐다"고 한 겁니다.

하지만 검찰은 즉각 재항고 했고,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남아 있습니다.

장씨는 "8년간의 수형 생활을 마치고도 지금까지 20년간을 '전향 안 한 간첩'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보안관찰 하에서 살아왔다"면서 "지금까지 전향서를 쓰지 않은 건 그러면 간첩죄를 자인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민주주의를 믿는다. 빨리 재심이 개시돼 공개적으로 정당한 재판을 받고 싶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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