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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왜 위안부 할머니 손잡고 설명하지 않았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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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조문규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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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는 7일 ‘중용의 삶-한·일 관계에 대한 성찰, 오럴 히스토리(Oral History) 기록’ 출판기념회를 연다. 고하리 스스무 교수 등 일본 정치학자 4명이 한·일 관계를 중심으로 묻고 최 교수가 답한 구술 기록을 정리한 책이다. [사진 조문규 기자]

한·일 양국이 지난주 외교장관 회담을 열어 일본군 위안부 협상에 전격 합의했다.

[최상연의 직격 인터뷰] 위안부 문제 불가역적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최상용 전 주일대사

위안부 동원의 책임을 일본 정부가 공식 인정하고, 일본 정부 예산으로 피해 할머니 지원 사업을 하겠다고 약속한 게 주요 내용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기존 태도에 비춰 보면 합의안은 평가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소녀상 이전 문제, 일본 총리의 사죄를 총리가 아닌 외교장관이 대신 낭독한 데 따른 진정성 문제로 양국에선 엇갈린 보도가 이어지고 비판 여론이 커졌다.

특히 국내에선 부정적 여론이 우세하다.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에게 한·일 관계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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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위안부 협상이 타결됐지만 후폭풍이 거세다. 어떻게 보나.
“이번 합의는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결단에 미국의 권고가 합쳐 나왔다. 한·일 관계에서 최악의 상황은 막아 보려는 노력의 결과다. 하지만 협상 과정엔 두 가지 중요한 오판이 있다. 첫째는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과의 의미 있는 소통이 없었다는 거다. 태만의 문제다. 둘째는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란 기대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미숙했다. 한·일 간 쟁점 사안 합의가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사례는 없다.”
합의 후 일본의 태도 때문에 국내에서 반대 여론이 커진 측면이 있지 않나.
“정부의 설명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대통령은 여성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이 불과 40명 남짓한 피해 할머니의 손을 잡고 ‘대통령인 내가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외교 관계엔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했어야 했다. 왜 그런 기회를 놓쳤는지 알 수가 없다. 정치란 타이밍과 워딩(말)의 결합이다. 타이밍은 놓쳤다. 불가역적이란 워딩은 앞으로 정상회담이 열려도 언급하면 곤란하다.”
위안부 이슈는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는 뜻인가.
“일부 일본인의 망언, 부적절한 언행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거다. 우리 정부가 너무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그때그때 비례적(proportionately)으로 대응하면 된다. 과잉 대응이나 과잉 기대를 할 필요는 없다. 일본 국민의 양식 수준은 아주 높다. 우리가 납득되는 논리를 갖고 얘기하면 그걸 받아들일 일본인은 많다. 그런 사실은 믿어야 한다.”
위안부 협상이 타결되던 날 아베 총리 부인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진정성 논란이 일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는 독도·교과서 문제와 조금 다르다. 일본 내에 서너 가지 답이 이미 나와 있다. 첫째는 제3의 추도시설을 만드는 방안, 둘째는 14명의 A급 전범을 분사하는 방안, 셋째는 참배는 하되 적어도 총리는 참배를 자제하는 방안이다. 누구보다 참배를 원하는 사람이 아베 총리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자제하고 있다. 일본은 지금 셋째 답을 따르는 것이다.”
한·일 간엔 현안이 많다. 교과서 문제도 진행형 아닌가.
“물론 끝나지 않았다. 두 나라엔 역사 문제에서 풀기 어려운 3대 쟁점이 있다. 독도·교과서·야스쿠니 문제다. 결론부터 말하면 양국민 모두를 만족시킬 묘책은 없다. 내가 주일 대사로 일하던 김대중 정부 때를 ‘한·일 밀월시대’로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교과서 문제로 어려웠다. 대사인 내가 열흘간 서울로 사실상 소환됐다. 그래도 그때 배운 교훈은 사실과 논리로 설득하면 어느 정도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거다. 우리가 문제 삼던 후쇼사 교과서를 일본에서 채택한 비율은 0.039%에 불과했다. 역사 문제는 사실 확인이 중요하다. 고치거나 은폐하면 안 된다. 랑케는 ‘하나의 확인된 사실은 하나의 신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사실을 놓고 해석은 제각각이다. 해석의 다양성과 차이는 지적 관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당시 교과서 문제를 이런 두 관점에서 풀었다.”
독도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모범 답안은 없다. 결론은 ‘현 상태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현상 유지란 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현 상태란 한국의 실효 지배를 포함하는 것이고, 영토 문제는 실효 지배한 쪽이 유리하다. 이것을 평화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지나치게 무력을 사용하거나 도전적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주일 대사로 일할 때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나왔다. 그런 성과를 낸 배경은 뭔가.
“공동선언엔 내가 참여했다. 일본에선 ‘역사 문제에 대한 가장 훌륭한 모델’로 평가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런 이야기가 별로 없다. 김대중 정권 때 합의니까 피하려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러면 우리가 만든 합의를 활용하지 못하는 결과가 된다. 무라야마 총리 담화는 일본의 전후 문제를 일방적으로 이야기한 거다. 하지만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일본이 식민 통치에 대해 통렬한 반성과 사죄를 한다’고 당시 자민당 총리가 우리나라 대통령과 합의했다. 그것만 잘 지키면 큰 문제가 없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 국회에서 연설할 때 연설문 작성에 관여했다. ‘기적은 기적적으로 오지 않는다’는 말을 만들어 냈는데, 어떤 의미를 담았나.
“한국의 산업화는 한강의 기적이란 말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한국의 민주화도 알리고 싶었다. 아시아 28개국 중 아래로부터의 운동으로 민주주의를 만들어 낸 최초의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민주화는 그런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과란 사실을 표현하고 싶었다.”
한·일은 65년 국교를 정상화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당시 선택을 어떻게 보나.
“그때도 한·일 협정 반대운동이 거셌다. 정치가는 정치 과정을 통해 권력을 잡고 때로는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때로는 업적을 통해 종합적으로 평가받는다. 큰 정치가는 찬반 토론을 치열하게 할 수 있는 정치가다. 건국에 종사한 이승만, 산업화를 이룬 박정희, 민주화를 달성한 김대중 대통령은 큰 정치가다. 이승만 대통령의 탁견을 높이 평가한다. 박정희 정권에선 박해도 받았지만 박 대통령의 산업화 공적은 움직일 수 없다.”
새해를 맞아 최 교수의 회고록이 출판됐다. ‘오럴 히스토리(oral history, 구술사) 기록’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데, 오럴 히스토리가 뭔가.
“국제관계 연구엔 회고록·참회록·자서전·고백이 중요한 1차 자료다. 그런데 고백이나 자서전은 자기 정당화의 모습이 크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래서 관련 전문가가 질문하고 구술자는 사실과 기억을 바탕으로 말로 답하는 오럴 히스토리 방법이 객관성 높은 사료로 사용된다. 일본 정치학자의 연구 대상이 돼 한·일 관계를 증언하는 구술사가 됐다는 게 두렵기도 하고 영광스럽기도 하다. 일본에서 나온 연구 보고서인데, 우리가 처음 한국어로 번역해 출판했다. 일본 전문가들은 이미 김영삼 대통령의 오럴 히스토리 기록도 남겼다.”
박원순·안철수를 만나는 순간 굉장한 지도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책에 적었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두 사람의 공통점은 공적 헌신, 공공성에 대한 헌신이다. 상당 기간 공적 문제에 대해 일관된 생활 철학을 보이고 있다. 정치적 성숙과 결합하면 큰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치적 성숙이란 어떤 뜻인가.
“정치가의 자질은 정치적 판단 능력에서 나온다. 하나는 상황 판단, 또 하나는 인간 판단이다. 상황은 조국·공동체가 당면한 국내외적 여건과 도전에 대한 판단이다. 지식과 여러 가지 경험, 경륜이 필요하다. 또 하나는 인간 판단이다. 사람을 적재적소에 쓰는 능력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을 적시에 써야 한다. 그런 판단이 인간 판단이다. 정치 판단은 상황 판단과 인간 판단의 조합이다.”
안철수 의원의 경우 멘토로 알려진 많은 사람이 안 의원을 떠나지 않았나.
“내겐 교사 본능이 있다. 45년 동안 대학을 지켰다. 많은 제자를 보면서 나름대로 성의껏 도와주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확신이 생겼다. 물론 박원순·안철수 모두 내 제자는 아니다. 우리는 상호 멘토고 서로 배운다는 입장이다. 두 사람은 공공성에 대한 헌신이란 측면에서 이미 된 사람이다. 도와 달라는데 안 도와주는 게 이상한 것이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갈 것도 올 것도 없다.”
참모나 멘토가 떠난다는 건 안 의원이 인재를 적재적소에 쓰지 못한다는 얘기 아닌가.
“정치 현실을 보면 수없이 떠나고 수없이 돌아온다. 안철수 의원도 예외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최우선 정치 과제는 뭐라고 보나.
“격차 해소와 평화통일이다. 격차 해소라면 주로 소득 격차, 빈부 격차를 말하는데 그것만 놓고 보면 중국이나 미국이 더 크다. 우리의 격차는 소득 격차 외에 교육 격차가 있다. 또 지구상 마지막 냉전 지역으로서 이데올로기적 양극화 문제도 있다. 빈곤의 악순환 정도가 아니라 우리나라는 다양한 격차의 악순환이 있다. 평화통일은 필연인 동시에 우연이다. 냉전으로 분단된 나라는 우리 외에 베트남과 독일이 있지만 우리만 분단으로 남았다. 그런 점에서 통일은 필연이다. 더구나 우린 1000년 이상 통일 국가를 유지한 나라다. 역사적 타당성도 있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른다는 점에선 통일이 우연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박근혜 정부는 어떤가.
“정치의 가장 중요한 자원은 언어다. 그런데 대통령의 언어가 사려 깊지 못하다. 통일 대박이란 게 정치 언어론 경솔하다. 핵심은 평화 관리, 평화 공존이다. 그게 평화통일의 출발점이다. 북한 정권은 비합리적, 예측 불가능의 어려운 상대다. 그런 상대를 잘 관리해서 평화 공존의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그럴 경우 다루기 힘든 북한을 잘 다룬다고 전 세계가 존경할 거다. 그런 선택은 안 하고 대박 대박 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는 제1의 외교전략은 평화통일 외교 전략이다. 통일에 장애가 되는 전략은 하나씩 줄여 가고, 도움이 되면 하나씩이라도 해야 한다.”

글=최상연 논설위원
사진=조문규 기자

☞ 최상용은…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2월부터 2년간 주일대사를 지냈다. 도쿄대 정치학 박사. 고려대 교수이던 1998년 김대중·오부치 한·일 공동선언에 깊이 관여했다. 2007년 박원순(현 서울시장)의 희망제작소에 고문으로 참여했다. 안철수 의원과 함께 일했고 이때 인연으로 안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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