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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머리 속을 보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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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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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한 회사원의 딸 이야기다. 부친이 해외 주재원으로 발령받아 프랑스로 가게 됐다. 명문 사립 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전문기관에 가 웩슬러 지능검사(WISC) 시험을 봤다. 이 점수가 입학 전형 요건의 하나였다. 107점이 나왔다. ‘보통 이상’이라는 해설이 붙어 있었다. 그 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킨 교민 부부가 “그 정도면 아슬아슬하다”고 했다. 다른 기관에서 WISC를 다시 봤다. 이번에는 124점이 나왔다. ‘매우 우수’로 분류돼 있었다. 이틀 사이에 범재가 수재가 됐다. 그 점수를 내고 원하는 학교에 입학했다.

 시험은 훈련에 의해 점수를 높일 수 있다. 지능검사라고 예외일 리가 없다. 가톨릭대 심리학과 양재원 교수에게 물어보니 “문제 패턴이 유사하기 때문에 풀이를 반복하면 점수가 높아진다. 계속 올라가는 것은 아니지만 연습 효과가 분명히 있다”고 한다.

 대다수 기업이 신입사원 선발 때 인·적성 시험을 치른다. 대기업들이 대학·전공·학점을 보지 않는 ‘탈스펙’ 전형을 하겠다고 나서니 인·적성은 더 중요한 요소가 됐다. 여기에서 적성검사는 통상의 그 ‘적성’을 파악하는 시험이 아니다. 지적 능력을 확인하는 테스트다. 언어 능력, 수리력, 공간지각력, 추리력을 검사하는 WISC가 기본 틀이다. 달라 봐야 논리적 사고력 측정 문항을 가미한 정도다.

 기업 인성시험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MMPI)를 다소 변형시킨 테스트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MMPI는 정서적 장애를 가진 이를 파악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다. 보건복지부 공인 1급 정신보건임상심리사인 조영은 박사는 “MMPI는 반드시 전문가가 면담을 거쳐 판정하도록 돼 있다. 이 과정이 생략된 것은 정확한 검사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사교육 시장이 이런 호재를 놓칠 리 없다. ‘인·적성 단기 완성’ ‘인·적성 고득점 해결’ 등의 문구로 취업준비생을 모으는 학원도 여러 곳 등장했다. 대학생들 사이에선 ‘인·적성 검사도 연습문제를 풀고 가야 좋은 점수를 받는다’는 게 상식으로 통한다.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장은 “이런 시험으로 사람을 가르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라고 말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71년에 고용과 연관된 기업의 지능검사는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뇌과학자들은 대뇌 전두엽의 표면적 크기와 지능 사이에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입사 시험 때 머리 속 사진을 찍는 게 필수 코스가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