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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반팔 성탄절’ … 미국 전역, 수퍼 엘니뇨에 기상이변 몸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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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호 14면

‘수퍼 엘니뇨’가 일으킨 기상이변은 미국의 지난해 세밑 풍경을 바꿔 놓았다. 처음엔 미 동북부의 이상고온으로 나타났다. 매년 눈에 파묻히다시피 했던 보스턴과 버펄로 등에선 때아닌 봄 날씨가 펼쳐졌다.


크리스마스이브인 지난해 12월 24일 뉴욕 센트럴파크는 17도를 기록했다. 사람들은 화이트크리스마스가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반팔 차림으로 따뜻한 성탄절을 즐겼다.


그사이 기상재해가 중남부를 강타했다. 검은색 회오리바람인 토네이도의 12월 평균 발생건수는 24개. 이번엔 69개 이상이 덮쳤다. 최고 시속 300㎞의 ‘살인 토네이도’는 미시시피·테네시·아칸소주 등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시골 마을은 집들이 통째로 뜯겨 나가 폐허로 변했다.


주민들은 “밤새 옷장 속에서 나뭇잎처럼 떨다 살아남았다”고 울먹였다. 미시시피주 홀리스프링스시의 세드릭 캐넌(50)은 이웃들의 집이 날아가 버린 것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그는 “이웃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토네이도는 이번 재해의 서막에 불과했다. 토네이도가 지나간 자리에 강추위와 함께 폭설과 폭우가 찾아왔다. 지난해 12월 26일 28도를 기록했던 텍사스주 댈러스 기온은 28일 영하1도까지 떨어졌다. 뉴멕시코주 일대엔 40㎝의 눈이 쌓이면서 도로가 얼어붙었다. 중남부의 여러 공항에서 비행기가 발이 묶였다.


다음 차례는 홍수였다. 새해를 맞는 흥분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을 때 미국 중부를 수직으로 관통하는 미시시피강에 탈이 났다. 기록적인 폭우로 미시시피의 지류인 하천 400곳의 강물이 넘쳤다. 미시시피강을 따라 미주리·일리노이·오클라호마주 곳곳이 물에 잠겼다. 13개 주에 홍수 경보가 내려졌고 1700만 명이 대피했다. 주민들은 대피하면서 가구를 2층으로 옮기기도 했다. 각 주의 방위군과 자원봉사자들은 제방에 모래주머니를 쌓아 올리면서 사투를 벌였다. 구조대는 보트를 타고 집과 차량 안에 갇힌 주민들을 찾아다녔다.


미주리주 동부 지역의 홍수 피해가 가장 컸다. 제이 닉슨 주지사는 “이렇게 수위가 높은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세인트루이스시의 수위는 홍수위(洪水位)보다 4.5m나 높았다. 이미 1993년 대홍수 당시의 수위를 넘어섰다. 시의 쇼핑단지는 지붕밖에 보이지 않았다.


남부 지역 주들도 비상이 걸렸다. 미시시피강이 남하하면서 수량이 불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미주리보다 한참 밑에 있는 루이지애나주는 미리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미국은 아직 정확한 이재민 수와 피해 상황을 집계조차 못하고 있다. 그 윤곽이나마 알려면 강물이 빠져야 할 것 같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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