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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명예·존엄성 회복돼야 한·일 위안부 문제 종결될 것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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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호 31면

한국과 일본 간의 위안부 협상 타결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를 낳았다. 일본 측은 ‘일본 정부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성명을 냈지만 ‘책임’이라는 말이 완전한 ‘법적 책임’을 뜻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협상과정에서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배제됐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협상이 끝난 다음에야 할머니들을 설득하겠다고 나섰다. 할머니들은 자신들이 정부로부터 사전에 어떤 얘기도 듣지 못했고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도 않고 소녀상을 철거한다는 데 양국이 합의한 것 같은 얘기가 흘러나오는 점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미국 등 해외언론은 위안부 문제 타결에 대해 대체적으로 환영의 뜻을 밝혔고 양국 정상의 지도력을 평가했다. 특히 미국은 즉각 존 케리 국무장관 명의로 환영의 뜻을 발표했다. 한·미·일 공조에 방해가 되는 큰 걸림돌이 사라졌다는 얘기다.


일본 내 반응을 보면 언론들이 대체적으로 환영했으나 일본 시민들은 오히려 일본 측의 외교적 패배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이런 현상은 올 7월 초에 세계문화유산 등록문제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이 추진한 ‘메이지시대 일본 산업혁명 유산’ 23군데 중 7군데에서 한국인이 강제징용 당한 사실이 있어 한국 측이 등록에 반대했으나 그 역사를 밝힌다는 조건으로 한일 양국은 등록에 합의했다. 그런데 이때도 일본 국민들은 아베 정권이 한국 측에 너무 양보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런 일본 내의 반응은 일본 서민층이 우경화되었다는 증거이며 그렇게 만든 사람은 바로 아베 총리라는 사실이다. 망언으로 교육해 온 일본 서민들에게 아베 총리가 현재 당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을 한·미·일 공조의 파트너로 다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점점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나는 협상 결과에 반대하시는 할머니들 중 가장 연세가 어린 분이 86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렇다면 해방되었을 때 16살이었다. 그러므로 13~14살쯤에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얘기인데 그 분의 인생은 참으로 암담했을 것이라고 새삼스럽게 느낀다. 그 분이 ‘이런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일본의 범죄의 증거’라고 하신다. 그 말이 모든 사람들을 설득할 힘을 갖고 있다.


당시 일본 여성들은 해외 도항이 만 21세 이상만 허가됐다. 그러나 식민지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가 그 법률을 적용시키지 않았다. 이런 점도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아닌가. 그리고 아시아의 어느 군부대의 일본 군의(軍醫)의 증언을 보면 일본 여성들은 거의 성적 경험자들이었는데 반해 한국 소녀들은 나이도 어리고 거의 다 처녀였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 여성들이 군인들한테 폭력을 당해 지금도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분들이 많다. 직업여성들의 경우는 군인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일하기 때문에 그런 폭력을 당하는 예는 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한국 여성들이 군인들에게서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은 그분들이 강제적으로 성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강제로 위안부가 된 한국 여성들은 군인들에게 저항하거나 거부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불만을 품은 군인들에게 당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 측은 강제동원의 증거가 없다고 우겨 왔다. 많은 일본 군인들은 그런 증거들을 패전한 날에 다 태워버렸다고 증언했다.


일본에서는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얘기들이 난무한다. 한편 한국 측은 부정적인 언설에 대한 이론적 대책을 세우지 않고 현재까지 왔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아베 총리가 밝혔듯이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이 회복’돼야 한다. 그 일환으로 그들이 받은 고통을 정확히 밝히고 후세에 유산으로 남기는 일이 앞으로 전개될 사업에 포함돼야 한다. 그래야 위안부 문제는 종결될 수 있다.


호사카 유지세종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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