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뜰 수 없는 잔인한 날들’ 잊지 말라고 … 일본을 꾸짖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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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서 조각가 김서경씨가 ‘평화의 소녀상’에 목도리를 두르고 있다. 소녀상 발밑에 ‘소녀상이 있는 자리는 불가역적 장소’라는 피켓이 놓여 있다. [신인섭 기자]

‘이 소녀상이 있는 자리는 어느 누구도 옮길 수 없는 ‘불가역적(不可逆的)’ 장소입니다!’

[이슈 속으로] ‘소녀상’ 탄생 1481일

조각가 김운성·김서경 부부 제작
“일제시대 여성 수십 명 사진 참조
단호하나 차갑지 않은 표정 찾아”

 2015년 마지막 ‘수요집회’(24년간 1211회째)가 열린 지난해 12월 30일. 한 남성이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건너편에 위치한 ‘평화의 소녀상’ 앞에 이렇게 쓰인 피켓을 내려놓았다. 이날 수요집회엔 평소 인원의 두세 배인 1000여 명이 몰렸다. 이틀 전 타결된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으로 이전 논란이 불거진 소녀상이 이날 집회의 사실상의 주인공이었다.

 현재의 자리에 자리 잡은 지 1481일째(2일 기준). 소녀상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상징으로 한국인의 마음속에 둥지를 틀었다. 소녀상을 세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측과 시민들은 “소녀상 이전은 정부가 관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두 번째로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화여고 1학년 이정은(17)양은 “소녀상은 수요집회의 역사와 할머니들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해 세운 것”이라며 “소녀상을 철거한다는 것은 우리 역사를 철거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탄생=소녀상은 2011년 12월 14일에 세워졌다. 수요집회가 1000회를 맞은 날이었다. 조각가 김운성·김서경 부부가 정대협 측과 논의해 만들었다. 김씨 부부는 1991년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증언하는 것을 보고 위안부를 주제로 한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20년 만에 그 구상이 실현된 것이다. 완성에는 6개월이 걸렸다.

 소녀상은 단발머리에 한복 차림이다.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다. 소녀상 오른편의 빈 의자는 시민의 몫이다. 소녀상의 왼쪽 어깨엔 먼저 떠난 피해 할머니들과의 가교 역할을 하는 작은 새 한 마리가 있다. 뒤로 드리워진 그림자 형상은 소녀가 아닌 할머니의 모습이다. 진실과 정의 회복을 기다리며 자리를 지켜 온 피해자들의 오랜 기다림을 뜻한다. 맨발에 꼭 움켜쥔 두 손. 단단하게 다문 입과 꼿꼿한 시선은 한곳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소녀상을 만든 김운성(52)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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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녀상의 표정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표정을 찾아내는 데 반년이 걸렸다. 아내 김서경 작가는 ‘단호하지만 차갑지 않게, 너무 여리지도, 화나 있지도 않게’라고 계속 주문했다.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를 찾기 위해 일제시대에 살았던 여성 수십 명의 사진을 구해 한쪽 벽에 붙여놓고 작업했다.”

 - 어떻게 만들게 됐나.

 “원래는 정대협에서 ‘평화비’를 만들고 싶다고 해 비석을 디자인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내가 할머니들에게 꿈 많던 소녀 시절을 돌려주자는 의미로 ‘소녀상’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 소녀상 철거·이전을 요구하는 일본에 대한 생각은.

 “할머니들이 수요집회를 계속하며 진실과 평화를 위해 싸우지 않았다면 소녀상은 상징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소녀상이 일본의 추악한 전쟁범죄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반성 없는 일본에 대해서도 말해주고 있다. 대가를 주고 소녀상을 치워달라고 요구하는 모습이 일본의 본질을 보여준다고 본다.”

 ◆수난=소녀상은 원래 일본대사관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상이 일본대사관을 응시하는 모습은 일본의 반인륜적 범죄를 잊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이 때문에 일본대사관 측은 처음 세워졌을 때부터 소녀상 위치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관방장관이 소녀상 제막식이 있던 당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정부에 건립 중지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건립이 강행된 것은 정말 유감”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끊임없이 우리 정부에 소녀상 철거를 요구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12월 18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소녀상 문제가 거론됐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당시 일본 총리는 “소녀상을 철거하라”며 반발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소녀상이 세워질 것”이라고 응수했다.

 지난해 7월 일본대사관은 기존 자리에 새 건물을 짓느라 인근의 트윈트리타워로 임시 이전했다. 그 바람에 소녀상은 6~7m 높이의 철제 가림막으로 가려진 빈 대사관만 바라보고 있는 모양새가 됐다.

 소녀상은 지난 4년간 일본 극우 세력으로부터 여러 차례 수난을 당했다. 2012년 6월에는 일본 극우파 활동가 스즈키 노부유키(鈴木伸之)가 소녀상에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는 문구가 적힌 말뚝을 묶어놓았다. 그는 이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어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일부 극우 세력의 천박한 민낯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소녀상의 얼굴에 나체 사진을 합성한 합성사진이 인터넷에서 떠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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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은 앉은 모습 외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다. 위로부터 서울 이대 앞 대현문화공원의 소녀상, 경남 거제의 소녀상, 전남 광주의 소녀상,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앞 소녀상. [뉴시스·중앙포토]

 ◆국민 소녀=온갖 수난이 있었지만 소녀상은 과거 일본의 전쟁범죄를 세계에 알리는 책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세계 곳곳에 일본의 위안부 범죄를 고발하는 일종의 ‘외교관’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많다. 성공회대 양기호(일본학) 교수는 “일제의 폭력을 형상화한 상징물이 소녀상이고, 언론에 꾸준히 노출되기 때문에 전 세계에 미친 파급력이 컸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4년 2월에는 미국의 외교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에드 로이스 미 연방 하원 외교위원장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설치된 소녀상을 찾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로이스 위원장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과거 역사를 인정해야만 한다”며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촉구했다. 호사카 유지(保坂 祐二) 세종대 인문과학대 교수는 “소녀상은 일본에 상당한 외교적 부담을 줬다”며 “강력한 민간외교 수단”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소녀상을 향해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소녀상이 처음 세워진 다음 날엔 이름 모를 시민이 소녀상의 맨발에 목도리를 감아놓기도 했다. 당시 그는 “얼마나 춥니?”라고 나지막이 이 말을 건넸다고 한다. 2011년 12월에는 누군가 소녀상에 달아놓은 복주머니에 1만1000원의 용돈을 놓고 갔다. 장마철에는 한 경찰이 소녀상에 우산을 받쳐주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져나갔다. ‘이등병의 편지’의 원작자인 작곡가 김현성(54)씨가 소녀상을 위한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하얀 감꽃 주워 들고 웃음 짓는 어쩌면 나였을지도 모를 어린 소녀야/눈 뜰 수 없는 잔인한 날들 피로 물든 다 찢긴 치마 나의 몸/옥이 순이 분이라는 그 이름들 이 세상에 없지만 기억하노라 ….’(노래 ‘평화의 소녀상’의 가사)

 지난 4년간 소녀상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대변했다. 고요히 제자리를 지키는 동안 소녀상은 어느새 ‘국민 소녀’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대전·울산 등 전국 31곳에 소녀상이 세워졌다. 미국·캐나다 등 해외에도 3개의 소녀상이 생겨났다. 한·일 간 위안부 문제 협상이 타결된 뒤 한국 사회에선 소녀상을 지키자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 소녀는 오늘도 일본대사관 앞에서 가녀리지만 단호한 모습으로 일제의 위안부 참혹사를 고발하고 있다. ‘눈 뜰 수 없는 잔인한 날들’을 잊지 말라며….

채승기·조한대 기자 che@joongang.co.kr

[S BOX]  청동 소녀상 설치비 3300만원 … 지자체·시민 모금으로 마련

‘평화의 소녀상’ 주재료는 청동이다. 받침대는 화강암이다. 소녀상 뒤로 드리워진 할머니 형태의 그림자에는 오석(烏石)이란 검은 돌을 작게 쪼개 붙이는 모자이크 기법이 쓰였다. 소녀상은 철과 나무로 된 뼈대 위에 점토와 석고, 합성수지를 이용해 거푸집을 만든 뒤 이 거푸집에 청동을 부어 완성한다. 얼굴은 13~15세 소녀의 모습을 표현했다. 조각가 김운성씨가 처음 거푸집을 만들고 소녀상을 완성하는 데는 6개월이 걸렸고, 이후에는 소녀상 한 개를 완성하는 데 평균 3~4개월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작업은 경기도 일산에 있는 김씨의 작업실에서 이뤄진다.

 소녀상의 형태는 총 6가지다.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습 외에 동백꽃을 들고 서 있거나 새를 두 손으로 보듬고 서 있는 형상이 있다. 보랏빛 날개를 달고 있는 소녀도 있다. 무게와 높이는 형태에 따라 다르다. 가장 잘 알려진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은 높이 1m30㎝, 무게 120㎏이다.

 소녀상을 만들고 설치하는 비용 역시 천차만별인데 평균적으로 3300만원 정도다. 비용은 주로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의 모금으로 마련된다. 강원도 강릉 소녀상과 경남 남해 소녀상의 경우 지자체 예산으로 모두 충당했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소녀상은 조각가 김운성·김서경 부부가 사비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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