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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재현의 시시각각

그를 흉악범으로 만든 건 누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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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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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논설위원

 엽기적 살인 혐의로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된 중국동포 박춘풍(55)씨의 뇌 구조는 일반인과 달랐다.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의 뇌 감정 결과다. 감정을 맡았던 김지은 교수의 설명. “박씨는 사고력과 기억력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전(前)전두엽’이 손상됐다. 뇌 손상이 그의 정신장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25~50%”라고 설명했다. 이번 감정은 사이코패스와 연쇄살인 등 흉악범죄 뒤에 숨은 과학적 사실을 추출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뇌 손상 입고도 변변한 치료 못 받아
무관심과 냉대가 엽기적 범죄 키워

 감정 결과를 종합하면 2014년 장기 없는 토막시신 사건은 그의 불완전한 뇌 구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전전두엽이 쪼그라들어 피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못해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는 왜 전전두엽에 이상이 생긴 것일까.

 이대 연구소는 박씨를 상대로 뇌 구조가 뒤틀리게 된 경위를 조사했다. 박씨의 불행은 어릴 적부터 시작됐다. 그는 유아기 때 눈을 다쳐 의안을 했다고 한다. 동네 친구들의 놀림감이 됐고, 외톨이로 성장했다. 전두엽 이상의 전초로 추정됐다.

 박씨가 2011년께 공사장에서 외상을 입은 것이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됐다. 일용직 인부로 작업하던 중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 머리를 다쳤다. 하지만 그는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다. 산재 처리를 할 수 없어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당시 사고로 뇌압 상승 소견이 제시됐지만 그는 서둘러 병원을 빠져나와야 했다. 박씨는 “사고 이후 잦은 구토와 함께 기억력이 떨어지고 의식이 흐릿해졌다”고 진술했다. 2년 뒤 그는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었다. 당시에도 치료는 없었다. 사고 가해자들도 그에게 보상해 주지 않았다. 이후 그는 충동적이고, 죄책감이 없고, 사랑이나 공감의 감정이 무뎌졌다. 퇴행적 요소가 엽기적 살인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 ‘범죄자의 뇌’가 존재한다는 가설은 가능할까. 흉악범의 뇌가 일반인들과 다르다면 사법제도와 재활 프로그램도 변화돼야 할 것이다. 뇌 과학자들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선천적으로 범죄 유전자를 타고 태어났을 수도 있고, 후천적 뇌 손상으로 범죄에 빠져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씨의 범죄도 같은 카테고리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김 교수는 “결과론적이지만 만약 그가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비극적 사건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경범죄학의 연구 추세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치료를 중시하고 있는 점을 예로 들었다. 박씨의 국선 변론을 담당했던 김상배 변호사는 “박씨는 다른 흉악범들과 달리 온순한 성격이지만 충동이나 분노 조절을 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도 일반인들이 생각할 수 없는 추가 범죄로 이어진 것으로 봤다. 수사 관계자도 “박씨에게 사회는 냉대와 무관심으로 가득 찬 큰 벽과 같은 존재였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공중보건(public health)의 관점에서 범죄를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미국의 유명한 신경정신과 교수도 자신의 뇌 사진이 선천적으로 사이코패스와 유사한 것을 발견했다. 그의 선대들도 흉악범죄자였다. 그는 “가족과 사회공동체의 도움으로 범죄의 유혹과 불안장애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고백했다. 박씨도 좀 더 따뜻한 대접을 받았다면 흉악범죄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신경범죄학계와 치료사법을 주장하는 법조계에선 최근 ‘폭력의 해부’라는 책의 일독을 권장하고 있다. 우리의 뇌, 유전자, 몸에 대한 분석을 통해 어떤 사람이 범죄자로 태어나는지를 연구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인간의 범죄를 막는 것은 뇌의 분석뿐 아니라 문명화된 사회가 얼마나 차분하고 침착하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결론내렸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 대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대해 주고 있을까.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