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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매력시민이 인구 5000만 지키고 평화 오디세이 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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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병신년(丙申年) 새해가 밝았다. 모두들 “올해는 좀 더 나아졌으면…”이라 어김없이 소원하지만 꿈과 희망을 노래하기엔 마음이 무겁다. 우리는 이제 지도에도 없는 길을 가야 한다. 올해는 총선이 겹쳐 정치의 지각변동이 예고돼 있다. 더 암울한 것은 경제 상황이다. 4년 연속 2%대 저성장이 고착화됐고, 올해도 3%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은 세월호 참사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에서 보듯 미덥지 못하다. 여기에다 양극화와 청년실업, 가계부채 등의 구조적 문제는 풀리기는커녕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그 어두운 현실이 세계 바닥권인 삶의 만족도와 행복지수로 나타나고 있다.

새 시대의 주역은 ‘매력적인 시민’
저출산은 국가 존립에 최대 위협
평화통일, 선택 아니라 생존에 필수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지난 70여 년간 단 한 번도 문제없이 살아온 적이 없다. 안팎의 숱한 시련과 난관을 불굴의 의지와 끊임없는 도전으로 헤쳐나왔다. 그렇게 일궈낸 것이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적이다. 우리에겐 그런 강인하고 자랑스러운 DNA가 각인돼 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눈앞의 역경을 이겨내고, 미래를 준비하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나서야”

 그 첫 번째 도전이 저출산이다. 이 소리 없는 재앙은 우리 사회를 엄습한 지 오래다. 국가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최대의 난제다. 우리는 2006년부터 저출산 1차·2차 계획을 세워 81조원을 쏟아부었지만 실패했다. 14년 연속 세계 꼴찌 수준의 초저출산(1.3명 이하) 사회가 됐다. 이 늪에서 빠져 나오지 않으면 생산인구 감소→소비감소→저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다. 이미 이웃 나라들은 과감한 도전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35년 만에 한 자녀 정책에 마침표를 찍었다. 일본도 ‘1억 총활약 장관’까지 뽑아 인구 감소를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도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해 ‘5000만 인구’를 지키는 데 국가의 사활을 걸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도 올해부터 3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을 시행한다. 사업 규모도 향후 5년간 200개 대책에 200여조원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저출산 대책은 보·양육 지원이나 비혼·만혼 예방 등 결혼장려를 넘어 국가 개조 차원의 근본적 발상 전환이 요구된다. 돈을 얼마나 쏟아붓느냐보다 어떻게 여성들을 설득하고 공감을 끌어내느냐에 성패가 달렸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은 나라로 바꾸지 않고서는 도리가 없다.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저출산 문제를 유일하게 해결한 나라도 프랑스·스웨덴뿐이다. 온 사회가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고 공공 보육 기반을 확실하게 구축한 게 공통점이다. 여성 친화적 사회로 옮겨간 것이다.

 지금 이 땅의 젊은 세대들은 “나 혼자 살기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태어날 아기에게 미안하다”는 게 현주소다. 이들 사이에 ‘헬(hell) 조선’ ‘금수저-은수저’라는 자조가 만연하면 어떤 처방도 듣지 않는다. 저출산에 쐐기를 박으려면 이제 주택·육아·교육은 물론 우리 사회의 틀 자체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예로부터 내려온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정신을 복원시켜야 한다. 우리 사회의 인식을 “아기와 함께해 행복하다”는 쪽으로 완전히 돌려놓아야 저출산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

평화 오디세이가 생존 차원의 유일한 대안

 올해 우리가 짊어져야 할 또 하나의 과제는 평화적 통일을 준비하는 일이다. 평화와 통일이 왜 중요한지 우리 내부적으로 교육을 시작해 평화 통일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 과거 서독의 동방정책은 단순히 정치·외교 사안만이 아니었다. 서독이 왜 1973년부터 동방정책을 본격 추진했는지 눈여겨봐야 한다. 서독은 50~72년 라인강의 기적으로 연평균 5.9%씩 성장했으나 73년부터 2%대 성장률로 곤두박질했다. 서독은 생존 차원에서 동방정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았다.

우리도 북방을 품는 평화 통일 정책 외에는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글로벌 시장은 포화상태에 접어들고 중국 경제마저 힘을 잃고 있다. 이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감상적 수준에서 벗어나 우리도 냉엄한 생존 차원에서 평화 통일 정책을 펴야 할 때다.

 이를 위해 한·미 동맹을 더 튼튼히 다지고, 중국 등 주변국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북 간의 대화 돌파구를 마련하고 교류·협력의 물꼬를 넓히는 일이다. 이것이 중앙일보가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평화 오디세이’의 정신이다. 다행스럽게 북한도 변화의 조짐이 뚜렷하다. 오는 5월 예정된 36년 만의 북한 노동당대회에는 새로운 경제노선 제시 등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게 틀림없어 보인다. 또한 장마당 활성화, 400여만 대의 휴대전화 보급에 따른 정보 교류, 오토바이 개인 소유에 따른 이동혁명 등 북한은 어느 때보다 내부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 이제 남북 협력으로 평화 통일을 앞당기는 것은 우리 하기에 달렸다. 평화 통일은 우리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과연 이런 시대적 숙제들을 누가 풀어가야 할 것인가. 나라의 길라잡이가 돼야 할 정치권은 리더십은커녕 스스로 입법시한을 어겨 온 나라를 무법천지로 몰아넣고 있다. 정치권이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고 있다. 지난 70년간 우리 공동체를 이끌어온 정부도 세월호·메르스 사태에서 구조적 피로현상을 드러냈다. "더 이상 믿고 기댈 언덕이 없다”는 한탄이 나오는 게 무리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바꿀 주역으로 새롭게 주목하는 것은 매력적인 시민이다. 다원화·전문화된 개방 사회에서 과거처럼 몇몇의 리더가 사회 변화를 주도할 수 없다. 이제 각 분야의 열정적인 다수의 시민들이 세상을 바꿀 수밖에 없다. 시민은 목적어가 아니라 주어(主語)가 돼야 한다. 시민적 교양의 핵심인 탐욕의 절제를 내면화하고 공동체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면서 공익과 나눔·소통의 문화를 확산시키는 이들 ‘작은 영웅’이야말로 새 시대의 주인공이다.

각 분야의 ‘작은 영웅’들 많이 쏟아져야

 박근혜 정부는 집권 4년차를 맞는다. 올해 총선, 내년엔 대선, 이듬해에는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벌써부터 경제 논리보다 포퓰리즘의 유령이 어른거리고 있다. 올해 우리 경제는 안으로 네 가지 절벽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성장·수출·소비·고용절벽이 그것이다. 밖으로는 글로벌 경기 침체, 중국 경기 둔화와 국제 유가 하락의 3각 파도를 넘어야 한다. 올해는 박근혜 정부가 레임덕 없이 일할 마지막 기회다. 국정 개혁의 고삐는 더 죄고 속도는 높여야 한다. 더 이상 국론 분열과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소모적 논쟁에 빠져 있을 여유가 없다.

 우리는 올해 저출산 해소, 평화 통일 준비, 매력시민이란 새로운 깃발을 올린다. 이 세 화두를 나침반 삼아 우리 사회와 함께 지도에도 없는 길을 가고자 한다. 우리의 DNA는 1인당 소득 100달러의 세계 최빈국을 세계 수출 5위, 경제규모 12위의 경제강국으로 올려놓았다. 오랜 군사 독재를 무혈로 종식시키고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민주주의를 성취했다. 이제 그런 자랑스러운 DNA가 우리로 하여금 시민 시대를 열고 평화 통일을 준비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어느새 대한민국의 꿈이 쪼그라들고 희미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다시 꿈과 희망의 불씨를 지펴올려야 한다. 우리는 올 한 해 매력시민들과 함께 수많은 아이들이 뛰놀고, 평화 통일시대가 성큼 다가오는 더 밝은 미래를 꿈꾸고 이뤄나갈 것이다. ‘한 사람의 꿈은 그냥 꿈이지만 모두가 함께 꿈꾸면 그것은 현실이 된다’는 옛말이 있다. 우리는 그 말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