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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회의 무능이 만들어내는 무법지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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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여야의 정쟁(政爭)과 국회의 기능 저하로 이 나라가 일부 무법 상태가 되는 위험에 놓이고 있다. 정쟁이야 과거에도 있었지만 ‘무법’ 지경은 처음이다. 19대 국회는 이미 의원직 사퇴 22명 등으로 최악의 기록을 세웠는데 마지막까지 국민을 괴롭히고 있다.

내년 1월 1일부터 ‘선거구 없는 나라’
오늘 놓치면 고금리 규제법 없어져
기업구조조정촉진법도 오늘 마지노선

 헌재의 결정과 여야 협상의 실패에 따라 새해 1월 1일부터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는 무효가 된다. 국회는 주로 지역구 의원으로 구성되므로 선거구가 없어지면 국회의 존립 기반이 흔들리게 된다. 입법부 비상사태다.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선거법을 상정하는 방안이 있지만 법안 표결은 일러야 1월 8일이다. 새 법이 가결된다는 보장도 없다.

 내년 4월 총선을 위해 등록한 예비후보들은 선거구가 없어지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예비후보 등록을 원하는 이가 새로 등록할 수도 없다. 선관위는 이미 등록한 사람들은 일단 내년 초순까지 선거운동 중지 여부를 단속하지 않기로 했다. 법이 없으니 편법이 등장하는 것이다.

 대부업체의 고금리를 규제하는 대부업법과 기업의 구조조정(워크아웃)을 지원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은 개정되지 않으면 오늘로 사라지게 되는 일몰(日沒)법이다. 오늘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이 두 분야도 사실상 ‘무법지대’가 되는 것이다.

 현행 대부업법은 대부업체의 금리 상한을 연 34.9%로 규정하고 있다. 여야는 규제를 연장할 뿐 아니라 상한을 다시 27.9%로 내리는 개정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여야 간 정치공방으로 이 법은 오랫동안 상임위 법안심사 소위에 묶여 있다. 오늘 개정안이 의결되지 않으면 대부업체들은 아무런 규제 없이 고금리를 적용할 수 있게 된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사라지게 되면 경영이 어려운 기업들은 벼랑 끝에 몰리게 된다. 이 법이 보장하는 워크아웃(workout)으로는 채권자의 75% 동의만 있어도 시간을 가지고 회생을 도모할 수 있는데 법이 없어지면 이게 불가능해진다. 대신 기업은 채권자의 100% 동의를 받아야 하거나 아니면 법정관리에 들어가야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금융감독원은 구조조정 대상 기업들에 법이 없어지기 전 올해 안에 구조조정을 서둘러 신청할 것을 독려해왔다. 사느냐 죽느냐의 기업 운명이 졸속으로 처리될 위험에 처한 것이다. 대통령이 시급한 처리를 요청하고 있는 기업활력제고촉진법(원샷법)도 야당의 반대에 막혀 있는 마당에 이 법마저 사라지면 경제위기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오늘 올해의 마지막 국회 본회의가 열린다. 선거구 획정은 어차피 해를 넘기게 됐다. 하지만 대부업법과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은 여야의 마지막 노력이 있으면 사라지지 않고 연명할 수 있게 된다. 민생의 입장에서 보면 선거구 조정보다도 더 중요한 게 대부업체 금리요, 경영난에 빠진 기업을 살리는 방법이다. 두 개의 일몰법을 포함해 경제 살리기 법안에 국회는 마지막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