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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미래를 함께할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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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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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소설가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중요한 함의를 지닌 사건들은 대개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이라는 경험을 되새기게 된다. 시리아 난민 200명이 입국 신청을 하고, 우리 정부가 미얀마의 카렌족 난민 22명을 데려온 것이 대표적이다.

이민 가정 아이는 이중언어 사용
세계화 시대에 우리 사회의 자산
둘 다 제대로 못 배우면 불행해져
낯선 풍토서 배우려 애쓰는 아이
도움 주는 것은 효율적인 투자
자선은 체제를 건강하게 한다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은 도덕적으로나 타산적으로나 옳다.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 앞에서 문을 닫아버리는 처사는 우리 천성에 어긋나고 우리 국력을 줄인다. 스페인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지적대로 국민의 본질은 “미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이 땅에서 살기를 간절히 바라므로 난민들은 대한민국의 시민이 될 자격을 갖췄다.

 물론 난민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준비가 잘된 미국이나 유럽도 애를 먹는다. 시리아 난민들의 경우,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섞였을 위험도 있다. 그래도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난민들이 빠르게 늘어나므로 우리는 이 문제에 관심과 자원을 더 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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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 중요한 것은 신속한 입국 수속이다. 공항에서 입국 허가를 기다리는 것은 연옥의 삶이다. 시리아 난민들 가운데 135명은 ‘준난민’으로 국내에서 체류하고 나머지 65명은 공항에서 수속을 밟고 있다니 다행이다.

 난민이든 이주노동자든 한번 들어오면 대부분 눌러앉게 마련이다. 독일에서 일했던 터키와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은 다수가 거기에 정착했고, 그들의 자식들은 독일 시민이 되었다. 우리는 난민과 이주노동자의 다수가 여기에 뿌리를 내리리라 예상하고 대응해야 한다.

 이민 1세대는 어느 사회에서나 큰 자산이다. 잘사는 곳에 들어와 생계를 꾸리는 것만도 행운으로 여기고, 주민들이 마다하는 일을 즐겁게 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주노동자들 덕분에 공장들이 제대로 돌아간다.

 문제는 2세대에서 나온다. 그들은 어엿한 시민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불리한 가정환경으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갖가지 차별을 받는다. 좋은 직업에 종사하기 어렵고 실업자가 많다. 당연히 그들은 사회에 대한 불만이 크고 자칫하면 반사회적 성향을 보이게 된다. 알제리계 프랑스 청년들이 파리 둘레 빈민촌에서 자주 폭동을 일으키는 것은 전형적이다.

 우리 사회에 들어오는 난민들이나 이주노동자들이 대부분 이슬람 교도들이라는 사실도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이민 2세대가 극단적 이슬람 세력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려면 그들이 제대로 배워 우리 사회에 충분히 동화되고 좋은 일자리를 얻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차별받는다고 느끼면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불행이다.

 가장 급한 것은 그들이 언어를 제대로 배우도록 하는 것이다. 뿌리 뽑힌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말을 배우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언어가 그리도 중요하므로 언어능력에서의 작은 부족도 결정적 장애가 된다.

 언어는 어릴 적에 둘레의 어른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스스로 배운다. 이민 가정의 부모는 한국어에 서투르므로 아이들은 부모의 모국어를 모국어로 삼게 된다. 이어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므로 한국어는 제2의 언어가 된다. 세계화가 깊어지는 현대에서 이런 이중언어 사용자들은 우리 사회의 자산이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부모의 모국어를 제대로 배우도록 하는 것이다. 만일 부모로부터 충분히 모국어를 배우지 못한 채 학교에 들어가면 그 아이는 부모의 모국어와 한국어 둘 다 제대로 배우지 못해 언어능력이 뒤질 수 있다. 이런 분산적 이중언어 사용(distractive bilingualism)은 당사자의 불행일뿐더러 사회에 짐이 된다.

 이민 가정들에서 아이들이 언어를 제대로 배우도록 하는 일은 일차적으로 정부의 기능이다. 그러나 관료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공무원들이 섬세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요청되는 이런 일을 만족스럽게 하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자선단체의 지원을 받는 전문가들은 정부가 미처 살피지 못한 부분들을 메울 수 있다. 난민과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기업과 자선단체가 협력한다면, 이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 밀턴 프리드먼은 중앙 당국에서 모든 것을 계획하는 사회주의 체제에선 자선이 설 곳이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에 자본주의 사회에선 자선이 늘 나와서 체제를 건강하게 한다.

 독일 잠수함들의 공격으로 영국이 심각한 식량 부족을 맞았던 1943년, 처칠은 “어떤 공동체에서든 아기들에게 우유를 먹이는 것보다 더 좋은 투자는 없다”고 했다. 낯선 풍토에서 두 개의 언어를 배우려 애쓰는 아이들에게, 미래의 우리 시민들에게 지금 도움을 주는 것은 우유를 먹이는 것에 버금갈 만큼 효율적인 투자다.

복거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