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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곳곳서 응답하다, 1960 부평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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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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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극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의 공연 모습. 인천시 부평구의 음악적 자산을 무대화했다. 1960년대 초반 부평에서 활동했던 뮤지션들의 열정이 유쾌하기만 하다. [사진 부평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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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문화전문기자

지난 26일 오후 인천시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 음악극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 마지막 대목에서 6인조 밴드 ‘더스트문(Dustmoon)’이 미군 클럽 오디션 현장에 섰다. ‘재즈의 전설’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로 더욱 유명한 복음성가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을 흥겹게 불러 젖혔다. 880여 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무대와 관객이 하나가 됐다.

음악극‘당신의 아름다운 시절’
미군 클럽 무대 올드팝 향연
중장년 호응, 공연마다 성황
내년 가을 서울 공연 이어
2년 뒤 독일 진출도 준비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17~27일 공연)은 1960년대 초반 부평을 배경으로 한 창작극이다. 구(부평구) 단위에서 탄생한 음악극이라는 점에서 새로웠다. 작품도 쫄깃했다. 완성도 측면에서 크게 흠잡을 게 없었다. 냇 킹 콜·엘비스 프레슬리 등 ‘올드 팝’의 향연 속에 예전 부평의 힘겨웠던 일상과 무명 음악인의 열정을 녹여냈다. 한명숙의 ‘노란 샤츠 입은 사나이’도 분위기를 돋웠다. 서울의 내로라하는 극장에 올라가는 뮤지컬에 견주어도 위축될 이유가 없는 무대였다. 제작비는 2억원 남짓. 대형 뮤지컬에 비해 10분의 1 정도 예산이지만 공연 자체는 결코 작아 보이지 않았다.

 가장 눈에 띈 건 공업도시 부평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문화 콘텐트로 끌어올린 점이다. 알려진 대로 부평은 한국현대사의 명암이 담긴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 무기제조창이, 한국전쟁 후에는 주한미해병대 지원사령부(ASCOM)가 있었다. ASCOM은 인천으로 들어온 물자를 주한 미군부대에 보급했었다. 그 사이 미군을 상대로 하는 향락가도 들어섰다.

 우리 대중문화에서 차지하는 부평의 위상도 높다. 미8군 무대에 서려는 음악인이 몰렸다. 소규모 밴드가 잇따라 구성됐다. 특히 미군의 오디션 문화는 ‘K팝의 뿌리’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 록의 대부로 불리는 신중현이 대표적이다. ‘키보이스’ ‘서울 패밀리’ ‘사랑과 평화’ 등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신중현은 본지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서 “미 8군의 엄격한 오디션 덕분에 늘 긴장을 풀지 않고 실력을 닦을 수 있었다”(2006년 1월 8일)고 회고했다.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은 이 같은 한국인의 어제를 보여준다. 구두닦이를 하면서 최고의 기타리스트를 꿈꾸는 한 청년의 좌절과 도전에 스포트라이트를 맞춘다. 일부 신파적 구성과 다소 늘어지는 부분을 매만지면 전국 어느 곳에서나 통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 고유의 이야기를 보편성 있는 콘텐트로 빚어낸 자신감이 주목된다. 요즘 유행어를 빌리면 ‘응답하라! 부평 1960’이다.

 부평의 문화적 유산을 되살린 이 무대는 새해 가을 서울 공연도 잡아놓았다. 2년 뒤 독일 진출도 준비 중이다. 박옥진 부평문화재단 대표는 “올해 부평 인근에서 활동했던 아티스트를 모은 ‘부평 밴드 페스티벌’도 열었다”며 “해마다 12월 부평에 오면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을 볼 수 있도록 레퍼토리화하겠다”고 말했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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