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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마비에도 하루 100장 드로잉 기적…핸디캡을 매력으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0만 켤레 만든 장애인 특수구두 장인
사고로 오른 팔 잃고 장애인 현실 눈 떠
"나 같은 장애인들 자립 길 열어주고파"

60년 동안 구두를 만들어온 남궁정부(75)씨는 특수구두의 장인이다. 한쪽 다리가 8㎝ 짧은 소아마비 여성, 발뒤꿈치가 없는 예비신부, 제대로 못 걷는 당뇨 환자 등이 그의 단골 고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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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구두 장인 남궁정부(75)씨는 "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예쁜 구두 신는 게 소원이다. 그래서 새 디자인을 계속 연구한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1955년 구둣방에서 심부름을 하며 일을 시작한 그가 특수구두에 눈을 돌린 건 96년 지하철 사고로 오른팔을 잃으면서다. 그는 “인생이 끝났다 싶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 보니 나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남궁씨는 관절염·무지외반증·짝다리 등으로 시중에서 신발을 구할 수 없는 고객들을 위해 특별한 구두를 제작했다. 20년 동안 만든 구두 10만여 켤레 중 똑같은 구두는 하나도 없다. 컴퓨터로 고객의 족압을 측정해 발 전체에 힘이 골고루 들어가도록 설계했다. 발이 없는 경우엔 가짜 발을 만들어 신발을 제작했다.

직원 12명과 함께 만드는 특수구두는 하루 6∼7켤레. 수익이 나지 않아 처음 10년은 직원 월급도 제때 못 줬다. 그는 “문 닫을 위기도 있었는데 단골들이 찾아와 ‘당신이 없으면 우리가 못 걷는다’며 돈을 모아 주기도 했다”고 했다.

남궁씨는 특수구두 의료보험 적용을 위한 캠페인도 벌였다. 8년간 틈틈이 전국을 돌며 서명을 받았다. 2005년부터는 장애인 특수구두에 보험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는 “장애인들을 교육시켜 특수구두 제작자로 키우는 게 다음 목표”라며 “나 같은 장애인들에게 자립의 길을 열어 주고 싶다”고 말했다.

교통사고로 몸 오른쪽 마비에도
좌절 딛고 하루 100장 드로잉 기적

일러스트레이터인 강주혜(36·여)씨도 장애를 자신만의 매력으로 승화시킨 경우다. 2003년 강씨는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한 달 넘게 의식불명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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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강주혜(36)씨는 "`미긍(아름다운 긍정)`의 시선으로 세상을 그린다"며 "못 산다던 나를 살린 게 긍정의 힘"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기적적으로 다시 깨어났지만 몸 오른쪽이 마비됐다. 눈 한쪽은 실명됐고 나머지 한쪽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강씨는 재활치료를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계속 마비가 진행되는 오른팔의 감각을 살리기 위해 하루 100장씩 드로잉을 했다.

그의 그림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 눈 때문에 늘 5도가량 기울어져 있다.

“처음엔 삐뚤어진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몇 번이고 울면서 다시 그렸죠. 하지만 이젠 약간 기울어져 있는 게 내 그림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2013년 자신의 그림을 모아 첫 전시회를 열었고, 책 두 권의 일러스트도 그렸다.

수없이 힘든 순간을 극복했던 비결을 묻는 질문에 강씨는 ‘긍정의 힘’이라고 말했다. “제 호는 ‘미긍(美肯·아름다운 긍정)’이에요. 긍정은 유행을 타지 않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은 필요하죠. 긍정은 긍정을 낳고요.”

채윤경·정아람 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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