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김정은 지하철서 담배 피우는 모습 노동신문 1면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기사 이미지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이 지난달 새로 제작한 지하철 전동차를 돌아보다 담배를 피우고 있다. 좌석 위에 크리스털 재털이(원안)가 눈에 띈다. [노동신문, 아람 판 페이스북]

기사 이미지

김정은의 모습을 보도한 노동신문 11월20일자 1면. [노동신문, 아람 판 페이스북]

평양은 애연가들에겐 그야말로 지상낙원입니다. 냉면집인 옥류관 같은 대형 식당은 물론 공원과 놀이시설, 각급 관공서에서도 끽연(喫煙) 할 수 있죠. 조선중앙TV 드라마에는 배우들의 흡연장면이 여과없이 드러납니다. 시내버스에서 담배를 피워무는 장면도 등장하는데요. 몇해 전 방북 취재 때 고려항공 기내 뒷편에서 버젓이 흡연하던 한 노동당 간부를 보고 놀랐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마치 남한의 1960~70년대를 보는 듯한데요. 국민건강증진법까지 만들어 공중장소와 식당에서의 흡연을 엄격히 금지한 우리 현실과는 격세지감을 갖게합니다.

김정일 “담배는 심장 겨눈 총 같다”
10년 전 담배통제법 때와 격세지감
다양한 담배 쏟아지고 수출까지
북한 성인 흡연율 52% 세계 최고

 북한이 흡연가 세상이 되버린데는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영향이 큽니다. 4년 전 그가 집권한 이후 금연 관련 규제는 사실상 고삐가 풀렸죠. 무엇보다 김정은 자신이 시도때도 없이 줄담배를 즐기는 골초 반열에 올랐습니다. 노동신문 1면엔 흡연을 즐기는 최고지도자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리는데요. 2013년 12월에는 임신한 부인 이설주를 옆에두고 피우는 모습도 드러났죠. 약국이나 병원·유아원에서까지 담배를 피워무는 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외부에서 제기되자 북한은 “최고존엄 모독”이라고 반발했습니다.

 지난달에는 새로 제작한 전동차를 돌아보던 김정은이 좌석에 재털이까지 올려놓고 담배를 피는 모습이 공개돼 네티즌의 입방아에 올랐죠. 조선중앙TV는 당시 영상을 26일 공개했는데요. 전동차 바닥에 불을 끄지도 않고 버린 꽁초가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기사 이미지

김정은이 애용하는 7.27 담배. [노동신문, 아람 판 페이스북]

 북한도 2000년대 초반부터 강력한 금연 정책을 펼쳤습니다. 최고인민회의에서는 2005년 ‘담배통제법’을 채택했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담배는 심장을 겨눈 총과 같다”는 말도 남겼는데요. 당시 방북 취재 중 만난 북한 당 간부나 기자들은 “다른 건 다 장군님(김정일을 지칭) 교시에 따르겠는데 담배 만큼은 쉽지가 않다”며 곤혹스러워했습니다.

 김정은 체제의 등장으로 이런 고민은 풀렸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담배가 쏟아졌고, 품질을 높이라는 김정은 제1위원장 지시까지 나왔죠. 담배 수출로 외화벌이에 나선 모습도 파악됐는데요. 평양의 내고향담배공장에서 생산한 수출용 ‘아침(Achim)’ 담배는 흡연 폐해와 금연을 강조하는 아랍어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과거 가짜담배 생산으로 국제사회의 골치거리이던 북한이 합법 수출로 돌아선 건 다행스런 일입니다.

 김정은 공개활동 장소에는 늘 같은 형태의 탁자와 크리스털 재털이가 놓입니다. 정보 당국자는 “김정은이 애용하는 탁자와 재털이를 아예 수행비서팀이 챙겨다니는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합니다. 김 제1위원장은 북한산 7.27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6.25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북한이 ‘전승절(휴전협정 체결일)’에서 따온 브랜드인데요. 탈북 인사들은 당 간부나 일반인들도 피울 수 있는 담배라고 말합니다.

기사 이미지

아랍어 금연문구가 쓰인 수출용 담배 ‘아침’. [노동신문, 아람 판 페이스북]

 하지만 겉만 북한제 담배지 특수 제작한 외국산이란 주장도 나옵니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우 북한 ‘백두산’ 담배로 겉만 포장한 로스만 브랜드를 애용했는데요. 김정은도 그럴 개연성이 있다는 겁니다. 김정은은 10대 중반 때 담배를 배웠다는데요. 당시 그를 곁에서 지켜본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 씨는 “정은 왕자는 이브생로랑을 즐겨피웠다”고 전합니다.

 북한 당 간부나 주머니가 넉넉한 일부 애연가들은 수입담배를 찾습니다. 방북 취재 때 만난 북측 기자·안내원들로부터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선물로 북한산 담배를 사서 건네면 “이거말고 저쪽에 있는 저거로 주면 좋겠다”고 귀엣말을 건네오죠. 그들의 눈길이 머문 곳에는 어김없이 붉은색 말보로 담배가 놓여있곤 했습니다. 김정은이 “국산 담배도 좋은데 왜 애국심 없이 외국 담배를 피냐”며 단속을 지시했다는 얘기가 들려오는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인듯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2년 기준 북한 성인 흡연율은 52.3%입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흡연율은 경제난과 체제고립 같은 답답한 현실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필요한 건 흡연천국이 아닌 식·의·주가 걱정없는 일상일텐데요. 새해에는 개혁·개방과 민생 챙기기 쪽으로 나서길 기대해 봅니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yjl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