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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탈리아의 젊은 거장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 영화 '유스'에 출연한 소프라노 조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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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미. [사진 중앙포토]

소프라노 조수미(53)가 영화 ‘유스’(Youth, 2016년 1월 7일 개봉)에 직접 출연해 부른 노래가 골든글로브·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

‘유스’는 영화 ‘그레이트 뷰티’(2013)로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이탈리아 출신의 젊은 거장 파올로 소렌티노(45) 감독의 신작. 이 영화에서 조수미는 실제 그 자신인 세계적 명성의 소프라노 ‘수미 조’로 등장한다. ‘유스’는 지금은 은퇴한 세계적 지휘자 프레드 밸린저(마이클 케인)가 스위스의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의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 영국 여왕으로부터 그의 대표곡인 ‘심플 송’(미국 작곡가 데이비드 랭이 이 영화를 위해 작곡했다)을 지휘해 달라는 특별 요청을 받지만 개인적 이유로 거절한다. 조수미가 빨간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아름다운 목소리로 6여 분 동안 ‘심플 송’을 열창하는 마지막 장면은, 스스로 삶의 황혼에 접어들었다고 느낀 밸린저가 새로이 깨달은 ‘젊음’의 의미를 황홀하게 일깨운다.

음악·미술·건축·패션·연극 등 다양한 예술 형식을 스크린에 한데 뒤섞으며, 나이 듦과 젊음의 의미를 되새기는 소렌티노 감독 특유의 영화 스타일이 ‘그레이트 뷰티’에 이어 ‘유스’에서 다시 한 번 빛을 발한다. ‘유스’의 미국 개봉(12월 4일)에 앞서 지난 11월 LA를 방문한 조수미를 만나 그의 ‘영화 외도기’를 들어봤다.

- 영화 출연 계기가 궁금하다.
“소렌티노 감독의 전작 ‘그레이트 뷰티’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언젠가 꼭 함께 일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내게 딱 맞는 역할이 있다며 연락이 와 흔쾌히 응했다. 소렌티노 감독이 내 목소리를 좋아한다고 해 아주 기뻤다.”

- 함께 일해 본 소렌티노 감독은 어땠나.
“생각보다 무서웠다(웃음). 굉장한 완벽주의자더라. 현장에서 모든 걸 휘어잡는 장악력이 대단했다. 지휘자 카라얀의 젊은 시절이 떠오를 정도였다. 촬영장 밖에선 천진난만하고 상냥한 어린아이 같은데, 카메라만 돌아가면 전쟁을 치르는 듯했다.”

- 직접 부른 주제곡 ‘심플 송’이 큰 감동을 준다.
“촬영에 앞서 런던에서 노래를 녹음했는데, 부르기 굉장히 어려웠다. 기술적으로도 어려웠지만, 영화의 피날레와 잘 어우러지도록 표현해야 하는 점이 큰 도전이었다. 도입부가 크로스오버 느낌이라 어떤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고, 바이올린 솔로 연주와 노래를 주고받는 부분도 쉽지 않았다. 엇박자도 많고, 박자를 정확히 계산해 노래해야 하는 부분도 상당했다. 단순하게 들리지만 복잡한 구석이 많은, 바흐의 음악 같은 곡이다.”

- 카메라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촬영하는 건 어땠나.
“나와 지휘자가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순간을 잘 표현하는 게 중요했다. 지휘자가 내게 눈빛으로 ‘이게 얼마나 중요한 노래인지 알지?’라 말하면, 내가 미소로 이렇게 답하는 느낌으로 촬영했다. ‘지휘자님, 저를 아직 잘 모르시죠? 이제 노래로 보여드릴게요.’ 그 모든 마음의 대화가 눈빛과 노래로 흐르는 식이었다.”

- 함께 연기해 본 마이클 케인은 어떤 배우였나.
“이틀 동안 그와 함께 촬영하며 ‘타고난다’는 게 이런 거구나 느꼈다. 눈빛과 손짓만으로 매번 다른 연기를 보여주는 모습은 정말 말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소렌티노 감독도 그에게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항상 유머러스하고 사람들을 편하게 대해주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젊은 시절 한국전쟁에 영국군으로 참전한 적이 있다고 해 깜짝 놀랐다. 그 이후 한국 뉴스에 늘 귀 기울이며 기쁜 소식엔 함께 기뻐하고, 슬픈 소식엔 함께 슬퍼했다더라. 한국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이 느껴져 고마웠다. 개인적으로는 내 바흐 앨범을 소장하고 잠이 안 올 때마다 듣는다며 극찬을 해주셨다. 촬영장을 방문한 가족들에게 일일이 나를 소개해 주며 먼저 기념사진까지 찍자고도 하셨다(웃음).”

- 영화 속 새빨간 드레스를 입고 역시 빨간 립스틱을 바른 모습도 인상적이다.
“소렌티노 감독의 선택이었다. 내게 여러 의상을 입혀본 뒤 그가 직접 고른 드레스다. 이 영화에는 ‘소프라노 수미 조’인 내 모습 그대로 등장하는 거라 내 개인 드레스를 입고 싶었는데, 조금 아쉽긴 하다. 촬영장에 가보니 내 욕심만 부릴 수 없는 분위기였다.”

- 영화 속에 여러 유형의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특별히 공감하는 인물이 있나.
“역시 마이클 케인이 연기한 밸린저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늙은 내 모습을 상상한다. 언제 은퇴해야 할까, 나이 들면 음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게 아니면 여든?아흔 살이 돼서도 내가 하고 싶은 걸 추구해야 할까, 혹시 그것이 ‘난 조수미니까’라는 자신감에 빠져 품위를 버리는 선택은 아닐까…. 영화 속 밸린저가 다시 젊음을 느끼는 모습은, 그래서 내게 아주 각별했다. 나이가 들어도 음악만큼은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그를 보며 ‘나도 저렇겠구나’ 느꼈다. 난 세상 물정도 모르고, 정치나 사회에 대해 딱히 뭐라 말할 위치도 아니다. 하지만 음악만큼은 자신 있다. 말로는 할 수 없는 그 무엇도 음악으로는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랄까.”

- ‘심플 송’이 골든글로브 후보에 오른 데 이어,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 지명이 유력시되는데.
“지금껏 많은 상을 받았지만, 이 곡으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는다면 큰 영광일 것 같다. 이 영화의 ‘심플 송’처럼 클래식과 뉴에이지, 크로스오버의 색채를 두루 지니면서도 예술적 감성과 시적인 깊이가 담긴 곡이 한 번쯤은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으면 좋겠다.”

로스앤젤레스=LA중앙일보 이경민 기자 rache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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