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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日, 군 관여 사실과 정부 책임 명확히…‘강제동원’ 명시적 표현은 빠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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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정부 "군 관여…정부 책임 통감" , 아베 "마음으로부터 사죄"

 한·일이 28일 타결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 합의문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명시적 법적 책임 인정은 없었지만, 도의적 책임일 뿐이라고 회피하지도 않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은 일본 정부의 입장을 표명하며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의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돼 있다. 군이 관여한 사실과 일본 정부의 책임이란 사실을 명확히 했다. 기존에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와 관련한 법적 문제는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고, 인도적 혹은 도의적 책임만 있을 뿐이라고 버텼던 것보다는 진전된 것이다.또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재단 설립에 필요한 예산에 있어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거출한다’고 했다. 한국은 이를 사실상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하면서 정부 예산을 투입해 전액을 내겠다고 한 것은 사실상 법적 배상의 의미가 있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의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는 표현은 1993년 고노담화, 1994년 무라야마담화에서 썼던 것과 같다. 위안부 문제를 ‘강요된 제도적 성노예’로 보는 국제사회 기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월 미 의회 연설에서 말한 대로 기존 내각의 인식을 계승했다. 아베 총리는 8월 발표한 종전 70년 담화에서는 “전장의 그늘에는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있었던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만 했다.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명확한 표현은 합의문에서 빠졌다.

정부는 또 아베 총리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의 자격으로 사죄한다고 합의함으로써 일본 정부의 책임을 한층 부각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아베 총리 개인 자격이 아니라 일본의 지도자로서 사죄와 반성을 한 것이고, 내각의 인식으로 기록될 부분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한 것은 역대 총리들이 사죄를 표명하며 주로 썼던 표현이다. 아베 총리가 8월 발표한 종전 70주년 담화에서 “일본은 앞서 전쟁에서의 행위에 대해 거듭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해 왔다”며 기존 사죄를 인용한 것보다 한 발 나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녀상 이전 혹은 철거 문제와 관련,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한국측 입장을 발표하며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험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는 명확히는 합의사항이라고 볼 수도 없고, 일 측의 우려 제기에 우리가 알겠다고 한 것이지 협상의 대상이나 주고받기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양 측은 또 ‘(일본이 약속한)조치가 착살히 실시된다는 전제 하에’ 이번 발표를 통해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했다.

국민대 이원덕 일본학연구소장은 “역사 인식에 있어 전향적이었던 일본 민주당 정부의 이른바 ‘사사에안’보다도 진전된 내용으로 보인다. 명시적 법적 책임이 없지만 총리대신 자격으로 사죄하고, 정부가 책임을 통감하고, 정부 돈으로 피해자들을 지원한단 것은 내용적으론 법적 책임 인정에 따른 배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국립외교원 조양현 교수는 “역대 내각 가운데 가장 오른쪽에 있고, 역사 인식에 있어서 많은 문제점을 보여온 아베 정부를 상대로 이런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 의미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일본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위안부 문제에 있어 정책적 연속성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혜·안효성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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