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중국발 스모그에 분개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기사 이미지

남정호
논설위원

성탄절 전야인 지난 24일 온 국민은 ‘그레이 크리스마스’에 괴로워해야 했다. 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려진 이날, 천지는 중국발 스모그로 뿌옇게 변했다. 옆자리 동료는 연신 기침을 해댄다. 병원에 가 보니 감기 아닌 미세먼지 탓이란다.

 우리 국민은 배알도 없나. 살인적인 중국발 대기오염 물질이 한반도를 엄습하는데도 나몰라라다. 정부·정치권, 심지어 목소리 큰 환경단체마저 제대로 중국에 항의조차 하는 법이 없다. 바다 건너온 오염물질이라고 넋 놓고 있을 게 아니다. 정부가 앞장서 호되게 따져야 한다.

 1930년대 캐나다 한 제련소의 아황산가스가 국경 너머 미국 워싱턴주로 날아가 사과농장을 망쳤다. 그러자 미 정부가 나서 캐나다로부터 42만여 달러를 받아 냈다. 60년대엔 프랑스가 남태평양에서 잇따라 핵실험을 하자 서울~싱가포르만큼 떨어진 뉴질랜드(4200㎞)와 이보다 더 먼 호주(6000㎞)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 추가 핵실험을 좌절시켰다. 프랑스는 그 먼 곳까지 낙진이 날아간다는 증거가 없다며 뻗댔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중국발 스모그 내 미세먼지는 영·유아에게 특히 치명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들 폐에 박혀 염증이라도 일으키면 두고두고 큰일이다. 황사는 자연재해라 쳐도 스모그는 엄연한 인공 공해다. 공해 업체, 매연 차량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중국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비록 국경을 초월하는 공해 피해와 관련된 한·중 간 조약은 없지만 국제사회엔 관습법이란 게 있다. 72년 스톡홀름 환경선언에서 채택된 ‘무해(無害)의 원칙 ’도 그중 하나다. “모든 국가는 옆 나라에 환경 피해를 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뿐만 아니라 2001년 유엔 산하기구인 국제법위원회(ILC)는 대기오염 실태 등 정확한 환경정보를 주변국에 알릴 책임이 각국에 있다고 천명했다. 중국이 살인적인 대기오염 실태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중국 측에선 베이징발 스모그가 한국인들에게 치명적이란 증거가 없다고 할지 모른다. 우리 당국마저 한국 내 스모그 중 중국 기여분을 추산하기 어렵다며 책임 추궁에 미적거리고 있다. 하지만 중국 북부에서 형성된 시커먼 먼지구름이 며칠 만에 한반도로 옮겨오는 건 위성사진으로 똑똑히 판별된다.

 한 사람의 목숨을 뺏는 것보다 다중의 건강을 해치는 게 더 중대한 범죄다.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할 줄 모르면 존중받지 못한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