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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현실로 바꾸는 열정 … 미다스의 ‘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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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호 16면

손미나(43)에게 가장 적당한 호칭은 뭘까. 서울 이태원에 둥지를 튼 ‘인생학교(The School of Life) 서울’에서 22일 만난 그녀가 내민 명함은 두 개. 하나는 인생학교 교장 선생님이라고, 다른 하나는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편집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만남은 지난달 출간된 에세이『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예담)가 계기였다. 그러니 작가라 불러야 할지, 교장 선생님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손미나앤컴퍼니 대표라고 칭해야 할지 헷갈릴 수밖에.


그런 내게 그녀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간단하다”며 “광화문에서 허핑턴포스트를 만들고, 이태원 손미나앤컴퍼니에서 인생학교도 하고, 싹여행연구소도 하고, 팟캐스트 싹수다방도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각기 다른 일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라이프 디자인 파트너’라는 회사 슬로건처럼 모두 연결된 일이란 얘기다.


우리는 종종 그녀가 쓴 글에 편견을 덧씌운다. KBS에서 나온 지 벌써 8년이나 지났지만 ‘아나운서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않고, 글을 쓰면 얼마나 쓸까 하는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스페인, 너는 자유다』(2006)를 시작으로『태양의 여행자』(2008ㆍ도쿄),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2009ㆍ부에노스아이레스) 『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2013) 등 5권을 꾸준히 써내려갔다. 2011년엔 소설『누가 미모자를 그렸나』까지 출간했으니, 우선은 작가라고 부르며 시작하는 게 좋겠다.

마추픽추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포토존에 선 손미나 작가.

친체로 장터에서 춤을 추며 생일을 축하하고 있는 인디오 원주민들

콜카 캐니언에서 만난 콘도르. 인간 세상과 신의 세계를 이어주는 신비로운 동물이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다시 만난 스페인 유학 시절 친구들과 페루식 칵테일 피스코 사워로 재회를 자축하고 있다.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마음 속 질문 따라 옮긴 발걸음 손 작가의 이번 여정은 페루입니다. 책 속에는 페루와 아버지에 관한 추억 이야기가 많은데. “아빠는 평생 역사 공부를 하고 또 가르쳐 오신 분이기에 언제나 오래된 것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존경을 갖고 계셨어요. 어릴 적부터 집안에는 원시시대에 썼을 법한 돌도끼 같은 게 굴러다녔고, 놀이공원 대신 박물관에 데려가곤 하셨죠. 가장 관심이 있는 건 중세였지만 잉카 문명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페루에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일흔 살에도 하프 마라톤을 하실 만큼 건강하셨는데 혈액암에 걸리시는 바람에 3년 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어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채우기 위해 택한 장소인 셈이네요. “그렇죠. 여행에도 리듬이 있어요. 알랭 드 보통이 말했던 것처럼 세상에 이상적인 여행사가 존재한다면 ‘어디를 가고 싶냐’보다는 ‘삶에 어떤 변화가 필요하냐’고 묻겠죠. 제겐 익사이팅한 대도시보다는 대자연 속에서 조용히 명상하며 교감하는 여행을 할 차례가 됐다고나 할까요.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부터 시작해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었어요. 실제로도 영적인 기운이 녹아있는 곳이고요. 아르헨티나처럼 외부에서 사람들이 들어와 뒤섞인 곳이 아니라 인디오들이 전통을 지키며 살아간 곳이잖아요. 중남미 스페인 문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가보고 싶은 나라기도 했고요.”


예전에 스페인을 성격 좋은 유쾌한 친구, 프랑스는 예쁜데 까칠한 여자에 비유했잖아요. 페루는 만나보니 어떤 사람이던가요. “아주 어른스러운 느낌이었어요. 친구로 비유하자면 정말 힘든 일이 있을 때 찾아가서 얘기하면 차분히 들어주고 지혜로운 조언을 해 줄 것 같은 친구랄까. 마음이 넓은 구루 같은 스타일 있잖아요.”


그러고 보면 나라나 도시명이 나오고 문장이 더해지는 제목이 손미나씨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것 같아요. 제목은 직접 짓는 건가요. “그렇게 됐네요, 진짜. 주변에서 책 쓰는 친구도 그런 얘길 한 적이 있거든요. 제목은 편집자와 함께 여러 안을 놓고 고민해요. 이번엔 책 중 일부 문장을 발췌한 거고. 하긴 첫 책을 함께 만들었던 편집자는 ‘어떻게 전부 다른 사람, 그것도 다른 출판사에서 만들었는데 모두 한 사람이 한 것처럼 전체적인 느낌이 비슷한가’라며 궁금해 했거든요. 저도 처음엔 작정하고 쓴 책이 아니라 제 스타일을 잡는데 시간이 걸리고 이것저것 시도했었는데 결국은 이게 저한테 어울리는 방식이었나봐요.”


여행운도 좋은 편인 것 같아요. 남들은 남미 가면 강도 만나고 고생한 얘기가 대부분인데 이 책에서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잖아요. 그래서 “내 책을 읽은 사람들이 꼭 하는 얘기가 있다”며 “이게 정말 다 사실이야? 지어낸 얘기 아냐?”고 고백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진짜 그렇게들 많이 물어봐요. 한참을 찾아 헤맨 사람이 포기하면 나타난다든가 뒤돌아보니 서 있다든가 하면 믿기 힘들잖아요. 물론 저도 고생은 했죠. 고산병 때문에 산소통 룸서비스도 받고, 경비행기에서 나스카 라인도 제대로 못 보고. 하지만 확실히 사람운은 있는 것 같아요. 너무 황당해서 책에 못쓴 얘기도 많은데 그런 게 또 여행의 묘미 아닐까요. 예측 불가능성과 우연한 만남.”

서울 이태원에 문을 연 인생학교 서울. ‘생각과 이야기 사이’ 아메리카노 등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카페 공간과 수업이 진행되는 소규모 강의실로 구성되어 있다.

만국 공통 관심사 가르쳐주는 인생학교 인터뷰 도중에도 그녀의 핸드폰은 수시로 깜빡이며 새 메시지 도착을 알렸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다 망설이는 사람들에게는 들어오시라고 직접 안내도 했다. 이제 그만 여기 정착하고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제든 자유롭게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어디에 있더라도 말과 글로 소통할 수 있도록 일상의 터전을 더욱 단단하게 다지고 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1층 카페에는 그와 다양하게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들락날락했고, 한 켠에는 인생학교 수업을 위한 소규모 강의실이 있다. 2층 사무실에서는 손미나앤컴퍼니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인생학교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2008년 알랭 드 보통이 영국 런던에 세운 이후 서울이 벌써 10번째 분교죠? “어떤 분은 친분 덕에 사업권을 얻게 된 게 아닌가 하시는데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2013년에 회사를 세울 때부터 염두에 뒀어요. 어느 도시에 설립된다고 공고가 난 뒤에 지원하는 게 아니라 먼저 자유롭게 희망자들을 받고 도시가 선정되면 사업자 선정에 들어가는 식이거든요. 서울이 가장 지원자가 많았다고 들었어요. 1000여 곳에서 의사를 밝혔다니까.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는 생각이나 추구하는 방향이 저희와 비슷하니까 잘 되길 바랐죠. 한국에 왜 인생학교가 필요하고 우리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지식 기반 콘텐츠를 얼마나 잘 운영할 수 있는지 여러 차례에 걸쳐 비즈니스 플랜을 써냈고 전화나 메일, 대면으로 인터뷰를 거쳤어요.”


돈ㆍ일ㆍ섹스ㆍ시간ㆍ세상ㆍ정신 등 6가지 메인 테마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동일한가요. “저희는 크게 일ㆍ사랑 혹은 관계ㆍ자아ㆍ문화 등 4부분으로 나뉘는 것 같아요. 문화 쪽은 많이 건드리지 않고 있고 자아와 일에 대한 콘텐트를 늘려나가고 있어요. 아직 한국에서 고유의 콘텐트를 생산하는 단계까진 못했고 계획 단계에 있어요. 영국의 교재를 그대로 사용하되 한국 실정에 맞게 조금 각색한 정도죠. 예를 들어 ‘관계’ 부문에 고부 갈등을 포함한다거나 전혀 번역이 안 된 콘텐트가 있다면 그에 적합한 걸로 바꾼다든지.”


그럼 손미나씨의 강의 ‘가슴 뛰는 직업을 찾는 법’을 누군가 영국에서도 강의하고 있기도 한가요. “그런 셈이죠. 예전에는 지리적 특성과 교류의 한계가 있으니까 의식주가 다르고 그에 따른 생활환경도 달랐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철학이나 가치관을 세계인이 공유하고 있으니 어느 나라를 가도 커리큘럼이 확 바뀔 필요는 없는 거죠. 저 역시 파리에 있으나 서울에 있으나 크게 달라지는 건 없거든요. 그런 게 참 매력적인 것 같아요.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법’ ‘가족과 더 행복하게 사는 법’ 이런 것들은 누구나 다 고민하는 문제잖아요.”


개교한 지 두 달 정도 지났는데 직접 해보니 어떤가요. “정말 재밌어요. 사실 처음엔 한국에서 이런 게 통할까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해 보니까 다들 자기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서 오시더라고요. 3시간 동안 질문 하나를 놓고 마음을 열고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란 거죠. 나이나 직업에서 공통점이 생기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 갖고 있는 생각이나 관심이 공통된 사람들이 모이니까 그 에너지가 굉장히 좋아요. 저도 그런 분들을 만나면서 하루에 한 뼘씩 크고 있는 기분인 걸요.”


역시 사람은 말하는 대로 되는 걸까. 그녀는 꿈을 꾸고 그것을 품 속에 꽁꽁 숨겨두지 않은 채 공표하고 실현해 나가는 법을 알고 있었다. 30대에는 자기 이름이 박힌 책 한 권은 쓰고 싶다고 했고, 40대에는 자기 브랜드를 갖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것들을 이뤄나간 것처럼 말이다.


이제 앞으로는 무엇을 하고 싶냐는 말에 “하루아침에 결판나는 프로젝트가 아니기 때문에 오랫동안 잘 키우고 묵혀서 한국 사회에 물이 스며들듯 좋은 영향을 퍼져나가게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이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하는 일들에 대한 관심과 주목에 감사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게 그렇게까지 화제가 되는 사회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어쩌면 우리도 ‘꿈을 천직으로 만드는 법’이나 ‘일에 얽매여 살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학교나 회사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던, 내 인생에서 꼭 필요했던 답이 여전히 궁금하다면 말이다.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ㆍ손미나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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