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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방황하는 한국의 민주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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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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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흔히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말한다. 특히 이 말은 현재의 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자주 인용된다.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일의 비전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과거로부터의 교훈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해방 70주년이라는 특별한 해여서인지 올해는 유독 과거와의 대화가 자주 언급된 해였다.

김영삼·김대중 적대적이었지만
파국적 현실 극복하기 위해 타협
지금 여야 간 타협은 실종 상태
대통령은 반대세력 적으로 간주
청와대 독주로 국회·정당 무너져
민주정치에는 불길한 징조

 하지만 과거와의 대화에서 어느 정도나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냈는지 의문스러운 한 해이기도 했다. 마치 프란츠 카프카의 유명한 우화를 떠올리는 한 해같이 보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한편에서는 앞으로 나가도록 뒤에서 밀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앞으로 나가는 것을 막으며 뒤로 끌어당기는 갈등적 움직임의 한 해였기 때문이다. 정치란 미래를 놓고 다투어야 하지만 올해처럼 과거와의 싸움에 매몰된 해도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이런 현상은 정치가 시대적 변화에 따라가지 못할 때 발생하는 과도기적 현상일지도 모른다. 산업화 시대와는 다른 글로벌화와 정보화의 흐름 속에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정치는 과거와의 대화 속에서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일의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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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병석에서 ‘통합’과 ‘화합’이란 붓글씨를 쓰곤 했다는 보도다. YS의 붓글씨대로 정치의 궁극적 목표는 정치적 통합이다. 그런데 이 정치적 통합은 사회·정치적 갈등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때문에 누가 정치적 통합의 담당자가 될 것이냐는 물론 그 절차나 방식, 그리고 이념을 둘러싸고 대립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우리는 민주화를 통해 권력의 정통성 문제는 해결했다. 그래서 권력의 위압(威壓)으로 유지했던 정치적 통합의 근본적인 취약성은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절차나 방식, 이념을 놓고 정치적 갈등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YS와 DJ(김대중)의 열기가 새삼 일고 있다고 한다. 왜일까. 과거 양김 시대와의 대화에서 오늘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양김 통치 시대에도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양김은 서로 적대적이었지만 파국적인 정치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타협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여야 간의 타협은 실종된 지 오래다. 그리고 목전의 이익을 놓고 격돌하고 있다. 친박과 비박 간의 대결이나 친노와 비노 간의 대결을 보라. 정치무대 전체를 타협의 장이 아니라 원수를 제거하기 위한 전쟁터로 변화시키고 있지 않은가.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 뜬금없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정당 없는 민주정치가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떻게’라는 질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당 재편 내지 정치세력의 재편에 희망을 걸고 있던 인사들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당정치 자체에 회의를 품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정당이나 국회를 제치고 국가가 모든 것을 다해주는 민주정치가 가능하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정당과 국회에 대한 불신이 워낙 크기 때문일 것이다. 우려스러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민주적 통치는 권력과 반대 사이에 균형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래서 권력은 통치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야 하지만 권력을 남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 이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현실 정치는 어디까지나 교섭과 타협의 산물이다. 그래서 청와대와 국회가 교섭하고 타협하는 모습을 국민은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기 싸움을 보라. 반대세력을 적으로 간주하는 대통령의 정치에서 이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통령은 ‘진실한 사람’ 논쟁을 불러일으킨 데 이어 국회가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국회를 불신하는 여론의 갈채를 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국회는 예산안 심의 거부로 정부를 마비시켰던 미국 국회보다는 나아 보인다. 아직 교섭과 타협의 여지가 있다는 말이다.

 청와대는 말할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국회를 압박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그러나 아무리 그 의도가 선량하다고 하더라도 권력의 독주에는 마성(魔性)이 붙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대통령의 야심 찬 권력 사용 그 자체가 아니다. 그보다는 청와대의 독주로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국회나 정당 같은 길항적 세력들이 모두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민주정치에는 불길한 징조일 수 있다. 정당 없는 정치, 국회 없는 정치로 내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주정치의 미래를 위해 1987년 헌법의 지혜와 딜레마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할 시점인 듯하다.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