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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응답하라 199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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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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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논설위원

1997년의 크리스마스는 무척 암울했다. 사람의 뇌는 슬프고 괴로운 일은 빨리 잊는다고 한다. 그래도 그날의 기억은 생생하다. 나라가 백척간두에 몰렸던 때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선진7개국(G7)은 그날, 한국에 대한 구제금융을 결정했다. 외신은 ‘성탄절의 선물’이라고 불렀다. 미셸 캉드쉬 IMF 총재는 “위장된 축복”이란 수사를 썼다. 그 입 바른 말에 분노했지만 겉으론 부자 나라의 선심에 그저 감사해야 했다. 속으론 다시는 이런 치욕을 겪지 말자고 이를 물고 피눈물을 흘렸다.

다시 나라가 거덜 나봐야
그때 가서 정신 차릴 텐가

 며칠 뒤 맞은 98년은 지옥 같았다. 한강 다리엔 차량 통행이 거의 끊겼다. 원화 값이 곤두박질해 기름값 감당이 안 됐다. 폐쇄된 제일은행 직원들은 ‘눈물의 비디오’를 찍었다. “다시는 이 땅에 우리 같은 비극이 없기를…”이란 말이 유행어가 됐다. 수만 명이 악 소리 한번 못 내고 정든 직장을 떠나야 했다. 강한 달러의 공포는 그렇게 이 땅에 각인됐다.

 98년의 대한민국은 그러나 그리스와 달랐다. 똘똘 뭉쳐 나라 살리기에 나섰다. 정치권과 재계·노동계를 가리지 않았다. 대통령은 “IMF의 요구보다 더 개혁하겠다”며 ‘IMF플러스’를 약속했다. 빅딜과 구조조정, 재벌 개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노사정위원회는 대타협을 이뤄냈고 국회는 정리해고가 포함된 노동법을 통과시켰다.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자. 사람들은 장롱 속 금붙이를 들고 나왔다. 당시 언론사 중견기자였던 A는 “시경캡(1진)이 출입처를 떠날 땐 감사패를 준다. 감사패의 경찰 마크가 순금 한 돈이다. 이것까지 떼 내 금모으기운동본부를 찾았다”고 했다.

 그해엔 언론도 한통속(?)이었다. 중·조·동과 한겨레·경향이 따로 없었다. 당시 구조개혁의 사령탑이던 금융감독위원회 출입기자들은 스스로 ‘구국의 전사’라며 자조했다. ‘나라를 위해’ 언론의 핵심인 ‘비판 기능’을 꺼둘 때가 많았다. 재벌이 개혁 과잉을 호소해도 눈을 감았다. 극렬 노조가 집안을 폭파시키겠다고 위협해도 귀를 닫았다.

 17년이 흘러 다시 위기론이 불거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 많이 다르다. 대통령은 “국가 비상사태에 준하는 경제 위기”라고 하는데 국회의장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경제부총리는 “내년 경제가 괜찮을 것”이라며 다독인다. 반 남은 물컵의 물을 두고 청와대·정부·여당이 한쪽은 “반밖에 안 남았다”는데 다른 쪽은 “반이나 남았지 않느냐”고 하는 꼴이다. 식구끼리도 진단이 다르니 약을 쓸 수 없다.

 어느 쪽을 보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순 있다. 그때와 같은 것은 이런 것들이다. 좀비 기업이 득시글댄다. 노동법 등 개혁법안은 국회에 묶여 있다. 미국의 강한 힘이 다시 세상을 짓누를 채비를 하고 있다. 청년은 취업절벽이다. 신흥국 위기 조짐이 있다. 다른 것은 이런 것들이다. 나랏빚과 가계·기업 빚은 끝 모르게 늘고 있다. 중국이 힘을 잃고 있다. 일본이 깨어났다. 우리는 분열돼 있다. 그나마 ‘외환보유액은 3686억 달러로 그때의 15배가 넘는다’는 게 거의 유일한 위안거리다.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분명한 건 물이 한 컵이 아닌 반 컵이란 사실이다. 내일이면 빈 잔이 될 수도 있다.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은 요즘 경제위기론을 열심히 전파하고 다닌다. 그는 정치는 포퓰리즘, 정부·관료는 무사안일, 재계는 도전의지 실종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이런 걸 교정해줘야 할 사회마저 대갈등으로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 그는 아예 “나라가 (다시) 거덜 나봐야 정신 차릴 것”이라며 개탄했다. 이 의원뿐 아니라, 내 주변엔 요즘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자신할 수 없다. 98년 금을 들고 나갔던 A는 “지금 다시 위기가 온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없는 사람 희생으로 간신히 되살린 나라를 있는 자, 힘센 자들이 서로 삿대질하며 망쳐놓는 꼴이 보기 싫다고 한다. 한심하고 미워졌다고 한다. 다시 크리스마스다. 외쳐는 보지만 응답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불러본다. 응답하라 1998.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