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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희·조윤선 서울 비강남권 나와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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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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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
논설위원

요즘 서울 지역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선 “양박(兩朴)만 없으면 내년 총선에서 해볼 만할 텐데”라는 자조가 유행이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 유승민 찍어내기, 국정교과서 밀어붙이기, 국회 때리기 3종 세트로 영남과 보수층의 지지를 굳혔는지는 몰라도 서울에선 자고 나면 표 날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한 강북권 새누리당 의원 보좌관은 “요즘 지역구 사람들과 악수를 하면 손에서 한기가 느껴진다”고 한다.

여당, 안철수 탈당에도 어부지리 힘들어
거물·중진들 험지 출마로 진정성 보여야

 다음은 박원순 시장. 서울의 여당 의원들에게 그는 몸서리 처지는 저승사자다. 이들이 한 푼이라도 얻어내려고 몸부림치는 지역구 예산 칼자루를 박 시장의 서울시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요즘 유행인 협동조합이나 주민기업에 수천만원씩 지원이 가능하다. 20명이 일하는 협동조합에 5000만원을 지원할 경우 가족까지 합해 40명이 서울시와 야당의 팬이 될 수 있다. 이런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해당 지역구의 야당 의원이 얼굴을 내밀며 자신이 뛴 덕분이라고 홍보할 가능성도 크다. 구별로 매년 수십억원씩 이렇게 지원이 이뤄질 경우 3000~4000표는 손쉽게 야당으로 가게 된다는 게 새누리당 서울시당의 분석이다. 완벽히 합법적인 행정이라 누가 막을 수도 없다. 서울은 500~1000표 차로 금배지가 갈리는 초박빙 지역이다. 서울 새누리당 의원들 눈에 핏발이 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김무성 대표는 수도권에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친박들과 죽느냐 사느냐의 공천 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인데, 그 본질은 영남권에서의 헤게모니 다툼일 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친노패권주의로 망한다지만 새누리당도 대구·경북(TK) 패권주의로 기둥뿌리가 썩고 있다. 친박이건 비박이건 내년 총선에서 경상도와 강남권에만 나가겠다고 아귀다툼이다. 새누리당은 TKK(대구·경북·강남)만 갖고 대한민국을 지배하려는 붕당세력일 뿐 수권정당의 자격이 없다는 야유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안철수 탈당도 새누리당 서울 의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지금은 안철수가 새정치연합과 각을 세워도 총선이 다가오면 결국 연대할 것이란 공포에 좌불안석이다. 설혹 안철수가 끝까지 홀로서기를 고수해 총선이 1여(與)2야(野) 구도로 치러져도 새누리당이 이기기란 쉽지 않다고 이들은 본다. 안철수 탈당 뒤 지지율의 낙폭은 새누리당이 더 컸기 때문이다. 야당이 워낙 죽을 쑤니 마지못해 여당을 밀어온 부동층이 대거 안철수로 옮겨 탄 결과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안철수가 서울 표심을 3분의 1씩 나눠가진 형세다.

 강남을 제외한 서울 새누리당 의원들은 대개 야성(野性)이 강한 지역구에서 오직 개인기로 금배지를 단 사람들이다. 이런 마당에 당 지도부가 또다시 서울을 외면하고, 청와대도 중도층의 이탈을 부채질하는 초강경 국정기조를 고수한다면 차라리 당을 나가 딴 살길을 찾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온다. 어차피 서울이 3분지계(三分之計) 정글로 재편된다면 시민들 마음이 떠난 새누리당보다는 신당으로 갈아타는 편이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기까지는 수많은 변수가 있다. 그렇더라도 이대로 가면 새누리당은 내년 총선에서 서울 48석 중 17석밖에 얻지 못한 19대 총선보다 더 박한 성적표를 받아들 공산이 크다. 비강남권 현역 의원들(10석)이 고전 중인 데다 야당에 넘겨준 나머지 사고 지역구(31석)에서도 선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이들 지역은 당협위원장 자리를 놓고 친박과 비박이 싸운 끝에 경쟁력 약한 인물들로 메워졌다는 게 중론이다.

 새누리당이 서울에서 살길은 하나다. 거물들의 비(非)강남권 출마다.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당 중진들과 안대희·조윤선 등 박 대통령이 중용한 인사들, 그리고 정몽준·김황식 등이 나와 총선을 회고형 심판 구도에서 전망형 선택 구도로 바꿔야 한다. 박 대통령 말대로 유권자는 내년 총선에서 ‘진실한 사람’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에게 진실한 사람일 것이다. 새누리당 막대기만 꽂으면 당선되는 곳에 나가겠다고 골육상쟁을 벌이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