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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DNA’ 메르켈, 실험하듯 현안 분석해 해법 탐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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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호 15면

시사잡지 타임과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AP=뉴시스]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초상화를 실은 시사잡지 타임의 표지. [AP=뉴시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최근 시사잡지 타임의 ‘2015년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 타임은 메르켈을 10년 이상 독일의 총리로 재직하면서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독일의 정치?경제 발전을 이끌면서 통일 이후 독일 국민에게 미래를 위한 확신을 심어준 여성 정치인으로 높이 평가했다. 잡지는 또 메르켈은 자신을 정계에 입문시킨 멘토 헬무트 콜 전 총리의 어두운 유산을 깔끔히 정리해 소속 기민당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결단의 리더라고 소개했다.


그리스의 국가부도와 유럽연합(EU) 탈퇴의 위기에서 주채권국인 독일의 입장에서 보여준 단호한 태도와 문제 해결 능력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이유 중 하나로 꼽혔다. 그리고 최근 대부분의 유럽 국가가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고 있을 때 ‘어머니 리더십(Mutter Leadership)’을 발휘해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받아들임으로써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의 동조를 이끌어내고 EU의 단합을 이끌어낸 통합의 리더십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타임은 지금까지 모두 4명의 독일 지도자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아돌프 히틀러, 서독 초대 총리이자 국부로 불리는 콘라트 아데나워, 동방정책의 기수 빌리 브란트 전 총리, 그리고 메르켈 총리다. 히틀러는 논외로 하고 나머지 3명의 공통점은 이전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번영의 시대를 연 ‘이포크 메이커(epoch-maker)’들이다. 같은 날 파이낸셜타임스(FT)도 메르켈을 2015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면서 특히 경제 분야에서 독일의 ‘제2의 경제부흥’을 달성한 지도자라고 소개했다.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지난 14일 열린 집권 기민당 전당대회에서 메르켈 총리가 선물로 받은 늑대 인형을 안고 즐거워하고 있다. [AP=뉴시스]

정치 멘토 콜 비리 덮지 않고 공개메르켈은 1954년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개신교 목사였던 아버지는 2개월 된 메르켈과 온 가족을 데리고 공산치하의 동독으로 이주를 감행했다.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어 기독교 신앙을 배척하도록 강요받는 동쪽의 형제들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겠다는 험난하고 좁은 길을 자진해 선택한 것이었다. 메르켈 소녀는 부모를 따라 베를린에서 그리 멀지 않은 템플린에서 자라났고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73년 그는 명문대학인 라이프치히대에 입학해 물리학을 전공하게 된다. 물리학 박사의 정계 진출은 매우 특이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과학자로서의 자질은 복잡다단한 정치 이슈를 해결하는 데도 큰 힘이 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는 한 가지 생각에 매몰돼 경직된 행동을 보이기보다는 물리학 실험실에서 하는 것처럼 현상을 면밀히 분석하고 여러 가능성 중에서 조심스럽게 해법을 찾아나갔다. 신중하고 단계적으로 행동하는 리더십은 오늘날과 같은 기술혁신 시대에 가장 적합한 리더십 스타일일 수도 있다.


여성 리더로서 메르켈 총리는 다른 여성 정치인들과는 확연히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먼저 그는 통일 정국이라는 전무후무한 비상시에 통일의 주역 콜 총리에 의해 ‘깜짝 발탁’ 된 동독의 인재였다. 서열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서독의 정치 풍토에서 정치 신인을 깜짝 발탁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메르켈의 등장은 동?서독 국민 통합이라는 숙제를 해결하기 위한 콜 총리의 ‘신의 한 수’였다. 콜 내각에서 메르켈은 승승장구했다. 그는 여성청소년부 장관에 임명됐고 나중에는 환경부 장관에 발탁됐다. 여기까지는 정치인 메르켈은 콜에 의해 만들어진, 통일의 상징적 인물 정도로 인식됐다.


메르켈의 리더십은 위기를 맞았을 때 진가를 발휘했다. 그를 두고 ‘위기 극복의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이유다.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슈테판 코르넬리우스 지음, 배명자 옮김, 책담)는 그가 자랐던 동독, 소속 기민당, 독일과 유로존의 위기가 없었더라면 ‘철(鐵)의 여제(女帝)’ 메르켈은 그저 평범한 지도자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고 기술한다.


기민당이 야당이었던 99년 정치인 메르켈에게 본격적인 ‘위기의 순간’이 다가왔다. 독일 통일 이후 거침없이 질주하던 그의 정치적 대부 콜 전 총리가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대충 얼버무리려다 사건을 더 키워 공분을 산 기민당이 최대 위기에 봉착했을 당시 메르켈은 사무총장이었다. ‘진실의 순간’에 직면한 메르켈은 콜 전 총리와 연결된 탯줄을 잘라버리는 정치적 결단을 단행했다. 일부 당료는 그를 ‘친부 살인자’라고 비난했지만 콜 전 총리의 비리를 덮으려 하지 않고 솔직히 시인하고 공개한 메르켈의 용기에 독일 국민은 박수를 치며 신뢰를 보내기 시작했다.


메르켈은 전국을 누비며 흔들리는 평당원들의 마음을 다잡고 성실하고 겸손한 자세로 그들에게 믿음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무터 리더십’, 즉 어머니 리더십이라는 단어는 이 무렵에 생겨났다. ‘어머니 리더십’이 효과를 발휘해 자신의 힘으로 누란의 위기에서 당을 살림으로써 메르켈은 결단성 있는 프로 정치인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었다. 메르켈은 2000년 4월 야당 기민당의 첫 여성 당수가 됐다.

메르켈 총리(왼쪽)와 오바마 대통령. [AP=뉴시스]

슈뢰더 꺾은 뒤엔 대연정으로 통합 행보야당 당수로서 메르켈이 주목한 것은 독일의 경제위기였다.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적·녹 연정(사민당과 녹색당의 연정) 당시 독일은 마이너스 경제성장과 14%의 실업률, 1조1850억 유로의 재정부채에 허덕이고 있었다.


해외 언론은 독일을 ‘유럽의 환자’라고 부를 정도로 당시 독일의 경제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슈뢰더 정부는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연금 개혁을 골자로 하는 ‘어젠다 2010’을 발표하고 이를 정책 목표로 삼았다. 이에 비해 메르켈은 서독 건국 초기 아데나워와 에르하르트 총리가 추진했던 ‘사회적 시장경제’, 즉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했다. 메르켈은 ‘모두가 골고루 잘 사는 나라’라는 모토를 앞세움으로써 진보 성향 유권자들의 표심을 공략하는 한편 ‘참여하는 사람에 대한 혜택’을 내세움으로써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사람에게 확실한 혜택을 주겠다고 약속해 ‘집토끼’인 전통적인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안심시키는 절묘한 ‘신 사회적 시장경제’를 대표적 공약으로 내걸었다.


2005년 총선에서 메르켈은 정치 거물 슈뢰더와 정권을 걸고 대결했다. 결과는 38.2%의 지지를 얻은 기민당이 집권 사민당(37.2%)에 1.0%포인트 앞서 제1당이 됐다. 그러나 어느 정당도 과반수에 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연정을 통한 집권만 가능한 상황이었다. 기민당 내에서는 군소정당과의 연정을 원했지만 정국의 안정을 위해서는 제1야당인 사민당과의 대연정이 긴요하다고 확신한 메르켈은 당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민당과의 협상을 통해 복지 확대, 원전 폐쇄 등 사민당의 정책을 받아들이고 외교·재무·경제 등 8개 주요 부처 장관 자리를 사민당에 넘기는 조건을 수락함으로써 대연정 정권을 출범시키는 데 성공했다. 2005년 11월 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최연소 총리가 탄생하는 것을 사람들은 경이와 기대에 찬 눈으로 지켜봤다.


슈뢰더 총리가 입안한 ‘어젠다 2010’과 ‘하르츠 4 개혁’은 메르켈 정권에서 계승, 발전됐고 노동과 사회복지제도의 개혁으로 독일 경제는 나날이 경쟁력을 회복해 갔다. 메르켈의 경제정책은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빛을 발하게 됐다. 미국을 비롯한 유로존 국가들이 재정위기 속에서 국가신용등급이 급속히 추락할 때 독일만 유일하게 3%대의 안정적인 경제성장률과 4%대의 낮은 실업률, 무역흑자 1위를 지속해 오늘날까지 ‘트리플 A’ 등급을 유지하는 국가로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직언할 수 있는 참모 둔 용인술의 달인『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는 메르켈이 행동에 앞서 침묵하며 깊이 연구한다고 격찬한다. 그는 또한 직언을 할 수 있는 참모를 곁에 두고 무한 신뢰하는 용인술의 달인이다. 참모들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정확한 민심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현안마다 최적의 대책을 마련하는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비록 화려한 언변은 없지만 핵심을 찌르는 연설은 정평이 나 있다. 지도자로서 필수요건인 원칙과 단호함에서는 단연 챔피언이다. 지난 14일 작고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생전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영국 마거릿 대처 총리를 많이 닮았다”며 “앞으로 메르켈 총리처럼 좀 더 대화하고 항상 어머니와 같은 마음의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 적이 있다.


2013년 이후 다시 사민당과의 제2차 대연정을 이끌고 있는 메르켈 총리는 시련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최근 그가 시리아 난민의 무제한적 수용을 선언한 것은 너무나 성급하고 경솔한 결정이었다는 당 내부의 반발이 거세다. 국민 여론도 메르켈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무터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언론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타임과 FT가 그를 2015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과연 메르켈이 자신의 이름 ‘앙겔라(Angela=angel)’와 같이 오늘날 계속되는 경제난과 난민 위기 속에서 유럽을 하나로 묶고 살려낼 수호천사가 될 수 있을지 유럽과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김성국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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