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가 잦은 연말이다. 가까운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다보면 어느새 과음하기 마련이다. 어느 때보다 간 건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기다. 특히 우리나라는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가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가장 유병률이 높은 간염은 B형 간염이다. 2013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 만 10세 이상 인구의 3.1%가 B형 간염 항원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간 질환이 그렇듯 B형 간염은 중증 간질환으로 진행되더라도 별다른 증상이 없어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간 질환은 술 때문에 생긴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대한간암학회가 지난 2014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간암의 원인은 B형 간염 바이러스 72%, C형 간염 바이러스 12%, 알코올 9% 순이다. 간염을 앓고 있는 사람이 술을 마시면 병의 진행 속도가 빨라져 술이 간에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되면 만성 간염으로 부르는데 이를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23% 정도가 간경변으로 진행된다. 간경변에 걸리면 간암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B형 간염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 환자 수는 많지 않다. 2013년 B형 간염 환자수는 31만 8167명으로 바이러스 보유자의 20% 수준에 불과했다. 2014년 통계청의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간 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은 6635명으로 10대 사망원인 중 8위에 올랐다. 특히 사회활동이 왕성한 시기인 40~50대 남성의 사망원인 1위가 간암으로 나타났다. B형 간염을 앓고 있는지 모르거나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데다 경쟁사회의 스트레스와 음주량이 많은 영향으로 추측된다.
악수하거나 국물 같이 먹어도 전염 안돼 B형 간염 바이러스(hepatitis B virus, HBV)는 감염된 혈액이나 체액으로 옮는다. 산모가 보유자일 경우 신생아가 감염되는 수직감염이 대표적이다. 산모 100명 중 3~4명은 B형 간염 바이러스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직감염되면 신생아는 생후 12시간 이내 면역항체 주사를 맞고 백신 접종을 해야 한다. 이외 감염자와의 성관계나 면도기·칫솔 등을 함께 사용할 때, 문신이나 피어싱을 하는 과정에서 소독되지 않은 침을 사용할 때도 감염될 수 있다. 하지만 악수하거나 국물을 같이 떠먹는 것으로는 전염되지 않는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일을 하던 정모(37·남)씨는 심한 피로감이 몰려오면서 속이 메스꺼웠다. 안색까지 누래져 회사 동료들의 도움으로 응급실로 실려왔다.정씨는 혈액검사 결과 간효소 수치가 정상의 50배였고 DNA 농도가 급상승돼 있었다. 그는 평소 술을 마시지는 않지만 활동성 B형 간염을 앓고 있었다.그런데 2년전쯤 경구용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받다가 약을 먹지 않고 정기 검진도 받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정씨는 바로 경구용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시작했지만 점차 간부전 상태로 악화돼 복수가 차고 간성 혼수까지 나타났다. 결국 간이식까지 필요하게 된 정씨는 간이식 대기자로 등록하고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다행히 열흘 후 뇌사자의 간으로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이식 후엔 규칙적으로 항바이러스제와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면서 점차 회복되어 현재는 건강을 되찾았다.
B형간염 바이러스 감염은 어려서 걸릴수록 만성 간염으로 진행될 확률이 높다. 수직감염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90% 이상 만성 간염으로 발전한다. 진단은 혈액을 이용한 B형 간염 바이러스 항원·항체 검사, DNA 검사와 생화학적 검사로 한다. 바이러스의 혈중 농도와 간효소(아미노트랜스퍼라제) 수치에 따라 항바이러스제 치료 시기를 정하게 된다.
치료의 목표는 B형 간염 바이러스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해 염증을 완화시키고 섬유화를 방지하는 것이다. 이로써 간기능 손상이나 간경변증 혹은 간세포암종의 발생을 예방해 간질환 사망률을 낮추고 생존율을 높이게 된다. 항바이러스제는 주사제와 경구용 약제가 주로 사용된다. 치료제를 선택할 때는 효과·안전성·내성·비용 뿐 아니라 임신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므로 전문의와 상의해 처방받아야 한다.
예방접종 받지 않으면 중병 발전할 우려 B형 간염을 예방하려면 접종이 필수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2002년부터 B형 간염 주사기 예방사업을 시작했다. 만성 B형 간염이 있는 산모에게서 태어난 신생아는 면역항체 주사와 백신, 검사 비용 등을 지원받았다. 그 결과 약 97%는 B형 간염을 예방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B형 간염이 있는데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중장년층의 경우 중증 간질환으로 진행될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B형 간염을 앓고 있다면 6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혈액검사와 영상검사를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바이러스 증식 상태를 확인하고 간경변증이나 간암으로 진행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간암은 다른 장기로 전이되기 전에 발견하면 5년 생존율이 49.3%지만 주변 장기로 전이됐을 경우 16.9%, 멀리 떨어진 장기로 전이됐을 경우 2.8%로 생존률이 급격하게 낮아져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배시현 객원 의학전문기자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