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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두근두근 인터뷰] 최현석 셰프 1 "요리사에게 자격증은 필요 없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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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쁘게 보내고 있는 최현석 셰프가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일명 ‘하자센터’의 영셰프 스쿨에 다니고 있는 예비 셰프들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이날의 만남은 최현석이 총괄 셰프를 맡고 있는 엘본 더 테이블에서 진행됐다.

바로 직전까지 메뉴 개발을 하고 있었다는 최현석은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영셰프 스쿨에 관심을 보였다. 요리 대안학교인 ‘영셰프 스쿨’은 하자센터 본관 1층 영셰프 밥집을 기반으로 일하며 배우는 현장학습을 하고, 인턴십을 나가며 청년 레스토랑을 창업하는 등 다양한 일자리 모델을 발굴해 나가고 있다.

영셰프 스쿨과 학생들 각자 소개가 끝나자 최현석 셰프와 인터뷰가 진행됐다. 마치 강의를 하는 느낌이라고 머쓱해하던 그는 어느새 방송에서의 모습 그대로 진지하면서도 때론 허세 넘치는 자신감과 당당한 모습을 보여줬다. 영셰프들의 질문에는 그 어느 때보다 애정 어린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이보다 더 편하고 솔직할 수 없는 그의 답변을 날 것 그대로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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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라 많이 바쁘시죠?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연말이라 많이 바쁘긴 하지만 하자센터에서 왔잖아요. 다른 학교면 안 했어요(웃음).”

-어릴 때 꿈은 셰프가 아니었다고 들었어요.
“어렸을 때 꿈은 계속 바뀌었죠. 특별히 학벌이 좋은 것도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었거든요. 이건 영셰프들과 비슷한가요(웃음). 근데 가족들이 다 요리사다 보니, 제일 스며들기 좋은 일이었죠.”

-가족도 다 요리를 하니 맛있는 음식만 먹었을 것 같아요. 지금껏 기억날 정도로 맛없었던 음식이 있다면요.
“아무거나 다 맛있게 먹는 편인데 고등학교 땐가 친구 집에서 친구 누나가 쓰는 교재 같은 걸 중고책방에 몰래 팔아 짜장면을 사 먹은 적이 있었어요. 짜장면에서 북엇국 맛이 나더라고요. ‘야, 이건 진짜 어쩜 이렇게 맛이 없을까’ 했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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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하고 싶어서 해도 힘든 게 요리잖아요, 어떻게 버티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나요.
“배고픔이죠. 올해로 요리한 지 20년 됐네요. 그저께 딸하고 얘기하는데 울더라고요. 자기가 무얼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고, 대학을 가야 하는데 어떤 게 자기가 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저는 요리를 시작하고 10년 동안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몰랐어요. 일을 안 하면 처자식이 굶으니까 계속했죠. 한 11년 하고 주방장으로서 제 요리가 고객들한테 나가니까 그때부터 ‘어! 이게 내 길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셰프 생활에 위기가 있었다면 언제인가요.
“4~5년 전 진짜 심각했어요. 우울증이 한방에 오는 게 아니고, 우울증 때문에 불면증이 생기도 하는데, 사람이 잠을 못 자면 피폐해지더라고요. 한 네 달을 불면증 때문에 힘들어 하고 두어 달은 거의 못 자고 그랬어요. 피곤하고 못 잔 것에 대한 강박관념이 생기니깐 집착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병원도 찾아갔어요. 그때 제가 유명하거나 그렇진 않았는데 음식업계에서는 나름 알려졌었어요. 고졸 출신인데 유명한 요리사가 됐다며 또 독창적인 요리를 하다 보니 잡지 같은데 많이 소개됐죠. 그러다 보니 힘든 친구들이 막 e메일을 보내요. ‘집안이 되게 어려운데 저 같은 사람이 요리사가 될 수 있을까요?’ 이런 내용들. 그리고 학교에서는 강의를 부탁한다고 연락이 오는데, 내 앞가림도 못하면서 무슨 남을 가르치냐 그렇게 생각했죠. 매장도 다 관리하면서 매일 미팅 들어가고 저에게 너무 집중이 많이 되어 있는 거예요.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왜 다들 나한테 난리야, 나 좀 내버려 둬!’ 이런 생각이 있었죠. 자살 충동도 느끼고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은 거죠, 할 일도 많고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도 많은데. 지금 너무 좋잖아요. 열심히 일해서 뜻깊은 것들을 많이 만들고 있고. 그런데 그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그 와중에도 마감일이 있어서 메뉴는 계속 바꿔대는데 진짜 너무 힘들더라고요.”

-극복한 계기가 있나요.
“네, 이전에 낸 에세이집에 쓴 적이 있어요. 친구가 경비행기 사고로 죽었어요. 한참 힘들 때라 그런지 더 서럽더라고요. 장례식장을 갔더니 친구들이 얼굴이 썩었다고, 잘 나가는 거 아는데 적당히 하며 살라고 그러더라고요. 그 순간 마음을 먹었어요. 의사가 약을 함부로 끊지 말라고 했는데 하루아침에 약을 끊었죠. 그랬더니 그나마 4시간씩 자던 걸 한잠도 못 자더라고요. ‘에이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했어요. 한 사흘 지나니까 한 시간 자더라고요. 나흘째 되던 날 두 시간 자고, 세 시간 자고 네 시간 자고, 점점 잠을 자니까 우울증도 극복이 됐어요. 죽은 친구가 같이 우슈 운동하고 진짜 친했는데 속으로는 그 친구가 고쳐주고 갔구나 그랬죠. SNS를 보면 남들은 다 편하고 잘 사는 것 같아요. 근데 난 매일 스트레스 받고··· 그런 상대적 박탈감이 있는데, 들여다보면 다들 힘들게 살고 그래요.”

-바쁜 와중에도 여러 일을 하고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해요.
“스트레스 받을 때 머리의 온도가 떨어져야 다시 가동할 수 있잖아요. 컴퓨터 하드가 뜨거워졌을 때 식혀야 잘 돌아가는 것과 똑같죠. 로봇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데 그런 거 보면서 좀 식히고 다시 메뉴 짜고 그래요. 스스로에게 계속 동기를 주는 편이에요. 쪽팔린 걸 되게 싫어하거든요. 자존심은 강한데 굉장히 게을러요. 그냥 두면 무한정 퍼지는데 창피한 걸 되게 싫어해서 사람들에게 미리 얘기하죠. 일할 게 많으면 데드라인을 정해서 언제까지 줄게 해놓고 안 주면 창피하니깐 어떻게든 해요. 뭘 이뤄야겠다 싶으면 주변에 얘기해요. ‘너 그거 하기로 했는데 어떻게 됐어’ 그러면 창피하니까 또 하게 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요. 몸도 요즘 쳐묵쳐묵 해서 정말 퍼졌거든요. 거울을 보면서 반성하죠. ‘너는 이렇게 퍼진 몸을 갖고 있는 남자가 아니야. 너는 아름다운 식스팩과 함께 멋진 핏을 가져야 하는 남자야.’ 그러면서 운동 시작하고 그러다 좋아지면 또 쳐묵쳐묵 하고 퍼지고 이런 걸 반복하는 거죠.”

-셰프님이 생각하는 좋은 요리란 어떤 요리인가요.
“‘냉장고를 부탁해’하면서 진짜 많이 깨달았죠. 퀄리티 높고 테크니컬하고 재료도 비싸면 사실 그냥 비싼 요리지 좋은 요리는 아닌 거예요. 송로버섯, 고가의 식재료인데 어떤 사람은 냄새 맡으면 경유·디젤 냄새난다고 그러고 고수도 락스 냄새난다고 싫어해요.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을 그 사람이 좋아하는 대로 만들어서 행복하게 해주는 게 좋은 요리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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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파로 성공한 것은 셰프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말 있잖아요. 국내파고 고졸 출신이기에 유명한 셰프가 될 가치가 있다. 사실 웃기는 소리예요. 왜냐하면 남들 공부할 때 논 거예요. 나중에 요리를 하다 보니까 부족하잖아요. 공부해야죠. 근데 세상이란 건 공평해요. 배우고 왔던 애들에 비해서 딸리는 건 맞아요. 그럼 걔들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해. 논 거 만회해야 하잖아요. 사실 운이 좋아서 한 몇 년 논 거보다는 덜해도 됐었던 거 같긴 한데 분명히 과거를 돌아보면 그때를 후회했을 때가 있었어요. 해외에 레스토랑 내고 싶어 영어 공부를 하는데 왜 이걸 진작 고등학교 때 안 해놨을까 후회도 하고 그런 거죠. 근데 일단은 제가 학벌 때문에 결격사유가 돼서 셰프를 못한 것도 아니에요. 다만 남들이 가는 길보다 다른 길은 조금 더 가파르고 험난해요. 그렇기에 엄청 뛰어야 하죠. 사람들은 ‘난 저 길이 아니니까 망했네 못하네’ 그러는데 꿈을 이루는 길은 진짜 다양해요. 대신 책임은 져야지. 내가 불리한 만큼 현실에 맞게. 내가 지금 돈을 벌어야 하면 요리를 하면서 돈을 벌어요. 나중에 분명 필요한 때가 와요. 그때 더하면 되고 그런 거죠. 어쨌든 요리사는 손으로, 지금의 그 모습으로 평가를 받는 거예요. 누가 예전에 요리학교에서 엄청 잘 나갔는데 지금은 아니다 그러면 못하는 요리사가 되는 거죠. 과거는 다 필요 없어요.”

-면접을 볼 때 자격증, 수상 경력, 그런 거 하나도 신경 안 쓴다고 들었어요.
“네. 무슨 얼어 죽을 자격증이냐고 그래요. 시험에 이런 항목이 있어요. ‘요리의 숙련도를 위해서 간을 보지 않는다’라는데 이게 무슨 교만이에요. 전 그게 이해가 안 가요. 맛을 안 보고 요리를 하는 건 미쳤다고 생각해요. 자격증보다는 눈이 얼마나 살아있나, 될 놈인가 보죠. 태도나 성실함 이런 거는 다 읽혀지거든요. 당장 신입이 요리대회 수상해서 레시피를 1000개 가지고 있는 게 무슨 소용이에요. 걔는 칼질하고 청소하러 온 애인데. 물론 메뉴 개발을 한 친구들이 중간급이면 경력 이력에서 요리를 잘하는 걸 보겠죠. 새로 시작하는 애들은 성실하고 눈빛 살아있고 똑똑하고 눈치 빠르면 더 좋고 그렇죠. 어차피 일 못하고 이런 건 내가 가르쳐서 일 잘하게 만들 거고 키워서 쓸 거니까요.”

-셰프의 덕목은 무엇일까요.
“제일 중요한 건 먹는 걸 좋아하는 게 기본이죠.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잘하는 사람 드물고, 사실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내가 만든 것을 남이 먹는 게 좋다 그러면 기본 소양이 갖춰진 거죠. 거기에 음식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하고 자기관리도 잘해야 해요. 자기애도 강해야겠죠. 접시 하나에 자기가 다 담겨서 상품으로 팔리니까 자기에 대한 자신감, 당당함도 있어야 해요. 스승님이 저에게 늘 얘기했던 기본, 원칙도 잊으면 안 돼요.”

-교육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여러 군데에서 연락이 많이 온다고 했잖아요. 어느 분야에서 어느 만큼 먹고 살 정도 되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애들도 가르치기 시작한 거고. 우리나라 교육 문화도 좀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냥 자기 하고 싶은 거 하고 살게 하면 안 되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찾아서 다양하게 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대전에 엘본그랑카페도 생기는 등 매장을 점차 넓히는 추세던데 앞으로의 계획은.
“캐주얼 레스토랑이에요. 엘본 더 테이블이 다이닝 레스토랑이라서 많은 분들이 이용을 못하잖아요. 하자센터 앞에 엘본 더 테이블을 딱 차리고 학생들한테 ‘한 끼씩 먹고 가’ 그렇게 못하잖아요. 좀 많은 분들이 이용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 필요했어요. 그럼 규모도 커지고 같이 일하는 친구들도 뭔가 동기가 되고 올라갈 자리도 생기죠. 8년 전부터 얘기했는데 진짜 인재를 키우는 요리 학교를 준비하고 있고요. 제가 가르친 애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저를 뛰어넘는 사람 두어 명만 배출돼도 명문이 되는 거니까 꼭 그렇게 만들 거예요. 또 세계 미식 도시에 내 레스토랑을 열고 싶어요. 이 얘기를 계속하고 다니니까 언젠가 하겠죠.”

-2015년을 그 누구보다 바쁘게 보내셨을 것 같은데, 돌아보면 어떤 해로 기억될까요.
“뭔가 요리로 할 수 있는 다른 가치를 만들어 낸 것 같아요. 셰프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세상에 많다. 셰프로서 바꿀 수 있는 일도 있다. 뭐 이런 것을 알린 한 해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영셰프들은 최현석 셰프에게 영셰프 선배들의 졸업을 축하하는 영상을 부탁했다. 그는 영상으로 필드에서 만나자는 인사를 전했다. 동행 취재한 영셰프 6기도 언젠가 최현석 셰프와 필드에서 만날 그날을 기원해본다.

글=한은정 기자 han.eunjeong@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영상=전민선 인턴기자

[두근두근 인터뷰] 최현석 셰프의 3분 멘토링

최현석 셰프(왼쪽)와 동행취재한 영셰프 6기
최현석 셰프(맨 왼쪽)를 만난 하자센터 영셰프 스쿨 6기 이진석·김지희·한현정·정희라(왼쪽부터)가 요리와 요리사에 대한 고민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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