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열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촉발된 ‘대균열(great divergence)’ 시대 한국은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렸다. 선진국과 신흥국의 중간에 끼어서다. 유로존의 유로화나 일본의 엔화는 국제통화다. 미국이 금리를 올려도 EU나 일본이 돈 풀기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한국은 입장이 다르다. 미국과의 금리차가 좁혀지면 달러 엑소더스(대탈출)에 휩쓸릴 위험이 크다. 제조업이 튼튼했는데도 1997년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았던 것도 달러 부족 때문이었다.
막 내린 미국 제로금리 시대 - 한국은
진퇴양난 속 해법 찾는 금융당국
정부·한은 “부정적 영향 제한적”
당장 미국 좇아가지는 않을 듯
“금리 격차 좁혀지면 자본 이탈
내년 7~8월 금리 인상 바람직”
그렇다고 미국을 좇아 금리를 따라 올리기도 어렵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 하루 전날 ‘디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뛰는 물가를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떨어지는 물가를 부추기는 게 급선무다. 이런 마당에 금리를 올리면 그나마 살아나던 내수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우려가 크다. 금리 인상은 원화가치를 끌어올려 한국 수출기업에도 부담을 준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자 한은이 “부정적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당장 금리를 올릴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은 건 이 때문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한국과 미국의 정책금리 차는 1%포인트로 좁혀졌다. 미국은 내년 3~4차례 더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인다. 한은이 현재 정책금리를 유지한다면 내년 하반기엔 한·미 간에 금리차가 사실상 사라지는 셈이다. 다만 외국인투자금은 단지 금리차에 따라 움직인 건 아니었다. 2005년 8월~2007년 8월은 미국 금리가 오히려 한국보다 높았다. 이때 외국인 자금은 2006년 11조2300억원, 2007년 24조5220억원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갔다. 그런데 금리가 미국보다 2~3% 높았던 2008년에는 36조1740억원으로 이탈 규모가 더 커졌다. 그러다 금리 차이가 1.75%로 줄어든 2009년에는 반대로 23조5320억원이 유입됐다.
단순 금리차보다는 국제 외환시장의 흐름이나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더 큰 변수가 됐다. 정부와 한은이 당장 급격한 자금 이탈이 없을 거라고 자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외환보유액이 3685억 달러(11월 말 기준)에 달하고 올 11월까지 경상수지도 45개월째 흑자인 상황에서 현재 한·미 금리 차이가 자본 유출을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외채 구조가 단기에서 장기로 변하는 등 우리 내부 여건이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길게 보면 대세를 거스를 순 없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자본유출이 벌어지면 한국도 어쩔 수 없이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며 “이러면 경기회복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큰 만큼 자본유출 사태가 오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이 내년 상반기에 금리를 두 번 올리면 한·미 간 금리 격차가 1% 아래로 떨어진다”며 “이러면 자금 유출 우려가 커질 수 있는 만큼 7~8월에 금리를 인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기초체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고 해도 신흥시장의 약한 고리가 끊어지기 시작하면 그 불똥이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질 거란 우려도 있다.
세종=조현숙 기자, 이태경·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