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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숲·바다·채소밭 벗삼으니, 마음도 푸르러집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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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올레 구루메ㆍ고라산 코스는 고라산 숲을 걷는 걸이다. 숲이 깊고 그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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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올레 16, 17번째 코스가 개장했다. 규슈올레는 한국의 제주올레를 본뜬 일본 규슈(九州) 지역의 트레일이다. 2012년 2월 사가(佐賀)현의 다케오(武雄) 코스가 개장한 이래 해마다 3∼4개 코스가 개장했고, 지난달 21일과 22일 후쿠오카(福岡)현의 구루메·고라산(久留米·高良山) 코스와 나가사키(長崎)현의 미나미시마바라(南島原) 코스가 각각 개장했다. 올해도 규슈의 7개 현(縣. 우리의 ‘도’에 해당) 모두가 코스 개장을 신청했지만, ㈔제주올레(이사장 서명숙)와 규슈관광추진기구가 진행한 심사에서 2개 코스만 통과했다.

지난달 개장한 규슈올레 두 코스

규슈올레는 개장 4년 만에 일본을 대표하는 트레일로 성장했다. 지난달 20일 후쿠오카에서 열린 ‘한일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이어 지난 4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관광교류확대 심포지엄’에서도 규슈올레는 한일 양국의 화해와 민간교류를 대표하는 사례로 거론됐다. 규슈관광추진기구에 따르면 2012년 3월부터 지난 9월까지 규슈올레 방문자는 모두 16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에서 한국인이 10만4000명, 일본인이 5만8000명이었다. 규슈올레 17개 코스의 길이를 다 합하면 198.3㎞에 이른다. 새로 난 규슈올레 코스를 소개한다.

표정이 있는 숲길 - 구루메·고라산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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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메·고라산 코스의 주인공은 그윽한 숲길이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볕도 좋았고, 낙엽 깔린 오솔길도 좋았다.

구루메·고라산 코스는 후쿠오카현 구루메시 고라산(313m) 기슭에 들어선 올레길이다. 전체 길이는 8.6㎞에 이르고, 난이도는 ‘중·상’으로 평가됐다. 길이는 짧지만, 고라산 등산로를 따라 이어진 코스에 경사가 있어 높은 난이도를 받았다.

규슈 지도를 보자. 구루메시는 일본 여행의 관문도시 후쿠오카에서 불과 35㎞ 떨어져 있다. 규슈를 종단하는 고속도로와 철도가 구루메시를 통과하고, 규슈를 횡단하는 고속도로와 철도도 구루메시 근방을 지난다. 구루메시는 규슈 교통의 요지다. 인구 50만 명에 달하는 공업 도시로, 세계적인 타이어 회사 브리지스톤 본사가 시내에 있다.

그러나 구루메는 사케의 고장으로 더 유명하다. 구루메에서 생산하는 사케는 고베의 나다(神?の灘) , 교토의 후시미(京都府の伏見)와 함께 일본 3대 사케로 일컬어진다. 시내에 있는 양조장이 15개에 이르고, 일본 주류 감평회에서 수많은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구루메시를 가로지르는 규슈 최대의 강 지쿠고가와(筑紫川)에서 좋은 물을 얻고, 지쿠고(筑紫)평야에서 좋은 쌀을 거둬 메이지(明治) 시대부터 사케의 고장으로 명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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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산 숲 속에 숨은 약사여래상. 구루메·고라산 코스를 조성하면서 찾아냈다고 한다.

그러나 규슈올레 구루메·고라산 코스는 공업 도시 구루메나 사케의 고장 구루메하고 딱히 관계가 없다. 구루메·고라산 코스의 테마는 되레 구루메시 남쪽에 솟은 고라산에 있다. 규슈철도(JR) 구루메대학 역에서 시작한 길은 고라산 기슭의 숲길로 이어졌다가 JR 미이(御井) 역에서 끝난다. 전체 8.6㎞ 중에서 약 7㎞가 고라산 자락에 걸쳐 있다. 구루메·고라산 코스는 말하자면 고라산 둘레길인 셈이다.

구루메·고라산 코스에서 가장 인상에 남은 건, 고라산이 품은 깊은 숲이었다. 마침 하늘이 맑았는데, 파란 하늘을 거의 보지 못했을 만큼 나무가 높았고 촘촘했다. 무엇보다 숲의 표정이 다양했다. 빽빽한 대숲을 지났고, 키 낮은 철쭉나무 군락지 사이를 통과했고, 푹신한 낙엽을 밟았고, 울창한 삼나무 아래를 걸었다. 가파른 구간이 군데군데 있긴 했지만, 지루하거나 힘든 줄은 몰랐다. 더욱이 숲길 대부분이 흙길이어서 발의 피로도 덜했다. ‘중·상’으로 매긴 난이도보다 체감 난이도는 분명 낮았다.

한국 여행사 관계자들도 만족도가 높았다. 구루메가 워낙 교통이 좋은데다, 지난 2월 개장한 야매(八女) 코스도 가까이 있어 여정을 짜는 데도 유리하다고 입을 모았다. 앞으로 기대가 되는 코스였다.

남도를 닮은 해안 풍경 - 미나미시마바라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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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미시마바라 코스에서 만난 양상추 밭길. 얕은 구릉 위로 푸른 채소밭이 펼쳐진다.

구루메·고라산 코스와 정반대의 트레일이라 할 수 있다. 구루메·고라산 코스가 교통의 요지에 들어선 ‘산중(山中) 올레’라면, 미나미시마바라 코스는 ‘교통의 오지’에 틀어박힌 ‘바당올레(바다올레)’다.

미나미시마바라 코스는 나가사키현 미나미시마바라시에 조성됐다. 나가사키현 동쪽으로 불거진 지형이 시마바라 반도다. 시마바라 반도 안에 3개 시가 있는데, 하나가 온천도시 운젠(雲仙)시고 다른 하나가 시마바라시다. 그 두 도시 아래에 미나미시마바라시가 있다. 미나미시마바라가 남쪽의 시마바라라는 뜻이다. 그래서 교통이 안 좋다. 미나미시마바라에서 후쿠오카 공항까지 자동차로 4시간 가까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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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미시마바라 코스는 해안을 따라 걷는다. 사진 속 풍경은 세스메자키( 詰崎) 등대.

미나미시마바라시에서도 가장 남쪽의 하야사키(早崎) 반도 안에 미나미시마바라 코스가 있다. 찾아가는 길은 영 멀지만, 길 자체는 참 좋다. 길이 10.5㎞로 짧은 길은 아니다. 대신 평탄한 편이어서 걷는 데 어렵지 않다. 너무 쉬워 심심할 수도 있다. 난이도는 ‘중’을 받았다.

길은 구치노츠(口之津) 항구에서 시작해 하야사키 반도를 돈 뒤 구치노츠 항구 남쪽의 역사민속자료관에서 끝난다. 길을 걷는 내내 바다가 보인다. 아니 바다가 빚는 온갖 풍경이 이어진다. 소담한 포구와 부지런히 들락거리는 배, 낡은 등대와 거친 갯바위가 번갈아가며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러나 파란 바다보다는 붉은 흙이 기억에 남았다. 항구를 벗어나면 약 4㎞ 길이의 구릉지대를 통과하는데, 이 구릉이 온통 채소밭이다. 저수지 주변으로 붉은 흙과 푸른 채소가 어우러진 풍경이 장쾌하게 펼쳐졌다. 규슈올레를 걸으면서 푸른 차밭은 많이 봤지만, 채소로 푸른 밭은 처음이었다. 지금 계절에는 양상추와 대파가 붉은 흙을 덮고 있었다.

채소밭 풍경은 우리네 남도의 채소밭 풍경을 빼닮았다. 돌담 에워싼 모습이 언뜻 제주의 남새밭 같지만, 붉은 흙 때문에 되레 남도의 풍광이 떠올랐다. 비탈진 언덕에 어떻게든 밭을 일구려고 돌을 쌓아 구들장을 낸 장면에서는 청산도의 구들장 논이 연상됐고, 해풍에 대파가 흔들리는 장면에서는 남해의 다랭이마을이 겹쳐졌다.

미나미시마바라까지 갔다면 꼭 가볼 곳이 있다. 시마바라 난 최후의 격전지인 하라(原)성이 길 가까이에 있다. 시마바라 난은 17세기 일어났던 일본 최대의 민중 봉기다. 하라성에서 기독교 신자와 농민 3만7000여 명이 학살됐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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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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