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정상적'이어서 각국 놀라게 한 北의 기후 외교,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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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 선생(Mr. President),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부는 환경 보호를 위한 업적 토대를 강화하는 한편…국제적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노력에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7일(현지시간) 기후변화총회가 열린 프랑스 파리. 고위급회기에서 단상에 선 북한 이수용 외무상의 연설은 적지 않은 국가 대표단을 놀래켰다. 국제적 행사를 체제선전이나 핵 보유 정당화의 장으로 삼았던 기존과 달리 너무나도 ‘정상적’인 내용과 태도 때문이었다. ‘국제적 단합’, ‘국제 협력 강화’ 등의 외교 수사도 수시로 등장했다.

이 외무상은 우선 파리 테러에 대한 애도로 연설을 시작했다. “나는 이 기회에 파리 테러 사건 피해자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시하며, 프랑스 인민이 그 후과를 가지고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길 바란다. 우린 온갖 형태의 테러를 반대하는 원칙적 입장으로부터 최근 극단주의를 반대하는 여러 나라의 국제적 노력의 연대성을 표시한다”면서다.

그러고선 곧바로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 외무상은 “우리 대표단은 본 대회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에 주목이 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나라들이 기후변화 문제의 전지구적 성격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에서 국제적 단합을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기후변화 대처를 위하여 국제적 및 지역적 협력을 강화하며, 특히 발전도상 나라들에 대한 재정 기술적 협조가 제때에 제공돼야 할 것이다. 발전된 나라들은 자신의 역사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동시에 발전도상 나라들이 자체 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부담을 느끼는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같은 논리정연한 역설이었다.

외교가에서 이런 이 외무상의 모습이 낯설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그간 보인 행태 때문이다. 유엔 총회, 유엔 인권이사회 등 자리를 가리지 않고 당당하게 핵 보유 권리를 주장했던 그였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8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는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을 찬양하고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비난하는 데만 몰두했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조선반도의 비핵화가 아니라 조선반도의 미국화(Americanization)”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에 바로 다음 순서에 연설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미국 조차도 한 가지 색깔로 미국화가 되지 않았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냉소하기도 했다.

당시 사정에 밝은 정부 관계자는 “많은 국가 대표단이 이 외무상을 보면서 안타까워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 외무상은 직업 외교관으로서 외교가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이고 다른 외교사절들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공식석상에서 저런 연설을 해야 한다니, 본인도 괴로울 것”이라면서다.

하지만 기후변화총회에서 이 외무상은 본래의 외교관다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연설 도중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가 한 차례 나왔을 뿐이고, 과장된 치적 홍보도 하지 않았다.

이런 북한의 속내는 연설 중반쯤 드러났다. 이 외무상은 “록색기후금(GCF·녹색기후기금) 등을 통한 협조에서 리기적이며 부당한 조건부를 제기하지 말아야 하며, 정치화를 반대하고, 공정성의 원칙에서 준수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교가 소식통은 “파리에서 북한 대표단이 사무국에 어떻게 하면 GCF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묻고다니는 등 너무 적극적으로 움직여 놀랐다”고도 했다. 산림 황폐화 문제가 심각한 북한이 GCF 지원 등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기후변화총회에 임했다는 짐작이 가능한 부분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당연히 GCF 기금을 활용하려고 할 것이다. 충분히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오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이 외무상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북한의 노력도 적극적으로 알렸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12년 국가에네르기(에너지)전략을 작성하고 환경과 에네르기의 지속적 개발을 결합시켜 나가고 있다. 고효율조명계획을 비롯한 추가적 대책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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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노동신문이 소개한 레드등(LED전구) 공장. [노동신문]

그가 언급한 ‘고효율조명계획’은 일반 백열전구를 LED전구로 바꾸는 사업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는 LED 전구를 ‘레드등’이라고 부른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해 평양 교외에 있는 ‘광명레드공장’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레드등 이용은 환경 오염이 전혀 없다. 현재 주민들이 쓰는 100W 백열등 한 개를 10W레드등으로 교체할 경우 수십만t의 석탄을 절약하는 것과 맞먹는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 외무상은 연설 말미에 야심찬 목표를 제시해 한국 대표단을 놀래키기도 했다. “앞으로 10여년 간 총온실가스방출량은 1990년 수준에 비해 37.4%를 줄이겠다”고 한 것이다. 이는 한국이 제시한 ‘2030년 배출전망치 대비 37% 감축’보다도 높은 목표 설정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당국자는 “한국말인데 내가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이 외무상은 이에 그치지 않고 “이에 따라 앞으로 10년 동안 63억 그루의 나무 심기를 비롯하여 167여종의 산간 면적 조림 및 재조림할 것을 계획하고 이 사업을 전국가적, 전군중적 운동으로 벌리고 있다”고 녹색화 계획도 소개했다. 조림 사업은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 강조한 내용이기도 하다.

북한이 2013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국에 제출한 2차 기후변화국가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 1억 9349만t에서 2000년 6571만t으로 줄어 들었다. 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1억 3198t으로 전망했다. 배출전망치 대비 대략 1만t 가량을 줄이면 되는 상황이다. 물론 이는 북한의 주장일 뿐이다. 또 북 측은 아직 공식 감축 계획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고 봐야 한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북한은 앞서 2004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기후변화 국가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한 바 있다. 2차 보고서는 162페이지 분량으로 1990~2002년 배출량과 2020년까지 배출량 전망은 물론 기후변화 대책 전략 등을 상세히 수록했다. 1994년 UNFCC를 비준한 이후 꾸준히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이 이처럼 기후변화 대응에 성실한 모습 보이는 것은 ‘큰물’ 피해 등 기후변화에 취약한 구조와 탄소배출권 거래 등 각종 경제적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북한은 체코 등으로부터 ‘청정개발체제(CDM)’ 협력사업과 관련한 투자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기후변화 협약은 196개국이 동등한 자격으로 가입해 있기 때문에 국가제재와도 별개의 문제”라며 “이런 부분에선 남북협력의 여지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지혜·안효성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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