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의 책 표지만 바꿔…'표지갈이' 교수들 무더기 기소

중앙일보

입력

 
남의 책 표지만 바꾸는 이른바 '표지갈이' 수법으로 전공서적을 출간하거나 이를 묵인한 대학교수들이 무더기로 재판에 회부됐다. 이번에 적발된 교수들 혐의가 유죄로 확정될 경우 각 대학 재임용 심사에도 반영되면서 대규모 교수 퇴출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의정부지검 형사5부(권순정 부정검사)는 14일 저작권법 위반 및 업무방해 등 혐의로 전국 110개 대학 교수 182명을 적발해 74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105명을 벌금 10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고 밝혔다. 또 해외연수 중인 교수 3명을 기소중지하고 이들과 짜고 책을 펴낸 4개 출판사 임직원 5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 교수는 전공서적 표지에 적힌 원저자명을 자신의 이름으로 살짝 바꾸거나 한두 글자를 추가해 책 제목을 바꾸는 수법을 사용해 새 책인 것처럼 속여 출간한 혐의를 받고 있다. 허위 저자의 이름을 추가하거나 책 디자인만 바꿔 여러 차례 발행한 사례도 적발됐다.

기소된 이들 중에는 국·공립대 교수 44명과 전직 교수 8명 등 사립대 교수 138명이 포함됐다. 유명 사립대와 지방 국립대 교수는 물론 학과장도 9명이나 됐다. 교수 6명이 한꺼번에 적발된 대학도 3곳이나 된다. 이 중엔 해당 학과 교수의 3분의 1 이상이 적발된 곳도 있었다.

조사 결과 교수들은 주로 호봉 승급이나 재임용 평가를 앞두고 연구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범행에 가담했다. 이들은 대학들이 공동저서보다 단독저서에 더 높은 실적 점수를 부여하는 점을 노려 먼저 출판사에 표지갈이를 제안하기도 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교수 26명은 2~3권의 전공서적에 허위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가 적발됐다. 일부 전공서적은 판을 바꿔가며 교수 21명이 원저자로 등재되기도 했다.

교수 4명은 표지갈이 책을 연구 실적으로 대학에 제출했다가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실제로 책을 쓴 교수들은 표지갈이 책들이 버젓이 유통되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에 적발된 표지갈이 책은 총 38권으로 모두 이공계열 전공서적이었다. 인문·사회과학 서적과 달리 일반 독자에게 판매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대학 구내서점 위주로 소량 판매돼 표지갈이 관행이 이어질 수 있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연구 실적을 올리려는 허위 저자와 서적을 재고 처리하려는 출판사, 출판사를 확보하고 인세를 취득하려는 원작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때문에 가능했다"며 "이번에 적발된 교수들 명단을 해당 대학에 통보하고 '연구 부정행위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의정부=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