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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공항 먹통 76분, 관제사는 비상 장비 쓸 줄 몰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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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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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관제탑과 여객기 교신 이상으로 제주국제공항 도착편 안내 화면에 ‘지연’이 표시돼 있다. [뉴시스]

공항 관제소와 여객기 사이에 교신이 갑자기 이상을 일으켰다. 제주도와 근처 바다 상공에 여객기 6대가 떠 있는 상태에서였다. 관제탑은 즉시 예비·비상 통신장비를 가동시키려 했지만 허사였다. 담당자들이 예비·비상 통신장비 사용법을 제대로 몰라 생긴 일이다. 대응 매뉴얼 자체가 문제였다.

주 통신장비 고장 여객기 착륙 못해
‘예비·비상 장비 쓸 땐 주 장비 꺼야’
매뉴얼에 없어 … 40편 출발 지연
“교신 자동 전환시스템 개발 필요”

 지난 12일 오후 6시50분쯤 제주국제공항에서 비행기 이착륙을 지시하는 관제탑과 여객기 사이에 교신 이상이 생겼다. 여객기 응답이 들리지 않았다. 잡음이 지지직거리는 가운데 웅얼거리는 듯한 소리만 들렸다. 인근 ‘접근관제소’도 마찬가지였다. 접근관제소는 관제탑보다 더 멀리에서 접근하는 비행기를 통제하는 시설이다.

 당시 제주공항에는 1분30초마다 비행기가 이착륙할 예정이었다. 한국공항공사 제주본부 강동원 시설단장은 “자칫 충돌 사고가 날 수 있어 즉시 이착륙을 전면 중단시켰다”고 말했다. 무선 통신장비가 고장 난 상태여서 다른 공항에 유선으로 연락해 여객기들에 이착륙을 금지지시했다. 관제팀은 곧바로 항행안전팀에 주 통신장비의 수리를 요청했다. 한편으로 예비 통신장비를 작동시켰지만 주 장비와 마찬가지로 스피커에서는 잡음만 흘러나왔다. 이어 ‘주 장비가 고장 나면 예비→비상 장비 순서로 교신한다’는 원칙에 비상 통신장비인 휴대용 무전기를 사용했다. 하지만 이 역시 먹통이었다.

 교신 이상이 생기고 51분이 흐른 오후 7시41분에야 예비·비상 장비를 통해 여객기와 교신이 이뤄졌다. 수리를 위해 주 장비의 전원을 끈 순간이었다. 그제야 예비·비상 장비가 먹통이었던 까닭이 밝혀졌다. 주 장비를 비롯해 예비·비상 장비 모두 같은 주파수로 통신하기 때문에 전파 간에 일종의 충돌인 ‘간섭 현상’이 생겨 통신이 안 됐던 것이다. 관제와 시설관리 요원들은 ‘주 장비를 꺼야 한다’는 사용법을 몰랐다. 매뉴얼 자체에 그런 내용이 없었다. 매뉴얼은 한국공항공사가 만들어 전국 공항에 비치했다. 제주대 통신공학과 김흥수 교수는 “관제소 통신장비가 고장 나면 비행기에 ‘교신 주파수를 바꾸라’고 전할 수 없어 예비·비상 장치도 같은 주파수를 쓸 수밖에 없다”며 “그럼에도 주 장비를 꺼야 한다는 내용이 매뉴얼에 없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주공항에서는 통신선 일부를 교체한 뒤인 오후 8시6분 관제소 통신이 재개됐다. 통신 두절로 인해 여객기 37편의 이착륙이 지연됐고 2편은 회항했다. 이륙하려던 40편 역시 출발이 늦어졌다.

 제주국제대 항공운항과 박창희 교수는 “관제소가 통신 이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여객기 충돌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며 “매뉴얼에만 의존하지 말고, 주 통신장비에 이상이 생길 경우 바로 예비 통신장비를 통해 교신이 이뤄지도록 하는 자동 전환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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