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분수대

자비의 희년

중앙일보

입력 2015.12.14 00:48

업데이트 2015.12.14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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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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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논설위원

지난 8일 가톨릭 신도 5만 명이 구름처럼 모여든 바티칸시티 내 성 베드로 성당 앞. 미사를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이 “정의의 문을 열어 달라”고 외쳤다. 그러자 벽돌로 막아뒀던 육중한 ‘대성전 성문(聖門)’이 열렸다. 곧이어 교황이 신도들과 함께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문을 통과함으로써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다. 16년 만에 이뤄지는 ‘자비의 희년(稀年)’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내년 11월 20일까지 이어지는 이 기간 동안 회개와 성지 방문 등의 조건을 지키면 모든 죄를 용서받게 된다는 게 가톨릭 교리다. 심지어 “희년 중 죄를 뉘우치면 낙태 여성도 사해주겠다”는 교황의 특별 선언까지 나왔다.

  1300년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이 시작한 희년은 25년마다 돌아온다. 하지만 사이사이 특별 희년이 선포될 때도 있다. 이번에도 특별 희년으로, 요즘 상황에선 자비의 정신이 가장 절실하다고 교황이 판단한 것이다.

  희년이 되면 전 세계 주요 성당의 문이 개방된다. 문은 구원의 상징으로 명동 성당도 오른쪽 옆 문을 13일 열었다.

 불교 역시 어느 종교보다 자비를 강조한다. 세간의 비판을 무릅쓰고 조계사가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을 25일간 품은 것도 자비심의 발로다. 복수의 화신처럼 알려진 이슬람도 관용의 종교다. 쿠란은 “너희에게는 너희의 종교가, 나에게는 나의 종교가 있을 뿐”이라며 타 종교의 수용을 가르친다.

  그럼에도 세상은 증오와 복수가 넘친다. 파리 테러 이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아예 “무슬림의 입국을 막겠다”고 밝혀 세상을 들끓게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갈등 해결엔 용서만 한 특효약이 없다. 요즘처럼 서방과 이슬람 극단세력 간 공격과 보복이 갈수록 격화되는 걸 게임이론에선 ‘팃포탯 (tit for tat)’ 상황이라고 한다. 상대가 치면 이쪽도 맞받아친다는 뜻이다.

 이런 악순환을 끊으려면 상대방 도발 시 상응하는 응징을 하되 그 수준 이상의 보복은 삼가야 한다. 도를 넘는 보복이 이뤄지면 적도 그 이상으로 반격하게 돼 분쟁이 끝날 리 없다. 요즘처럼 이슬람국가(IS)를 응징한다고 무차별 공습을 계속하면 원한에 찬 테러조직 가담자만 늘게 마련이다.

 대신 적절한 응징에 멈추면 결국 상대방도 섣부른 공격보다 화평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게 돼 있다. 평화가 깃드는 것이다. ‘반복적인 죄수의 딜레마’ 이론이다. 대결이 끊이지 않는 냉엄한 현실일수록 자비와 용서가 가장 현명한 선택인 것이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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