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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찬 보건산업진흥원장 인터뷰] 의료 수출은 선택 아닌 필수…중·대형 기관 진출에 집중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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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찬 보건산업진흥원장 사진=프리랜서 조상희]

우리나라의 달라진 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분야는 의료다. 선진국의 의술을 배우기 위해 태평양을 건넜던 한국의 젊은이들은 반세기 만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의료강국을 만들어 이젠 의료를 수출까지 한다. 얼마 전 국회를 통과한 ‘의료 해외 진출 및 외국인 환자 유치에 관한 법’은순항 중인 의료수출에 돛을 달아줬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의료산업의 육성·발전을 책임지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이영찬 보건산업진흥원장을 만나 우리나라 의료산업의 잠재력과 성공 가능성에 대해 들었다.

-취임한 지 4개월이 지났다. 지금까지의 소회는.

“세계 경제는 장기 침체를 겪고 있다. 한국 경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보건의료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우리나라 보건의료산업 발전을 지원·육성하는 공공기관의 원장직을 맡게 돼 어깨가 매우 무겁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산업의 잠재력은.

“우리나라는 우수한 보건의료 인력과 최고의 기술력이 있다. 국내 상위 1%의 두뇌가 보건의료 분야에 집중돼 있다. 암 생존율, 간 이식 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례로 위암의 5년 생존율은 65.3%로 미국의 26%에 크게 앞선다. 간암과 대장암 역시 21.5%, 71.3%로 미국의 13.6%, 65%보다 높다. 2007년 이후 간이식 성공률은 한국이 96%, 미국이 85%다. 여기에 전국민 건강보험이라는 시스템을 토대로 세계적 수준의 임상 인프라와 60만 명분의 바이오 뱅크, 100만 명분의 건강정보DB를 확보하고 있다.”

-그간 가시적 성과는 미흡했다는 평가다.

“그럴 수밖에 없다. 보건의료 정책의 변화와 더불어 최근에서야 산업적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1960~70년대에는 아동사망률을 줄이기 위해 모자보건과 감염병 관리에 집중했다. 그 결과, 아동사망률이 줄고 인구가 늘었다. 보건의료 정책에 큰 변화가 필요했고, 만성질환 관리를 통해 평균수명을 늘리는 데 힘썼다. 정책의 초점이 아동사망률에서 노인사망률로 옮겨간 것이다. 이후 의료계의 헌신과 정책적 지원으로 주요 지표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제는 또 한번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상당한 기술을 축적했다. 한 가지 더하면, GDP 대비 보건의료 비용 지출이 점점 늘고 있다. 예전에는 복지를 소비의 영역으로 봤다. 투입하면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고 봤다. GDP의 약 10%나 투입되는데, 산업으로 순환하지 않고 그저 소비만 되는 건 너무 안타깝지 않나. 글로벌 시장이 커지고, 우리나라 역시 최근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상황이다.”

-최근 한미약품의 대형 기술이전 계약으로 제약산업이 다시금 각광받고 있다. 이와 관련한 지원방안으론 어떤 활동을 하고 있고, 앞으로는 어떤 계획이 있는지.

“제약산업을 지원·육성한 지 20여 년이 지났다. 이제야 성과가 나온다. 가장 중요한 건 제약사의 의지다. 아무리 좋은 과외선생을 붙여놔도 학생 스스로 의지가 없다면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렵다. 한미약품 사례 역시 정부 지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보다 기업이 멀리 내다보고 자체적으로 꾸준히 투자한 결과다. 정부의 역할은 인프라만 갖춰주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어떻게 무한정 투자하겠나. 투자한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의지가 없는 기업에 투자하는 건 억지로 공부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명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의료 해외 진출 및 외국인 환자 유치 지원에 관한 법률)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이 법안의 의의는.

“정부가 의료기관의 해외 진출을 직접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중소기업과 같은 지원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해외 진출 시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 불법 브로커, 의료사고와 같은 민감한 문제에 보다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한국 의료의 해외 진출이 보다 활성화되고,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 환자도 늘어날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창출될 것으로 기대한다.”

-일각에선 의료 영리화·상업화를 우려하는데.

“의료산업에 대한 지원·육성은 세계적 흐름이다. 대다수 선진국은 자국 보건의료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책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2013년부터 의료서비스 해외 수출을 담당할 핵심 조직으로 ‘Medical Excellence JAPAN’이란 기관을 설립했고, 영국도 같은 해에 보건부와 무역투자청 산하에 의료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Healthcare UK’를 설치했다. 의료 수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멀리 보면 우리나라 의료 수준을 향상시켜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해외 진출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선 어떤 전략을 갖춰야 할지.

“한국 의료기관의 해외 진출은 2010년 58건에서 2014년 125건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대부분 소규모 성형·피부미용 중심이었다. 의료기관의 해외 진출이 대형화·전문화된 건 최근 들어서다. 정부 지원 역시 의료서비스·제약·의료기기가 동반 진출할 수 있도록 중·대형 의료기관 진출에 집중할 것이다. 또 국가별·지역별 진출 전략이 모두 다르므로 이와 관련한 지원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김진구 기자 kim.jingu@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조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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